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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춘 Dec 23. 2023

#23. 아무것도 안하고 하루를 보내본 것이 언제였던가

머릿속에 생각들이 얽히고 불어나서 두개골을 깨고 나올 것 같은 기분.

오늘 아침 눈을 떴을 때 딱 그랬다.


나에 대한 고민, 아들에 대한 고민, 낮 시간 동안 무의식적으로 쌓아왔던 분노와 불평, 가족들에 대한 걱정 이런 것들이 한 번에 몰려왔다.


지금 무슨 큰일이 생긴 건가?

한 가지씩 꼽아보면 모두 자잘한 일들 뿐이다. 외적으로 볼 때 더없이 편안한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의도하지 않은 순간에도 끊임없이 걱정하고 뭔가를 시도한다. 그것들을 멈추는 순간 내가 챙기지 못한 어떤 것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내 앞을 가로막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있다.


목표로 한 것을 이루지 못한 날도 많고, 게을리 보낸 하루를 후회하는 날도 많다. 그런 날들도 편안하게 게으르지는 못했던 것 같다. 공식적으로 내가 해야 하는 출근 말고 혼자서 정해놓은 할 일들을 지키지 못했을 때 조바심을 느낀다. 하루를 꽉 채우지 못했다는 은근한 불안은 매일 반복된다.


오늘 아침엔 그런 감정들이 뒤엉켜 무기력했다.

다시 침대에 들어가려다가 그럼 하루가 그렇게 가 버릴 것 같아서 기운이 날만한 뭔가를 뒤적였다.


여러 가지 영상 중에서 김주환, 지나영 선생님의 영상을 찾아들었다.

강의를 들으면서 한 가지 메시지를 다이어리에 적었다.



"내 삶의 어떤 선택에 대해서도 설명할 필요가 없다."


인정욕구에 빠진 사람들의 특징이라고 한다. 자신이 하는 모든 일에 대해서 설명과 변명을 일삼는 것이다.

본인이 물을 마시면서도 내가 왜 이 물을 먹는지, 저렴한 옷을 살 때 내가 왜 이 옷을 사는지 이유를 스스로에게 설명한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나도 그럴 때가 많다.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는데 내 기준에 만족하지 못하는 뭔가를 할 때, 남들이 뭐라고 할까 봐 두려울 때 자꾸 속으로 설명을 한다.

누가 언제 물어와도 내 선택을 합리화할 수 있는 설명이 준비되어야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다.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자기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달콤하고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 많은 시간 나를 괴롭히기도 한다.


나 자신에게 많은 것을 요구할수록 그 무게는 나를 눌러 오히려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게 만든다. 가만히 누워 내가 해 내야 할 일들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면 도저히 몸을 움직일 기운이 나지 않는 것이다.

그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이 플래너의 항목을 줄이고, 걱정거리를 덜어내려고 노력하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김주환 교수는 멍하니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죄책감과 조바심 없는 평온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게을리 보낸 시간들은 많았지만 머릿속까지 느긋했던 적이 언제였던가.

어린 시절 방학 때 집에서 뒹굴었던 날들조차도 방학숙제 때문에 마음이 불편했을 것이다.


여행지에서 잠깐 정도일까.

머리까지 쉬었던 기억이 거의 없다.


이 생각을 하는 중에도 그럼 오늘부터 3일의 연휴 동안 언제 멍한 시간을 만들어야 하는지 계획을 짜고 있다. 수련이 좀 필요하겠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도 평온한 상태. 불안함도 두려움도 없는 상태.


지금부터 한 시간쯤 여유가 있다. 읽고 싶었지만 시간이 나지 않아서 미뤄두었던 소설책을 한 시간 읽어야겠다. 이것도 멍하니 있지는 못하는건가. 하다보면 비슷하게 흉내는 낼수 있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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