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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 진 Nov 19. 2022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

자기 공개

2021년에 쓴 글을 가져와봤어요, 다른 내용보다 제가 나을 거라고 굳게 믿고 있는 마지막 문장을 읽으며, 환자의 의지가 치료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확신이 듭니다.





신경정신과적 질병의 치료과정에서 자기공개는 모든 환자에게서 동일하게 나타난다. 긴 시간 '곱게 자란 것처럼 보이는 나'라는 가면 뒤에 숨었던 나는 자기공개를 통해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치유단계에 이르렀다. 




칼 융의 페르소나는 오롯한 나(self) 보다 사회적으로 보여지는 나(ego)의 다양한 모습을 이야기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사회적 역할에 따라 페르소나는 필요하지만 '진정한 나'를 놓치고 페르소나만을 유지하기 위해 살아간다면 스스로를 소진시키게 된다. 작년부터 원가족이야기를 하며, 내가 보여주고 싶은 모습의 포장지 하나를 제거하고 '보여지는 나와 내 삶의 괴리감을 좁히는 작업'을 하고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처럼 굉장한 용기가 필요한 행위였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방향을 선택하고 행동한다. 나는 보통 사람이다. 나에게 부정적 평가를 내릴지도 모르는 것을 굳이 말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고, 겉으로 드러나는 조건(교사, 작가, 편안한 외모 등)으로도 좋은 평가를 받는 편이기에 말을 안하는게 결과적으로 더 이득이었다.



어린시절의 상처를 어떤 계기없이 밝히는 사람은 없다. 일반적으로는 말하지 않는 것이 대부분의 선택이다. 특히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은 '이혼'이라는 단어만으로 한 사람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내가 선택해서 이혼가정에 태어난 것도 아닌데, 다른 가정에서 다시 태어날 수도 없는데, 사회적으로 나쁜 영향을 미친 것도 아닌데 '편견'은 생각보다 힘이 세다. 대놓고 나쁜 말은 하지 않겠지만 들리지 않는 곳에서 수근거리는 소재가 될 수도 있다.(타인의 어떤 면을 평가하며 자신의 우월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분명 있으니까) 



그럼에도 타인의 부정적 평가를 무릅쓰더라도 자기공개를 하는 경우가 있다. 첫 번째는 평가 지분에서 타인이 나를 바라보는 것보다 스스로 평가하는 것이 더 큰 비율을 차지하게 될 경우이다. 두 번째는 사람에 대한 믿음이 커졌을 경우이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이나를 공감해주고 보듬아줄 것이라는 확신이 섰을 때 자기공개가 이루어진다. 최근 이 두가지 조건이 충족되었고, 나는 마흔이 넘어서야 서툴지만 조심스럽게 내 상처를 꺼냈다. 무엇보다 자유롭고 싶었다. 




학창시절에는 무심코 편모, 편부, 조손, 소녀소년가장 등 다양한 가족형태를 무시하는 발언을 듣는 경우가 있었는데, '내가 그런 가정의 아이인데...'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굳이 말하지 않았다. 교사가 된 후에도 문제 행동을 보이는 학생이 있으면 "아빠가 안계셔서 그래, 엄마가 안계셔서 그래, 할머니가 키우는 애라서 그래..."라는 표현으로 그 학생의 정체성을 한마디로 정의하는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불편함을 느꼈지만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 순간마다 느끼는 불편함이 나의 '콤플렉스'라는 걸 알았다. 



나는 곱게 자란 것처럼 보인다는 첫인상 평가가 싫지 않았다. 하지만 곱게 자란척 하는 나를 스스로 바라볼 때마다 내 안의 콤플렉스도 점점 자라났다. 그렇게 억압된 순간, 순간은 그림자가 되어 나를 집어삼킬 만큼 커졌다. '척'하는 삶은 현실적 자아와 이상적 자아 사이의 괴리감으로 고통스러웠고, 결국은 지치게 했다. 척하는 것에서 벗어나 스스로에게 자유로움을 주고 싶었다. 내가 선택할 수 없었던 환경적 조건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계속 부끄러워한다면, 그건 부모님의 삶을 부정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나를 쫓아다니며 괴롭혔다. 


자유, 굳이 다른사람이 궁금해하지 않을 나의 이야기를 밝히는 것은 그 해방감을 통해 스스로를 인정하는 경험을 하고 싶었다. 자존감이 더 높아지고 저 사람이 나의 조건으로 나를 무시하거나 떠날 것이라는 두려움이 사라지는 때가 오게 된다. 나아가 자기공개가 필요하지 않은 치유단계에까지 이르게 된다고 한다. 누가 알려준 것이 아닌데도 나는 스스로 치유의 과정을 하나씩 밟고 나아가고 있다. 이러한 나의 변화를 접할 때마다 모든 사람의 내면에는 스스로를 치유할 힘이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더 많은 자기공개가 필요할 수도 있어요.



강의와 블로그를 통해 자기공개를 한 내 이야기를 듣고 주치의가 하신 말씀이다. 치유과정에서 흔히 보이는 모습이고 더 많은 포장지를 벗어내고 싶을 수도 있다고, 그 용기를 격려한다고 말씀하셨다. 



병원에서 주치의와 상담할 때마다 느끼는데, 이 분은 나의 단계를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먼저 어떤 해법을 제시하지 않는다. 3주마다 있는 병원 진료에서 그동안 내가 한 일을 이야기하면 척척박사처럼 답을 내려주신다. 응원과 격려로. 지금의 주치의 선생님께 치료를 받은지 2년이 다 되어가는데, 2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를 보면 엄청나게 치유되었다며 나보다 더 좋아하신다. 지금의 주치의를 만난 건 진짜 행운이다. 그리고 나에게 맞는 병원을 찾아나선 나 스스로도 칭찬해주고 싶다. 나는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늘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치유될 것이라는 믿음도 확고하다. 그래서 나는 나을 수 밖에 없다. 단지 시간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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