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사는 이야기
수의사로 임상을 하다보면 국가에 상관없이 재미있는 간접 경험을 많이 한다. 반려동물을 매개체로 반려인들은 수의사들에게 시시콜콜한, 혹은 때때 중대한 인생사 이야기를 털어놓기도 한다. 아프리카 내전으로 부터 탈출해서 난민신청에 성공한 흑인청년, 전 남편을 정자 기증자라고 칭하면서 이혼이야기를 털어놓는 백인여자, 베트남 전쟁으로 인한 정치적 망명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할아버지 등등. 참 한국에서는 아파트청약에 5번째 실패한 아이가 둘 있는 가족 이야기가 있었다.
당연히 아픈 반려동물을 치료하는 것이 우선이지만 흥미로운 이야기가 시작되면 나도 모르게 눈과 귀가 가게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이런 이야기들이 쌓이다보니 문득 여러나라에서 수의사로써 살아가면서 경험하고 느꼈던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이런 글과 생각 하나하나가 모여서 동물에 관한 인식개선에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선생님이 내준 숙제에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 라는 홍익인간을 실천하는 것이 인생의 목표라고 거창하게 제출했던 나다.
첫 글은 한 미국 동성애 커플에 관한 이야기다. 내가 임상을 했던 캘리포니아는 미국내에서 뿐만이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진보적인 움직임을 이끄는 곳이다. 예컨대 성소수자의 권리를 위한 LGBT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즈젠더) 운동이 시작할 무렵 이 움직임을 지지하고 상징하는 무지개 색의 깃발은 즉시 캘리포니아를 뒤덮었다. 깃발뿐만이 아니라 사람이 건너는 횡단보도까지 무지개색으로 칠했으니 유별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특히 캘리포니아 안에서도 용광로처럼 다양한 문화와 인종이 섞여서 살아가는 도시인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에서는 항상 흥미로운 이슈가 가득했다.
내가 일했던 동물병원은 로스 앤젤레스 공항에서 해변을 따라 남쪽으로 30km정도를 내려가면 나오는 오래된 항구도시에 있었다. 병원을 경계로 한쪽은 부자들이, 반대쪽에는 예술가, 서퍼, 히피, 마약중독자들이 많이 살고 있다보니 다양한 배경을 가진 반려인들이 찾아왔다. 그 중 일주일에 적어도 2~3 쌍 이상의 반려인 커플이 성소수자였으니 적은 편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병원에 자주 찾아오는 단골고객중에 한 게이커플이 있었다. 둘 다 40대 초, 중반 정도로 보이는 미국남자와 싱가폴 남자였고 굉장히 예의가 바르고 항상 깔끔함 옷차림을 유지한 채 병원을 찾았다. 미국인이 싱가폴의 금융회사에 파견을 나갔다가 첫눈에 반하게 되었고 미국사람 파견이 끝난 후 동성결혼을 허가받기 위해 싱가폴남자가 미국으로 따라왔다. 같이 살기 시작한지는 대략 8년째라고 했다.
동성애를 하면 아기를 가질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수의 동성애자들은 사람 아기를 입양하거나 반려동물을 키운다. 이 커플은 반려견을 키우기로 결정했고 현재 5마리의 노령견을 키우고 있다. 그 중 가장 병원에 자주 방문했던 반려견은 라판더우 (La Fan Duh) 라는 14살 슈나우저 믹스였다. 항문탈장, 요추 디스크 문제, 치매, 간부전으로 인한 주기적 발작 등등 수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반려인과 반려동물의 극복의지가 강했고 연이은 수술 및 치료 결과가 좋아서 전반적인 건강상태가 잘 유지되고 있던 상황이었다. 다른것보다 만성적으로 문제가 된 병은 배에 시커멓게 피어있는 피부병이었다. 이것저것 치료를 시도해보아도 효과가 듣지 않아 실험실에 미생물배양 검사를 의뢰했다. 몇일 뒤 놀랍게도 MRSA라는 항생제 내성 균이 검출되었다는 결과를 받았다. MRSA (메치실린 내성 황색포도알균 감염) 감염은 일반 페니실린계 항생제로 치료가 안되는 항생제 내성균으로 치료를 잘못하면 슈퍼박테리아라고 불리는 VRSA균으로 발전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이런 항생제에 저항균은 너무 많은 수의 항생제를 오남용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런 이유로 미국 수의학회에서는 항생제의 종류에 따른 사용 가이드라인을 만들어놓는다. 예를 들어 세팔로 스포린 계열의 항생제를 사용하면 반드시 1세대부터 접근해야하는 식이다)
항생제 감수성 결과에 맞춰서 새 항생제도 주문하고 2~3달 정도의 치료기간동안 병원을 정기적으로 방문하다보니 이 커플과 자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개인적인 이야기들도 하나둘씩 오가게 되었는데, 알고보니 키우고 있는 5마리가 모두 한국의 강아지 공장에서 온 개들이 아니겠는가? 사연인 즉슨 싱가폴 남자는 미국 내 아시아 사람들끼리 교류하는 커뮤니티가 있었다. 그 중 한국인들도 있었는데 어느날 반려동물 이야기를 하다가 아시아의 식용견 문화에 대한 주제가 나왔다. 한국인은 그 자리에서 식용견 뿐만이 아니고 강아지 공장이 한국에서 심각한 문제라는 이야기를 꽤나 상세하게 꺼내놓았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 대해 상세히 알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는 동물판에서 활약했던 적이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한국의 동물복지에 애잔함과 궁금증을 동시에 느낀 싱가폴 남자는 커뮤니티의 한국에게 요청해서, 전라도와 충청도에서 해외입양을 장려하는 개인활동가를 소개받았다. 그 개인활동가를 통해 한국으로 반려견을 한마리씩 입양을 시작하게 되었다. 5마리째부터는, 본인들이 키울 수 있는 여력에 한계가 오다보니 주변인들이나 동성애 커뮤니티에 소개를 해서 추가로 입양을 시키고 있었던 것이었다.
다행히 피부병은 2달 뒤에 완치가 되었다. 한국에서 있었다면 개농장에서 잡종으로 비참하게 생을 마무리했을 수도 있었을텐데, 사랑받으면서 적절한 건강관리를 통해 잘 지내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치료를 마침과 동시에 만감이 교차했다. 사실 이런 경험이 처음은 아니다. 미국 수의과대학에서 공부를 하면서 미국친구들이 친해지고 난 뒤, 굉장히 조심하면서 한국인들은 개를 정말 자주 먹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수의사로써 일을하면서 코리아에서 온 닥터라고 하면 퍼피밀 (강아지 공장) 이야기를 물어보면서 동남아처럼 길거리에 들개들이 걸어다니는지 물어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질문을 받을 때마다 아직 그런 문화는 있지만 점차 사라지는 중이라는 대답을 하고는 한다.
그 사람들의 질문에 대해서 화가 나거나 수치심이 들지는 않았다. 정작 기분이 안 좋았던 사실은 정말로 동물복지에 대한 환경에 개선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다는 것이었다. 한국의 유기견 숫자는 2012년보다 2015년, 그리고 2015년보다 2018년에 비약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동물권단체라고 부르는 곳들에서 노력하고 있지만 역부족인것 같다. 사실 유명세를 떨치기 위해서 보여주기에 치중하는 곳도 있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강남과 해운대의 초고층 빌딩, 올림픽, K-POP, 대기업의 성과를 내세우면서 숫자와 수치로 따졌을 때 선진국 반열에 들어왔다고 자평한다.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사정은 조금 다르다. 성공이란 답을 정해놓고 모두가 경쟁자가 되는 사회, 평생 근면성실하게 일을 해도 서울에 집 한채 산다는 건 언감생심이다. 내 한몸 건사하기에도 여유가 없다면, 과연 나보다 약자에 대한 동물복지에 대한 공감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을까??
우리나라도 언젠간 외국에 있는 유기견들을 입양해올 수 있는 날이 올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