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결혼하자마자 시작한 직장은 전두엽 리모델링을끝내고 청년으로 진화 중인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였다. 건네는 말이 튕겨 나가지 않고 어느 정도 통하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그녀에게 매우 신나는 일이었다. 그녀가 거주하는 성남에서 서울로의 출퇴근은 만만치 않았다.
그녀는 단 한 번도 직업을 바꿀 생각을 하지 않고 한 직종으로 직업생활을 마쳤다. 방학이 좋아서 그냥 머물다 보니 그리되었는지, 천직이라 여겨서 그러했는지 알 수는 없다. 그녀에게 중요한 건 중간에 그만두지 않고 마침표를 쿡 찍었다는 데 있다. 그녀는 어떤 일이든 새롭게 시작하는 것에 두려움보다 호기심이 앞섰다. 일단 시작 먼저 하고 보는 기질에, 벌여놓은 일은 많고 끝을 보는 것에 약하다.
호기심과 비례해 오지랖 뇌도 비례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의 자존감에 명품 라벨을 붙여놓고 있다.
37년간 김 선생으로 불리던 그녀는 코로나가 막 창궐하려고 폼을 잡을 즈음, 들썩거리는 코로나로 퇴임식을 생략했으면 하는 학교 측 무언의 압력을 묵살하고 전 교직원 앞에서 퇴임사를 읽고 퇴임식을 했다. 그녀는 자신의 중장년기를 보람차게 보낸 정글을 슬그머니 나가는 게 싫었다. 끙가를 하고 닦지 않은 기분이 들 었다.
마침표를 확실하게 찍고 싶은 그녀의 욕구는 호기심이 앞서 일 벌이기를 좋아하고 끝맺음에 약한 그녀 자신에게 주는 이벤트 상이기도 했다. 그녀는 인생 중반기까지 김 선생으로 살았으니 후반기엔 김 여사라는 새로운 호칭을 얻고 싶었다. 학교 밖 그녀는 그저 젊은 노인 여성일 뿐이다. 그녀는 자신의 노인 시대에로의 입문을 환대하기로 했다.
은퇴 후 그녀가 첫 번째 하고 싶은 일은 헤어를 어깨까지 기르는 일이었다. 새벽 출근으로 긴 머리 관리에 투자할 시간이 없었던 그녀는 머리를 길렀을 때 자신의 모습이 궁금했다. 맘껏 틀어 올려 무지갯빛 꽈배기 핀으로 고정해 옆머리에 보라색 브리지를 넣고 싶었다.
두 번째 실천에 옮기고 싶은 일은 귀를 뚫어 동그란 귀고리 큰 사이즈를 18K로 귀에 거는 일이었다. 그녀는 귀에 구멍을 내는 게 무서웠다. 은퇴 후에 한 번 시도는 해보자였고 틀어 올린 머리에 링 귀고리는 필수라고 생각했다. 때 마침 출간된 지 얼마 안 된인생 후반 어떻게 살 것인가? 부재가 달린 ' 콜라텍에 다녀보니'(현직 교감 -정하임 저)책이 그녀에게 망설임 없는 용기를 불어넣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귀를 뚫고 대·중·소 링 귀걸이를 샀다. 김 여사 호칭에 합당한 이미지로 거듭나기엔 이 정도면 될 성싶었다.
인생이 계획대로 안 되는 건 진리일까?
뚫은 귀가 한 달이 넘도록 아물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3일 치 항생제를 꼬박 챙겨 먹고 소독을 제대로 했건만 트러블은 계속되었다. 적어도 한 달이면 아문다던 귓불 구멍은 아물 생각을 하지 않았다. 2월이 시작될 때 뚫은 귀는 3월이 끝나가도록 성을 내고 있었다. 귓불이 유달리 두꺼워서 그런 걸까? 인터넷 검색 창에 '귀 뚫은 후 트러블'을 두들겨보았다.
헉! 켈로이드 피부인가? 몸에 칼을 대본 적이 없는 그녀는 어릴 적 맞은 왼쪽 어깨 우두 자국을 관찰했다. 아직 얼기설기 자국 져 있다. 그녀의 속 귀 살은 반항 하다가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젠장~~ 그녀는 김새는 소리를 연일 내며 안타까워했다. 일단 아물기를 기다리며 매달려 있는 귀고리 빼고 병원에서 주는 약을 복용했다. 며칠 후 귓불 안에 멍울이 만져졌다.
뚫은 구멍은 막혀버렸다. 설레는 맘을 가득 품고 사놓은 링 귀고리 대·중·소를 당근 마켓에 내다 놓으려다 거두어들였다. 켈로이드 피부인가? 피부과를 찾아가 확인해 보리라. 구멍이 나지 않은 귀에 걸리는 링 귀고리는 없는 건가? 그녀의 아쉬움은 언감생심으로 치달았다.
그녀의 머리는 어깨를 향해 잘 자라고 있다. 둥글넓적한 듯 갸름한 그녀의 얼굴형에 걸맞은 헤어스타일을 구축하는데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날리며 애쓰는 중이다. 나이 들어 머리가 길면 추레하다는 통념이 전반적이긴 하다. 여기저기로 보나 그녀는 전형적인 민민한 동양인 얼굴이다. 그녀는 긴 머리의 자신이 어떤 그녀로 거듭날지 사뭇 궁금하다.
그녀는 김 여사로 거듭나기엔 링 귀고리가 한방인데 아쉬운 마음 대신 찬란한 네일아트로 커버했다.
작가노트 : 김 선생은 몸에 들어가 있는 힘을 빼는 중이다. 누구를 가르치는 것은 퇴직을 끝으로 마감하고 싶었다. 평범하고 아낌 없는 환대로 젊은 노인의 시대로 입문하려한다. 나의 모습에 굳어진 선생 '티'를 벗어버리는 작업에 머리스타일과 귀걸이를 하는 일은 필수라고 생각했다.
'노년의 기준은 호기심이 사라지는 때이다.' 시몬 보봐르의 노년의 정의가 맘에 든다. 나는 지금 호기심은 여전히 두고 쓸데 없이 힘이 들어가 있는 마음근육은 빼고 있다.
(김 선생의 퇴임사)
저 이제 갑니다.
많이 부족한 저를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37년간의 긴 여정을 여기까지 이끌어주신 하나님께 먼저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지난 5년간 00 여고에서 선한 영향력을 나누어주신 선생님들과 5년의 마지막 1년 저에게 따뜻한 배려와 마음을 나누었던 연구부 선생님들께 이 자리를 빌려 고마운 마음 전합니다.
‘있을 때 잘하자’가 제가 학교에 근무하면서 가지고 있던 좌우명이었습니다.
혹여 저로 인해 마음이 상하셨거나 상처가 된 선생님들께 이 자리를 빌려 용서를 구합니다.
제가 어제저녁에 37년을 돌아보니 눈부신 날들은 아니었지만, 순간순간 꽤 괜찮은 날들이었던 거 같습니다. 엄마, 아내, 그리고 며느리라는 타이틀이 있었지만, 교사로 있던 순간만큼은 저 자신으로 있을 수 있었고 저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타 역할들을 잘 견디고 버티며 잘 해낼 수 있었던 거 같습니다. 60이 넘은 지금에 걸맞은 어른이 돼서 나가는 것 같아 나가서도 잘 살 거 같습니다. 약간의 불안은 있지만 그래도 설렘도 있습니다. 진부한 이야기이지만 끝은 또 다른 시작이라는 말에 의미를 둘까 합니다.
선생님들 무엇보다도 건강하시고 하나님의 축복과 기쁨이 선생님들의 일상에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코로나19가 극성을 부리기 시작한 이 시점에 얼굴을 보며 작별을 고할 수 있게 이런 자리를 마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