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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 진 Aug 03. 2022

지금 벌 받고 있다고 느끼나요?

우울에 꼭 원인이 있는 건 아니예요.

"언니...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모르겠는데... 아니다, 내 잘못을 모르는 게 잘못인 거 같아."


가라앉은 목소리로 혼잣말처럼 수영이는 말을 이어나갔다. 


"다정하고 섬세한 남편,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이, 내가 힘들까 봐 적극적으로 육아에 동참해주는 시부모님까지... 대출이 남았지만 내 집도 있고... 내가 아플 이유가 없으니까 그게 더 미치겠어. 답답하고... 죽고 싶어!" 


나에게 말을 하는 것인지, 누군가에게 외치는 것인지 모를 수영이의 이야기는 죽음이라는 단어와 함께 격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까지 진짜 성실하게 살았거든. 늘 열심히 살았어. 남한테 피해 주지 않으려고! 내가 동료보다 더 일하고, 받은 것보다 몇 배로 더 잘해주고 돌려주려고 했어... 숨이 안 쉬어질 정도로 열심히 살았는데... 아아... 모르겠어!!! 내가 모르는 사이 누구에게 어떤 상처를 주었기에 이렇게 아픈 거지? 어째서 신은 나에게 벌을 주신 걸까? 흐으... 윽...... 흑"


수영이의 물음이 울음으로 변해갔다. 

전화기 너머 들리는 신음 같은 울음소리, 누가 들을세라 큰 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숨죽인 울음소리가 수영이의 엉켜버린 마음과 닮은 듯했다. 


"힘들 이유가 없어도 아플 수 있어. 세상 일이 인과가 딱 떨어지지 않더라. 현실도 그런데, 마음이 하는 일에서 원인과 결과가 분명하게 보일까. 때로는 이유 없이 눈물이 나기도 하고, 모두가 잘해주는데도 불행하기도 하더라고. 남편, 아이, 시댁... 모두 내 안이 아니라 밖에 있는 사람들이잖아. 남 탓하고 싶은데 남 탓을 할 수 없을 때... 힘든 원인이 내 탓 같을 때... 그때 가장 힘들었어. 나의 무능함인지, 나의 예민한 기질 때문인지... 나란 존재는 왜 이모양으로 태어났는지. 그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지금이 가장 힘든 시기일 거야. 이 질병의 바닥이 모든 문제의 원인을 나에게서 찾는 시기야. 스스로 나를 부정하고 쓸모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자아상실... 수영아, 고생했어... 여기까지 내려오느라 고생했어... 바닥까지 오느라고 애썼어..."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알 수 없었기에 그저 나의 이야기를 했다. 수영이가 그랬듯, 나에게 하는 혼잣말처럼. 


"언니, 여기가 바닥인 거지? 많이 내려왔다고 생각했는데, 여기가 바닥이라고 더 이상 힘들 수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더 힘든 일이 있고, 더 아래가 있어. 진작 1층까지 내려왔다고 생각했는데, 지하 100층까지 끝도 없이 추락하는 거 같아. 버티기가 너무 힘들어."


"응, 여기가 바닥이야. 바닥... 생각보다 별거 아니지? 이게 최악이야. 더 이상 남 탓도 할 수 없고, 내가 나를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드는 여기가. 내려오느라 힘들었으니까 이제 한 숨 자자. 바닥에 누워서 좀 쉬어... 그렇게 누워있다가 일어서기만 해도 반층은 위로 올라온 거니까... 이제 올라가기 위한 힘을 비축할 때야..."


"응. 언니... 약기운이 이제 도나 봐. 잠 온다. 언니... 매번 힘들 때만 전화해서 미안해..."

"수영아, 걱정 말고 잘 자... 언제든 힘들면 전화해. 언니는 그럴 때 써먹는 거야..."

"... 잘 자, 언니... 나 잘게..."


"후우..."

수영이와 통화를 마치고 긴 숨이 흘러나왔다. 곤히 잠들기를 바라는 염려와 이번 발작도 무사히 넘어갔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잘 이야기해준 건지, 내용을 복기해본다. 이미 경험한 일이지만, 수영이와 내가 처한 상황이 다르고 사람이 다르니까 우리에게 찾아온 병은 같은 이름이지만 다른 모습으로 드러난다. 내가 다 알 수 없고 이해하기 힘든 타인의 삶을 듣고 공감하는 일은 그래서 매번 어렵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단지 이야기를 듣고 불안을 잠재워주는 것뿐이다. 그리고 들은 이야기를 나름의 방법으로 흘려보낸다. 내 안에 타인의 이야기가 쌓일수록 그 무게에 짓눌리는 나를 구원해줄 사람도 나뿐이니까.





휴대전화를 무음으로 바꾸고 노트북에 전원을 켰다.

다양한 영상을 제공하는 사이트의 검색창에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음악'을 입력한다.

마우스 커서를 위아래를 돌리다가 눈길이 가는 영상을 클릭했다. 


어두운 조명, 물 위에 뜬 작은 초의 불빛에 의지하며 필사하는 손에 시선이 집중된다. 

잔잔한 피아노 선율과 물 흐르는 소리, 잠시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화려한 색감과 자극적인 문구를 앞세운 세상에 노출되었던 나는 무채색의 단조로운 세상으로 미끄러지듯 순간이동을 한다. 바람결에 휘청거리듯 흩어지는 촛불의 연기와 얼굴을 가린 화면 속 여성의 손이 규칙적으로 움직인다. 채우지 않아서 가득 찬 것 같은 공백의 여유를 느끼며, 인센스 스틱에 불을 붙였다. 종이 타는 냄새와 옅은 라벤더 향이 방 안을 채운다. 손가락 한마디만큼 창문을 열고 불을 껐다.



노트북 화면에서 나오는 베이지색 빛에 의지하여 인센스 스틱의 연기가 흩어지는 속도에 맞추어 숨을 쉬었다. 


"후우- 후---"


흔들리는 연기에 맞추어 내 호흡도 떨린다. 일정한 리듬도 깊은 심호흡도 없이 그저 그 순간 내뱉고 싶은 대로 숨을 쉰다. 연기의 생이 끝나감을 애도하듯이 천천히, 내 몸이 원하는 대로. 


느리게 흐르는 시간 속을 산책하듯이 몸속을 드나드는 공기의 흐름을 더듬었다. 말린 라벤더 향이 폐를 부풀렸다가 도망치듯 빠져나간다. 하얀 향이 방안을 가득 채운다. 


수영이와의 통화를 하며 나를 습격한 지난 기억과 감정을 라벤더 향에 실어 뱉어냈다. 

숨이 느려지며, 몸이 이완되는 감각에 신경을 끌어모았다. 가만히 몸을 누이고 눈을 감았다. 손에 힘을 빼고 물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무의식의 세계로 향했다. 





병을 알리고 난 후, 동일한 질병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s.o.s 신호가 왔다. 저마다의 사연이 절절하여 이야기를 들어주다 보면, 나는 여러 사람이 가져온 상처 조각에 베었다. 심하게 감정이입하지 말자고, 거리를 두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하지만, 어김없이 그들의 이야기에 깊이 빠져들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아픔은 크고 깊어서 내 그릇에 다 담을 수 없었다. 많은 슬픔을 담아도 티 나지 않는 웅숭깊은 호수를 갖고 싶었지만 나는 들어오는 만큼 흘려보내는 개울물 같은 사람이었다. 눈물이 고여서 썩지 않도록 타인의 이야기를 고이 받아 향기로, 음악으로, 그림으로, 글로 비워냈다. 일 년 반 동안 흘려보낸 이야기를 각색하여 기록한다. 그리고 이 글이 나에게 연결되지 않은 누군가의 마음을 다독여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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