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모임
읽기와 쓰기의 고독이 지닌
깊이가 나를 반대편에서,
예상치 못했던 방식으로
다른 사람들과 이어지게 했다.
너는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서 사랑받을 거야.
-리베카 솔닛, <멀고도 가까운>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라는
<데미안> 속 헤르만 헤세의 말처럼,
자신의 세계를 깨고 새로운 세계로
기꺼이 확장하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곳으로 가야 합니다.
"대체 그런 사람은 어떻게 만날 수 있나요?"
"오늘 점심 메뉴는 만장일치로 통일되었나요?"
/
모두가 같은 메뉴를 선택하지 않는 일이 기본값일 거예요.
이런 뻔한 결론을 잘 알면서도,
그가 나와 다른 것이 기본값일 텐데, 점심 메뉴를 고르는 것처럼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람마다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고
바라보는 방향이 다르고
문제상황에서 선택의 기준이 다르다는
활자 속 진리를 내면화하는데 가장 큰 도움이 된 습관이
글쓰기였어요.
나의 경험으로 이루어진 세계는 번번이 한계에 부딪쳤고,
그 시간을 견뎌내면서 겹겹이 쌓여간 상처들을 외면하며 살아왔어요.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도 속이 텅 빈 듯한 공허감은 점점 크게 자리 잡았습니다.
손에 쥐어지지 않고 모래처럼 빠져나가는 생을 바라보며, 이 결핍을 어떻게든 채워나가기에 급급했습니다. 좀 더 빛나기 위해, 더 나은 성과를 내기 위해, 그럴듯한 트로피를 가지기 위해
숨 쉴 틈 없이 꽉 채웠어요.
그리고
임계점을 넘어섰을 때, 부러졌습니다.
올라가는 시간은 오래였지만, 무너지는 건 순식간이었습니다. 그제야 스스로를 돌아보았어요.
"나... 제대로 살고 있는 건가..."
결핍은 채워야만 하는 건 줄 알았어요.
때로는 비우기를 통해 쉼을 갖고 여백을 허락해야 한다는 걸, 부러지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자신을 스스로 방치해 버린 그 시절, 나는 삶의 끝자락에 간신히 매달려 있었어요. 힘 빼고 잠영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나란 존재는 점점 깊은 심연으로 가라앉았습니다.
출구 없는 미로에서 길을 잃고 제자리를 맴도는 것만 같은 시간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건,
오랜 시간 억압된 목소리를 토해내면서 길을 찾았기 때문이에요. 하고 싶은 말들을 세상에 쏟아놓지 못하고 가슴 깊이 묻어둔 '수많은 나'를 종이에 수놓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대개 부정적인 생각이 나 감정을 표현하는 걸 힘들어합니다. 불편함을 느끼는 것 자체가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것 같고, 나쁜 것으로 인식하며, 아니라고... 저항하기도 합니다. 이 자연스러운 과정을 수용하지 못하고 불편함을 느끼는 자신을 비난했고, 더 성숙한 사람이 되라고 몰아세우기도 했습니다.
이상적 자아를 설정해 두곤,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스스로를 비난했어요.
아프다 슬프다 말하지 않는다고 해서 아프지 않고 슬프지 않아 지는 게 아니었어요.
마음의 고통을 표현하지 않은 채 그저 참고 살다 보면,
삶의 무게에 짓눌려버리기도 한다는 걸 경험했습니다.
무너지고 나서야 그동안 억눌리며 살아왔던 나 자신을 직시할 수 있었어요.
나를 힘겹게 한 짐의 실체들은 세상에 미처 풀어놓지 못하고 가두어두었던 수많은 목소리였어요.
그동안 살아오면서 받은 온갖 상처들과 되돌려주지 못했던 숱한 말들을 종이에 토해냈습니다.
하고 싶지만 차마 하지 못한 말들을 풀어내는 과정에서 내 마음을 형성하고 있던 구조와 삶의 패턴들을
거리 두어 바라볼 수 있었고 쓰라린 상처들이 조금씩 치유되어 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 어떤 사람이라고 믿고 싶은지 그 마음 내막을 면밀히 보는 것,
욕구와 생각과 행동이 얼마나 모순적인지에 대해 알아차리는 것,
안다고 여겼던 오만에서 모름을 자각하고 겸허해지는 것,
대립적이거나 마뜩잖은 마음의 내용들을 기꺼이 허락하는 것.'
글을 쓰며 나를 둘러싼 수많은 조각들을 마주할 수 있었고 외면했던 '수많은 나'와 연결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본래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품은 온전함 그 자체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런 과정 하나하나를 통해 자기 생각을 정립하고 문장으로 선명하게 기록해 나가며
'생의 미학'을 살아내게 되었어요. 나의 한계를 만나며, 그것을 수용할 수 있었어요.
자기 이해를 전문가에게 의탁하기보다
스스로 성찰하고 풀어가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으며
그중 가장 손쉬운 하나가 내 생각에는 글쓰기다.
-은유, <글쓰기의 최전선>
글을 쓰며 알지 못하는 타인의 처지를 상상해 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함께 쓰고, 읽고 나누는 글벗들을 통해
'저마다의 삶의 이력과 고단함'에 귀 기울일 수 있었어요.
이제껏 내가 살아온 삶의 방식과 전혀 다르게 사는 사람들을 만나며
내 경험과 인식의 한계를 알아차립니다. 저마다의 삶의 나누고 저마다의 존재에 관심을 가지면서
일상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그냥 넘기지 않게 되었어요.
힘겨운 시간을 위로해 준 노랫말처럼,
누군가의 글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하루를 살아갈 용기를 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나의 이야기를 기록한 문장이 누군가의 마음을 열게 하는 시작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나를 아는 사람뿐만 아니라 모르는 사람과도 연결될 수 있었던 통로는 글쓰기였습니다.
나를 치유하고 세상과 연결되는 글쓰기,
함께 하실래요?
치유의 글쓰기에 관심이 있으시고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블로그에서 확인해 주세요 ^^
https://blog.naver.com/healerjin04/2230084362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