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매력
100m 달리기에서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0.01초라도 빨리 스타트하는 것이다. 육상경기에서 부정출발로 인해 실격되는 장면을 보기도 하는데, 한계를 마주 하긴 하지만 그 시간이 짧고, 빠른 시간에 온전히 몰입하여 달려야 한다.
그러나 마라톤 경기에서는 가장 먼저 스타트 하는 게 중요하지 않다. 장거리를 뛸 때는 초반에 조금 앞서거나 뒤처지는 것이 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결론이 나버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한계를 여러 번 넘어선 뒤에야 결승점에 닿을 수 있다.
나는 책쓰기를 100m 달리기, 글쓰기를 마라톤이라고 생각한다.
책쓰기는 기획 의도에 맞는 주제를 잡고 어떤 흐름(목차)로 쓰일지 결정한 뒤, 한 권 분량을 채우는 작업이다. 기획 자체가 어렵지만, 몰입해서 쓰다 보면 끝이 보이고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예상할 수 있다.(책이 나온 뒤 진행되는 판매, 홍보, 마케팅은 포함하지 않겠다.)
반면 글쓰기는 언제까지 써야 할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필요할지 알 수 없다. 사람은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변화하기 때문에(살아가면서 수많은 방지턱을 넘어설 때마다) 경험이 늘어날수록 배움이 쌓여가고 그에 따라 언어 표현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3년 전의 글과 요즘의 내 글만 보더라도 문체가 변화했고, 주제에 따라서 표현방식이 달라지곤 하는데... 나는 글쓰기의 매력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글에 대한 고민 시간이 누적될수록, 퇴고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옷을 바꿔 입듯, 내 문장도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한번 글쓰기의 재미를 경험한 사람은 '잠시 멈추는 시기가 오더라도' 결국 다시 쓸 수밖에 없다. 마라톤이 주는 러너스 하이처럼 도취감이 있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그 자체로 해방감을 준다. 목구멍에 쌓인 하고 싶은 말을 토해내고, 거리를 두고 바라보며, 알아차리지 못했던 나를 발견한다.
글을 잘 써서 무엇이 되겠다는 생각보다는 행위 자체의 즐거움 때문에 계속 쓰게 되는 게, 글쓰기의 가장 큰 매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