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감정 알아주기
남편과 나는 매일 빅5 병원에서 좀 더 빠른 진료 예약을 위해 혹시 예약 취소자리가 생길까 하여 매일 각 병원 예약사이트를 뒤지고 전화를 했다. 몇 달을 기다려야만 진료를 받을 수 있다니... 한참 키가 크고 있는 아이의 다리 변형은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고 있었다.
간절함이 하늘에 통한 걸까!
A병원에 취소 자리가 생겨 예상보다 일찍 진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오랜 기다림과 달리, 진료 시간은 짧았고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수술을 해야 합니다."
다리 변형이 더 심해지지 않으려면 수술이 급했다. 그러나 하나의 수술만 해야 하는 것 아니었다.
"골교절제술과 성장판 유합술을 동시에 진행하면 좋겠지만, 일단 콘퍼런스 후 수술을 결정하겠습니다. 수술 날짜 예약부터 할게요."
소아정형외과에서 유명하신 선생님께 빠르게 진료를 받을 수 있게 된 데에 감사할 틈도 없이, 골절된 성장판을 제거하는 수술(골교절제술)은 할 수 있을지 말지 회의를 해봐야 한다고 하셨다. 하지만 아이의 성장 속도가 빠른 시기라서 다른 케이스에 비해 다리 변형이 심해지는 상황이어서 수술을 급하게 해야 했다. 되도록 빠른 수술 일정을 잡을 수 있도록 수술 담당 간호사와 상담하라는 오더가 내려졌다.
그리고 약 3달 후 수술 날짜를 예약하고 병원을 나왔다.
가장 빠른 수술 일정이... 3달 후였다.
며칠 뒤, A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수술 취소가 발생하여 우리 아이가 '그날' 괜찮다면 수술을 받을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당연히 있던 일정을 없애서라도 수술을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됩니다. 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무조건 된다는 말을 하며 앞에 사람이 있는 것처럼, 허공에 허리를 숙여 인사를 반복했다.
당장 3일 뒤로 잡힌 수술,
급하게 입원 및 수술에 필요한 물품을 준비하고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 출결에 관한 서류를 문의했다.
(수술로 인한 장기결석에는 진단서 필수)
슬리퍼와 보호자 침구, 아이가 좋아하는 베개를 캐리어에 넣었다.
그리고 아이의 최애 아이브 포카도 있는 데로 챙겼다.
'마음의 위안을 받는데 도움 되는 물건'이 입원 준비물의 컨셉이었달까...
3박 4일 입원에 기내용 캐리어 두 개가 가득 찼다.
'좀... 오버하는 거면 어때... 대신 수술이라도 받고 싶은데... 아이에게 도움 되는 거 무거워도 다 챙길 수 있어.'
모성애가 뛰어난 엄마가 아닌 나조차도, 아이의 첫 수술을 앞두고서는 긴장, 초조, 불안 등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고, 거의 잠에 들지 못했다. 궁극의 예민한 상태였달까... 온몸의 긴장도가 최고에 달한 아슬아슬함의 끝자락에서는 지금 상황에 도움 되지 않는 불필요한 것들은 일상에서 제거되었다.
오직 아이를 위한 생각과 행동 선택만 남을 뿐이었다.
'가능하다면... 내 다리를 잘라주고 싶다'
'내가 힘든 건 아무것도 아니야. 수술을 앞두고 두려운 아이를 어떻게 도와줘야 할까.'
수술 전 날, 병원에 입원하여 수술 전 검사를 받았다. 주삿바늘만 봐도 놀라며 부들부들 떠는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아이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채 판단할 새가 없이 엄마와 병원이 시키는 데로 움직였다.
그리고 수술을 앞두고 마지막 회진,
콘퍼런스 결과 골교절제술(골절된 성장판을 제거하는 수술)은 안 하기로 했다는 결정을 들었다. 휜 다리의 변형이 더 심해지지 않도록 정상적인 성장판의 성장을 방해하는 성장판유합술만 하게 되었다. 골교절제술을 해야 아이의 다리는 1cm의 차이는 있지만 앞으로라도 정상적으로 자랄 수 있다. 하지만... 아이는 한쪽 다리의 성장이 멈춘 채 20살까지 기다린 뒤, 짧은 다리를 늘리는 뼈 연장술을 해야 한다.
이미 입원하고 검사까지 받았는데...
다른 병원으로 옮길까...?
수술해주는 병원이 있기나 할까?
선택지는 없었다.
아이의 건강과 관련된 문제를 불확실한 경우의 수를 선택할 수는 없었다.
그나마 빠르게 수술을 할 수 있는 병원에서 급한 불이라도 꺼야 했다.
"엄마 수술받기 싫어.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왜 하필 나일까?"
아이의 성장판 손상을 알고 난 후,
다리를 다친 그날로 달려가는 내 마음과 같이 아이도 "그날 왜 운동장에서 피구를 하겠다고 달렸을까..."를 몇 번씩 곱씹으며 스스로를 자책했다.
가슴이 확 끓어오르듯 뜨거웠다가 무거운 쇳덩이를 올린 듯 갑갑했다가를 반복하면서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곤 했다.
"엄마, 엄마!"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있느라 자신이 부르는 목소리에 반응이 늦자 큰소리로 나를 부르며 팔을 흔드는 아이. 아이의 눈을 보며 생각한다. 매 순간 자책과 분노와 후회로 스스로를 괴롭히는 내 마음을 이 아이는 알까...? 아직 10살에 불과한 아이가 수술을 받는다는 사실에 스스로를 향한 자책은 점점 더 부풀어졌다.
"엄마, 나 수술받기 싫어. 무서워... 링거 맞는 거보다 더 아플 거 아냐..."
울먹이는 목소리로 수술받기 싫다는 아이. 아이 또한 자신의 두려움을 말로 토해내며 안심받고 싶은 거겠지...
'내가 대신 아프고 대신 수술받을 수 있다면...'
'아니, 내 다리 잘라주고 내가 다리를 절어도 괜찮은데...'
비현실적인 소망들이 떠오르다 물거품처럼 흩어진다. 고개를 흔들며 정신을 차리기 위해 애썼다.
지금, 내 아이의 수술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는 게 더 우선이다.
어릴 때부터 감각이 예민한 아이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다양한 정보 중 무엇을 받아들이고 제거해야 할지를 많이 혼란스러워하고 힘들어했다. 나는 듣지 못하는 작은 소리, 어떤 공간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뿐만 아니라 지나가는 사람의 살냄새까지 맡는 아이는 낯선 감각이 자신에게 들어올 때마다 감정이 같이 요동쳤다. 그런 아이를 위해 어릴 때부터 함께하던 작업이 있다.
초등 아이를 위한 마음-감정책도 함께 여러 권 읽고 생각 카드와 감정-욕구 카드를 활용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활동이다. 이럴 때 심리 상담 공부를 하고 있는 게 정말 뿌듯하다. 나뿐만 아니라 내 소중한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공부이니까...
아무리 간단한 수술이라고 해도 '수술'이라는 단어가 주는 두려움이 있다. 아이와 함께 처음 경험하는 수술에서 발생하는 막연하고 부정적인 감정을 알아차리는 시간을 가졌다.
감정-욕구 카드를 펼쳐놓고 수술로 인해 생겨난 감정들을 하나하나 헤아리기 시작했고, 스케치북에 자유롭게 단어를 쓰거나 연상되는 이미지를 그리도록 했다. 알아차리고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감정이 가진 에너지가 고요해질 수 있으니까.
아래부터는 실제로 해본 방법을 정리해 보았다.
✔️ 자녀의 수술을 앞두고 있는 부모가 아이의 수술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대화법.
✔️ 준비물;
1. 감정-욕구 카드(생각 카드) 등 이미지가 그려진 카드(아동은 자신의 감정을 단어로 표현하기 어려워합니다.)
2. 기록할 노트와 연필 등 필기도구
3. 수술실 사진
수술을 해본 사람은 알 거예요. 사실 수술 과정은 마취되어 있어서 기억나지 않잖아요. 가장 두려운 순간은,
차디찬 수술대 위에 누워 환한 조명과 기계처럼 사무적으로 움직이는 수술 스텝을 바라보는 시간이라는 것.
수술 직전의 그 짧은 시간이 억 겹처럼 길고 느리게 느껴지고 오랫동안 그 차가움이 기억을 지배해 버리는 것. 그래서 수술은 늘 차갑고 두렵고 자신이 실험대 위에 놓인 물건처럼 기억되어 버린다는 걸.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제 수술의 기억은 '춥다'라는 단어가 딱 들어맞아요.
✅ 막연하게 '수술'이 두려운 아이에게 설명해 '수술실' 사진을 보여주며 설명했어요. (인터넷에 떠도는 드라마 속 수술실 장면을 보여주었어요. 최대한 요란스럽지 않은 사진으로요.)
"수술실은 이 사진처럼 생겼어. 이 침대는... 이 조명은... 이 쇠로 된 도구(메스 등)는..."
저희 아이는 칠판을 손톱으로 긁는 소리, 냄비를 수저로 긁는 소리 등 쇠 긁는 소리에 경기를 일으킬 만큼 싫은 반응을 보이는지라... 수술도구 정리할 때 그 쇳소리가 나지만, 놀라지 말라는 이야기도 덧붙였어요.
✅ 수술실이 추운 것은... 실제 온도를 20~23도로 낮게 유지하고 있다. 이유는 온도가 높아지면 세균 증식이 활발해져 감염을 예방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등등 인터넷 검색으로 알게 된 사실을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어 설명해 주었어요.
지금 머리로 이해한다고 해서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감정-욕구 카드를 꺼내어 현재 느끼는 감정들을 고르게 하였어요.
예를 들어,
✅ '두려움'이라는 감정 카드를 골랐다면, "뭐가 가장 두려워"
"엄마 없이 나 혼자 모르는 의사 선생님들 사이에 있는 게 너무 무서워."
이런 식의 대답이 돌아옵니다. 의외로 아이들은 테이블 데스 이런 거는 생각조차 안 합니다. 역시 아이들도 자신의 경험 안에서 두려움에 대한 대답이 돌아오고, 엄마에게 의존하는 경향이 강한 아이는 자신의 피부가 일부 찢어지고 뼈에 나사가 박히는 것보다 '혼자'가 더 두렵다는 이야기였어요.
✅ '무서움' 카드에 대한 대답은 "엄마 수술이 너무 아플 거 같아서 무서워."라고 대답했어요.
그 외에도 '막막함', '억울함', '슬픈' 등 다양한 카드를 통해 대화를 나누었고, 아이의 불안 온도는 점점 내려갔어요.
아이의 감정을 알아차려주고, 아이를 여러 번 꼬옥 안아주었어요.
"수술 잘 되어서 2시간 뒤에는 엄마를 다시 볼 수 있어"
신뢰하는 엄마에게 반복적으로 안심받은 덕분일까요.
수술 대기실에서 수술을 기다리는 동안 아이는 손을 들며 사진도 찍어 주었습니다.(그리고 지금도 이때의 사진을 함께 보며 이야기를 나누곤 해요. 다음 수술을 기다리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