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08 글쓰기 모임 두번째 글
“인생에 3대 불행은 젊어서의 성공, 중년의 배우자와 이별, 그리고 노년의 빈곤이다.” 이 말을 처음 들었던 것은 유학 시절, 지인의 회사 대표와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였다. 그날 무엇을 먹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가 던진 이 말만은 목에 가시가 걸린 듯 오랫동안 마음 속에 남았다. 이후 오랜 시간 동안 곱씹어 생각할 수록 화가 났다. 그가 내 나름의 성공에 보태준 것 하나 없으면서 무슨 자격으로 그것을 "불행"이라고 단정하는지 괘씸하게 느껴졌다. 뭔가 나의 태도가 어지간히도 맘에 들지 않았던 것만은 확실했다.
나는 꽤 이른 나이에 커리어적으로 큰 축배를 들었다. 20대 초반에 처음 만든 게임으로 큰 공모전에서 상을 연이어 받고, 상용 버전을 만들어 유명 퍼블리셔를 통해 전 세계에 콘솔 게임 패키지로 출시까지 하는 성과를 냈다. 예나 지금이나 자신의 게임의 실물 패키지를 가져보는 것은 게임 개발자로서 큰 로망인데, 이를 20대 중반에 이뤘으니 자신감이 하늘을 찌를 만도 했다. 하지만 몇몇 교수님들은 큰 성공 뒤에 있을지 모르는 큰 침체에 대해 경고했다. 실제로 많은 작가, 가수, 아티스트들이 첫 작품으로 큰 빛을 본 뒤에 조용히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창 성공가도만 달리던 나에게 그런 말들은 크게 다가오지 않았다.
영화 <버드맨>을 봤을 때, 주인공에게서 나의 모습을 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주인공 리건 톰슨은 전형적인 일찍이 성공한 인물이다. 젊은 시절 주인공으로 출연했던 슈퍼 히어로 영화 “버드맨”의 성공으로, 말리부에 저택까지 소유할 정도로 꽤 큰 부도 쌓았다. 사람들은 모두 그를 "버드맨"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현재 60대인 그는 괴팍한 성격과 정신 장애로 아내와 이혼 후 뉴욕의 시궁창 같은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다. 그는 내면에서 끊임없이 들려오는 버드맨의 목소리와 싸우며, 영화가 아닌 연극을 준비 중이다. 목소리는 그가 혼자 있을 때마다 이곳은 니가 있을 곳이 아니라고, 고루한 연극 따위 집어치우고 화려했던 “슈퍼 히어로”로 돌아가라고 속삭인다. 목소리가 들릴 때 그는 염력을 부리고 공중부양까지 하지만, 이는 늘 혼자만의 몽상일 뿐이다.
몽상 속에서 그의 모습은20대 초반, “세계 최고의 게임 디자이너”를 꿈꾸던 나의 이상적인 모습과도 같았다. 이상 속에서 나는 끊임없는 영감이 샘솟으며, 작품성과 상업성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다 잡는 게임을 계속해서 만들어내는 속칭 “천재 개발자”였다. 하지만 현실은 사람들이 원하는 천재 신화처럼 돌아가지 않았다. 자취방에서 후배와 합숙하며 밤을 새워가면서 첫 작품을 만들었지만, 나의 독선적이고 부족한 리더쉽으로 팀이 도중에 깨져 버렸다. 나머지 일을 혼자 도맡으며 2년 동안 결국 게임을 완성해 냈지만, 너무 큰 고생과 팀 해체에 따른 후유증으로 한동안 새로운 작품을 만들지 못했다. 이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지만, 어마어마한 등록금과 3년의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고민, 그리고 졸업 후에 군대에 끌려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끊임없이 시달렸다. 그 와중에 한국의 한 회사와 원격으로 일하면서 야심차게 준비한 그 게임의 후속작이 잘못된 수익 모델 설정으로 크게 망하자, 더 이상 게임을 만들고 싶지 않다고도 생각했다. 한때 애정했던 그 게임의 이름은 점점 애증의 대명사가 되어 갔다.
리건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새 연극을 성공시키려 하지만 준비는 점점 더 험난해지기만 한다. 부족한 예산에, 통제가 안되는 주연 배우에, 약물에 찌든 딸까지, 모든 상황이 그를 압박해온다. 어느 날, 한 영향력 있는 평론가가 그가 야심차게 준비한 연극을 한 물 간 슈퍼 히어로의 관심병 정도로 비하하자 그는 쌓아온 분노를 터뜨린다. 술에 취해 정처 없이 길거리를 방황하고 노숙까지 하며 바닥까지 내려간 그에게, 목소리가 다시 말을 걸어온다. 하지만 리건은 이번에는 목소리를 부정하지 않는다. 뭔가에 홀린 듯, 어느 샌가 그는 허공을 응시하며 높은 건물 옥상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다. 동요하는 사람들을 향해 그는 영화를 찍고 있다고 한다. 현실과 영화 사이의 경계가 사라지며 그는 뛰어내리고, 날아오른다. 뉴욕의 빌딩 숲을 자유롭게 날며 그는 처음으로 기쁨과 환희에 찬 웃음을 터뜨린다. 그날 밤, 본 공연의 피날레를 앞둔 그는 이상하리만치도 평온해 보인다. 잠시 후, 그는 주인공이 자살하는 공연의 마지막 장면에서 실제 권총을 자신의 머리에 쏴 버린다.
리건의 이야기는 나에게 섬뜩 할 만큼 생생하게 다가왔다. 나는 지난 6년 동안, 망한 그 게임의 후속작을 어떻게든 살려보고자 심폐소생술을 해왔다. 리마스터 버전을 PC에 출시하고, 반응이 시원치 않자 예전 동료와 협업하여 VR 버전을 만들었다. 그럭저럭한 성과는 있었지만 여전히 만족하지는 못했고, 다시 더 확장된 버젼을 제작하여 콘솔까지 출시를 했다. 다행히도 산소호흡기를 뗄 뻔 했던 그 게임은 점점 다시 살아났다. 흑역사였던 모바일로도 재발매하여 큰 상을 받고, 꽤 괜찮은 판매량과 많은 축하도 받았다. 물론 기쁘고 자랑스러웠지만, 마음 한 켠에서는 불안한 생각이 스멀스멀 자리잡고 있었다. 리건이 망상 속 버드맨의 목소리에 홀려 현실과의 끈을 놓아버린 것처럼, 이 게임이 곧 나 자체가 되어 버리지 않을까 두려웠다. “언제적 게임인데 아직까지 우려먹고 있어? 이러다 영영 이 게임만 만들다 죽을 거야.” 내면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마음 속 가시를 쿡쿡 찔러댔다.
리건의 자살시도는 실패한다. 공교롭게도, 그는 자신을 까 내리던 평론가에게 극사실주의라는 연극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극찬을 받고 전국적인 화제의 중심에 서게 된다. 병실에서 깨어난 그는 화장실에서 거울을 바라본다. 빗나간 총알이 날려버린 그의 코가 있던 위치에는, 퉁퉁 부은 성형된 코가 자리잡고 있다. 그는 그 모습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는 말 없이 변기에 앉아있는 버드맨을 돌아보지도 않고 말한다. “잘 있어. 그리고 엿 먹어”. 그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음악 소리에 이끌려 창문을 열고, 그 위에 올라 선다. 잠시 후, 병실에 들어온 딸은 리건을 찾는다. 열려 있는 창문을 보고 황급히 아래를 내려다보지만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서서히 위를 향하는 카메라에 놀람과 환희가 뒤섞인 듯한 딸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며 영화는 끝이 난다.
영화의 결말은 놀랍고도 혼란스러웠다. 그는 추락했을까, 날아 올랐을까? 버드맨의 목소리에 완전히 침식되버린 순간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과거의 부풀려진 자아가 소리치는 내면의 목소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버드맨의 목소리는 리건에게 과거의 영광을 되찾으라고 하고, 내 내면의 목소리는 과거의 것은 버리고 더 큰 성공을 하라고 다그친다. 어쩌면 실마리는 리건이 그랬듯 목소리를 부정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면의 목소리는 나를 불안하게도 하지만, 분명 새로운 작품을 만들기 위한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어쩌면 나는 앞으로 그 게임보다 더 나은 게임을 못 만들지도, 히트곡 하나로만 기억되는 수많은 가수들처럼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한 불행은 더 이상 새 작품을 만들지 못하고, 게임 만들기를 그만둬 버리는 일일 것이다.
영화의 끝에서 명확하게 보여주지는 않지만 나는 분명 리건이 하늘을 날았다고 생각한다. 딸의 시선과 표정, 카메라의 움직임과 음악이 모두 그렇게 말하고 있다. 내 이야기의 결말이 그 대표의 말처럼 될지 안될지는 모르지만, 속단하기는 아직 한참 이르다. 목소리를 부정하지도, 하지만 끌려 다니지도 않고 함께 걷다 보면, 어느 새 새로운 나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날개 없이도 하늘을 날 수 있게 된 리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