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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현 작가 Jun 19. 2021

아이에게 믿음이 생기는 순간

그리고 나에게 믿음이 생기는 순간

진짜 갈 수 있겠어?
응!!!!
그래?
그럼...., 같이 가 보지 뭐,



눈앞에 가파른 비탈길과 수많은 계단이 펼쳐졌다. 이제 6살이 된 아이가 이 곳을 자기 힘으로 올라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어른도 올라가다 보면 지쳐서 꼭 한 번은 쉬었다 올라가게 되는 그런 길, 첫째는 그런 길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기도 같이 올라가겠다고 했다.


눈앞에 상황이 그려지는 듯했다. 분명, 올라가다 말고 다리가 아프다고 칭얼거리며 나, 아니면 남편에게 업어달라고 할 것 같았다. 내 몸뚱이 하나 챙겨가면서 걷기 힘든 그 길을 아이를 업고 간다는 것은 상상도 하기 싫었지만 '그래, 남편도 있으니까 ?!ㅋㅋ' 하며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아이와 함께 꼬불꼬불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엄마~ 다리 아파

아니나 다를까, 아이는 조금 가다가 다리가 아프다고 했다. "지금?! 그러면 우리 여기서 조금 쉬었다가 가자." 오르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이를 업으려니 아이를 업고 끝까지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조금 쉬었다 가더라도 아이의 다리로 걸어 올라갈 거리를 늘리고 싶었다. "아니야, 그냥 갈래~" 그런데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이는 갑자기 자기 다리로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무엇인가에 홀린 듯이 그렇게 계단 위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더니 엄마랑 아빠를 앞질러서 가기 시작했다.


아이를 업고 갈 것이 무서워서 같이 올라가 보겠다는 아이의 손을 뿌리쳤다면 볼 수 없었을 장면이었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첫째는 많이 컸고 할 수 있는 일이 조금씩 많아지고 있었다. 볼일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도 힘들다는 말 한마디도 없이 긴 계단을 성큼성큼 내려갔다. 엄마가 아빠보다 내려가는 속도가 빨라서 오히려 손을 잡고 가자며 아이를 뒤쫓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런 모습을 보니 마음속에 작은 믿음이 생겼다. 이 아이는, 마음먹으면 무엇이든 할 아이다. 미리 안 된다고 경계를 두르지 않는다면 너는 이건 못 할 거야, 선을 긋지 않는다면 자기가 마음만 먹으면 이 아이는, 정말 무엇이든 할 아이구나. 그런 믿음이 생겼다. 출발 지점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남편과 나는 신나게 내려가는 아이를 보며 그저, 감탄했다.



있잖아, 내가 손을 잡아줬더니 연우가 오히려 비틀거리고 더 넘어지려고 하더라고. 그러다 갑자기 연우가 손을 안 잡고 가겠다고 하는 거야. 신기한 게, 오히려 내가 손을 안 잡아주니까 자기가 더 조심조심해서 걸어가더라.


아이와 부모 사이의 믿음은 말이 아닌 행동에서 생긴다. 아이들에게 나는 '약속은 꼭 지키는 엄마'가 되고 싶다. 그래서 한번 약속한 것은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꼭 지킨다. '엄마는 약속을 잘 지키는 엄마야~'라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엄마의 행동을 보면서 '아, 우리 엄마는 이런 사람이구나' 하는 믿음이 생길 수 있도록.


아이에 대한 믿음도 마찬가지다. 아이가 행동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 우리 아이가 이렇게 할 수 있구나' 하는 믿음이 생긴다. 물론, 믿고 기대한 만큼 실망할 때도 많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아이가 더 많이 경험하고 겪어낼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 중요하겠구나 생각했다.


사실, 나도 처음에는 아이에게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엄마는 아니었다. 보통 아이들과 다른 피부. 땀이 잘 나지 않아 각질이 잘 벗겨지지 않는 어린선 피부인 첫째를 보며 걱정을 많이 했다. '아이들에게 놀림당하면 어떻게 하지?' '친구들하고 잘 어울릴 수 있을까?' '하루 종일 긁어서 상처가 덧나는 건 아닐까?' 이런 두려움 때문에 아이를 더 끼고 있었다. 힘들다고, 힘들다고 온몸으로 온갖 짜증을 내면서도 꾸역꾸역 가정 보육을 하겠다며 아이를 곁에 두었다.


복직을 앞두고 어쩔?! 수 없이 첫째와 둘째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요즘 첫째는 그전보다 훨씬 잠도 잘 자고, 밥도 잘 먹고, 몸에 상처도 없다. 선생님, 친구들과 생활하면서 에너지를 쓰고, 호기심을 채운 덕분일 것이다. 그런 아이를 보면서 어린이집 적응도 잘하고 잘 해낼 수 있는 아이였을 텐데 그 가능성을 내가 가로막은 건 아닐까, 조금 더 일찍 어린이집에 보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나는 가정 보육을 선택했을 것이다. 아무리 주변에서 뭐라고 말해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야 직성이 풀리는?! 이상한 성격이기 때문에 지금처럼 버티다 버티다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등원시켰을 것이다. 그래서 아쉬운 마음 한편으로는 그동안 고생한 나에게 셀프 토닥토닥을 해 주었다. 애썼다고, 애썼다고, 정말 애썼다고.


5년 만에 복직을 앞두고 이런, 저런 걱정들이 많았다. '잘할 수 있을까?' 두려움이 가장 컸다. 그동안 경험을 통해 이런 마음이 들 때 지혜롭게 마음을 관리하는 방법은 '나는 잘 할 거야!'라는 자신감보다도 '잘 못해도 괜찮아, '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아마 나는 잘 못할 것이다. 실수도 많이 할 것이고, 의욕만 넘쳐서 수업이 내가 의도한 대로 잘되지 않을 때면 속상한 마음에 울기도 많이 울 것이다. 출근 시간에 맞춰  아이들 등원을 잘 할 수 있도록 연습하고 있지만 아마, 두 아이를 헐레벌떡 안고 뛰며 지각도 많이 할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고 괜찮다고 나에게는 내가 괜찮다고 말해줄 수 있어야겠다. 그래야 막연했던 두려움이 현실이 되었을 때 마주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길 테니까.


복직을 하고 '선생님'이라는 역할이 더해지면 그 적응 과정에서 기운이 쭉 빠져 한동안 무력한 시기도 겪을 것이고 자존감이 한없이 너덜너덜해지는 시간을 보낼 것이다.


그래도, 한 가지 믿음이 생기는 이유는 처음 엄마가 되었을 때 그 시간을 온전히 겪으면서 일상을 실험하기 시작했던 '나'를 알기 때문이다. 아마 나는, 복직하는 과정에서  다시 새로운 일상을 실험하기 시작할 것이다.


엄마가 되고 애착 육아를 찐하게 하며 깨달은 것은 삶은 어떤 일정한 흐름이 있다는 것이고 그 흐름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내가 믿고 싶고, 믿어야 하는 것은 나는 그 흐름에 몸을 맡길 거라는 것, 조금씩, 그 흐름에 익숙해지고 편안하게 리듬을 탈 수 있는 요령이 생길 거라는 것이다.






산행을 마치고 내려와서 달콤한 자판기 우유를 뽑아 나눠마시며 아이에게 물어보았다.



연우야 힘들지 않았어?
후회할까 봐, 엄마 아빠를 잃어버릴까 봐 열심히 걸었지.


아이가 아무렇게나 뱉은 말인지 정말 어떤 의미를 담은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후회를 걱정하는 마음과 두려움은 꼭 나쁜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후회하기 싫은 마음도 앞으로 마주할 가파른 길을 걸어가게 할 힘이 될지도 모른다는 걸, 아이에게 배운다. 그렇게 걸어 나가는 속에서 나에게 믿음이 생기고 우리에게 믿음이 생길 것이다.





매주 토요일,

서툴지만 조금씩 성장하는 일상의 순간을 기록합니다.

'선생님도 엄마는 처음입니다' 다음 주 토요일에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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