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작가가 될 수 있을까?
언제부턴지 모르겠지만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적어도 재작년 블로그에 글을 올린 뒤로부터 생긴 '꿈', 작가. '내 이름으로 책 내기'처럼 버킷리스트 같은 건 요즘은 독립 출판하면 그만이다. 근데 그런 거 말고, 규모 있는 출판사에서 선인세 받아가면서 탈고하고 출간과 동시에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는 초대박 신인. 시나리오는 웹툰으로 드라마로 영화로 줄줄이 제작되고 돈방석에 앉는 대형 작가.
생각만으로 오글거린다. 비록 평소 생각의 절반 이상이 몽상과 망상일지언정 꿈이란 단어 자체를 즐겨 쓰진 않는다. 꿈이란 말을 꺼내는 것만으로 그 사람을 비웃기도 했다. 물론 마음속으로지만. 너무 현실감각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너무 큰 걸 바라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면서 내심 내 안의 꿈이 싹도 트지 못하게 짓밟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마흔이 다 되어서 무슨 꿈이야
마음의 소리는 언제나 현실, 돈돈 거릴 뿐. 책을 읽어도 돈이랑 연관될 법한 재테크, 투자 서적, 그나마 글, 글쓰기와 닿아있는 주제래봐야 블로그, 마케팅 서적 정도랄까. 근데 그마저도 돈이다. 돈이 되지 않는 바람은 애초에 꿈이 되기조차 어려운 현실. 나는 어쩌다 블로그를 시작해갖고, 왜 헛바람이 들어갖고, 왜 글을 잘 쓰고 싶어져갖고, 한 술 더 떠 '작가' 같은 게 되고 싶어졌을까.
정작 영문학을 전공하던 대학 땐 글에 별 관심이 없었다. 헤밍웨이, 피츠제럴드 같은 대작가들의 작품을 배울 때에도, 그냥 지루하기만 했다. 늘 '예술가'라는 뜬구름 잡는 직업군이 적성검사 결과로 나와도, 전혀 꿈 따위와 연결될 여지는 없었다. 지금보다 몽상 망상이 더하면 더했을 텐데도, 질풍노도중인 내 마음 돌보기에 바빴다. 글을 잘 쓰고 싶다거나, 작가라는 꿈을 꾼다거나, 그런 큰 그림을 그리기 어려울 정도로 마음도 생각도 좁고 어렸다.
돈 벌 궁리나 더 해, 웬 꿈 타령
작가라니, 글쓰기라니? 대기업은 애진작에 퇴사했고, 유행하던 N잡은 어려웠고, 연일 주식 폭락에 금융치료 제대로 받고 있으니 또다시 회사를 벗어난다는 생각은 이제 생각만으로 사치가 되어버렸다. 어쩌면 드높은 현실의 벽에 부딪힌 반동으로 꾸게 된 현실 도피스러운 꿈일지 모르겠다. 작가라니? 거의 배고픈 예술가의 표상 같은 거 아닌가? 돈 많이 번 작가들은, 내가 알 정도로 유명하니까 그런 걸 테고. 웬 글쓰기?
가족이나 잘 돌봐, 가장이잖아
애 분유값 벌려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해리 포터 시리즈의 JK 롤링도 있잖아? 근데 그 사람이 블랙 스완인 거고. 알려지지 않은 얼마나 많은 무명작가들이 배고파하며 아무 관심도 못 받고 있는지, 통계적으로 명백하잖아. 숫자는, 이성은, 늘 하지 말아야 할 구실을 던져 준다. 작가라니, 글쓰기라니.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안 된다면, 시장성이 없다면, 그냥 가치가 없는 일이다.
근데 마음은 또 아니다. 꿈이라고 거창하게 안 여겨도, 그냥 장래희망, 앞으로 뭐 하고 싶은 거 정도로 가볍게만 여겨도, 글쓰기는 항상 잘하고 싶은 몇 안 되는 일들 중 하나가 되었다. 먹고사는 문제와 관계없이 잘 해내고 싶은 일이라니. 글쓰기라는 꽤나 고급진 열망이, 나이를 먹는 것처럼 해마다 더해간다.
그러려면 결국 계속 쓰는 수밖엔 달리 방도가 없을 것이다. 쓰지 않고 쓰이길 바랄 정도로 어리고 순진한 나이는 지났으니까. 가족을 잘 돌봐야겠다는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 글쓰기를 잘하고 싶다, 작가가 되고 싶다는 순수한 열망에 플러스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결국 잘 해내야 되는 거니까. 세상만사 내가 바라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이 현실적이고 영악한 생각이 역설적으로 시장성을 따지지 않고 그저 일단 글을 쓰게 하는 원동력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까 일단은, 글쓰기.
쓰다 보면 결국 생길 거야, 쓸모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