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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그릿 Oct 14. 2020

우리, 대화 좀 하고 삽시다

가족 좋다는 게 뭐야


"부모님께서 다시 들어가 사셔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지내시는데 차질을 드려 죄송합니다."



집주인 아들에게 연락이 왔다. 8월에 이미 예견된 일이었지만 막상 현실로 다가오니 가슴 한편이 서늘하다. 한숨 한 번 쉬고, 가족 단톡방에 공유했다. 여느 때 대소사와 다름없이.



근데 난데없이 단톡방에 이런 거 좀 공유하지 말라는 누나 2의 급발진. 빈정상하게 '이런 거'라니? 부모님 빠진 톡방으로 옮겨와 누나 둘이 난리다. 엄빠 괜한 걱정시키지 말라는 둥, 막내 티 내냐는 둥. 



아니, 속상한 일 있어 가족이랑 나누려고 한 게 그렇게 잘못인 건가? 자주 있지도 않은 기쁘고 좋은 일만 하하호호 공유해야 하는 건가? 아니지, 무소식이 희소식이니 경사도 굳이 알릴 필요 없겠네. 그럼 가족끼린 대체 무슨 얘기를 해야 하는 거지?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가족은 좀 다르다. 가족은 서로에게 '최후의 보루'가 되어줘야 한다는 생각이다. 애 둘 키우며 이 생각이 더 강해졌다. 기쁘고 좋은 건 밖에 나가 친구들이랑 다 나눠도, 말 못 할 슬프고 속상한 일은 반드시 가족들과 나눠야 한다는 것.



흔한 멘트 있지 않나.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아, 이건 부부 한정인가, 흠흠 암튼.






부모님은 두 분 다 선생님이셨다. 의도하진 않으셨겠지만 선생님 역할은 가끔 집에서도 이어졌다. 자연스레 성적은 부모님의 가장 큰 관심사였다. 그땐 공부만 잘하면 남은 인생 편안하고 윤택하게 잘 살아갈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있던 시절이니, 자식들 공부 잘하기 바라는 부모 마음은 당연했을 거다. 



특히 젊은 시절 아부지는 꽤나 엄하셨다. 당시 학교에서 별명이 '가가멜'이었단다. 얼마나 많은 스머프들을 잡고 다녔을지, 못 봤지만 눈에 선하다.



누나 1은 맏딸이니 그런 아부지 기대와 관심을 제일 먼저 한 몸에 받았을 거다. 혼도 제일 많이 났겠지. 어쨌든 지금은 대기업 팀장님으로 부모님 동생들 보기에 '모범적'으로 살고 있다. 딩크 부부에 회사 다닌 지 20년 됐으니 퇴사 뽐뿌 장난 아닐 거다. 시절이 시절이니 일단은 버티는 듯 보인다.



누나 2는 다소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다. 회사도 다녔다가, 온라인 쇼핑몰도 했다가, 지금은 여행 작가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글 쓰고 강연하며 산다. 얼마 전 국내 여행 관련 새 책 출판 계약했다고 들었다. 둘째라 그런지 샘은 많지만 정도 많다. 여기도 딩크라 조카들 이뻐라 한다.



나는 셋째 막내아들이다. 근데 아부지가 형제들 중 맏이라 우리 집안에선 또 장손, 종손이다. 



"우리 장손 왔는가~"



어렸을 때 시골 가면 할머니한테 늘 듣던 말이다. 세대별로 다 나눠 사는 요즘 같은 시대에 무슨 의미겠냐만은, 막내지만 장손인 이중 역할 덕인지 그저 응석받이로만 크진 않았다. 학교 다닐 때 생활기록부에는 책임감 강하다는 말이 빠진 적이 없다. 



20대 땐 집에서 별말 없이 밖으로 나돌았지만, 결혼하고 아빠가 되니 가족애가 좀 생겼나 보다. 나름의 가족관도 생겼다. 앞서 말한 가족은 최후의 보루라는 생각 말이다. 경사는 굳이 안 나눠도 애사는 꼭 공유해야 한다는 생각이 갈수록 커진다.



더군다나 아빠는, 마지노선이다.

가족의 우산이다.



우리 아부지도 이러셨겠지. 엄한 이면에 이런 고충을 숨겨두셨으리라. 당신 아버지는 일찌감치 여의시고 험한 세상 자식들 이끌고 헤쳐나가기 힘드셨으리라, 생각이 든다. 그래도 난 아직 아부지 건강하고 든든하게 살아계시니 얼마나 다행인가. 동병상련 의지하고픈 마음 생기는 게 당연하다. 내가 아빠 된 뒤론 더 그렇다.



요즘은 곤란한 일 생기면, 아내 다음으로 아부지부터 생각난다. 아들로서, 아빠로서, 내 마음 제일 공감해줄 사람인 걸 알기에. 아부지도 그 심정 아시는지 결혼 전보다 연락이 잦으시다. 지난달 거리두기 단계 상향으로 아내 학원 휴원 했을 때에도, 먼저 재난지원금 신청 일정 챙겨 문자 보내주시곤 했다. 



세상이 좋아져 애들 사진부터 사소한 건강 정보까지, 이것저것 별것 다 간편히 단톡방에 공유한다. 미뤄왔던 부자간 대화가 세월 흘러 그런 식으로 이어지는 셈이다. 평소 안 하던 일대일 대화는 약간 어색하니까, 엄마 누나 매형들 다 있는 단톡방이지만 '아부지, 이것 좀 봐봐요' 하는 마음으로.






동생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하는 누나 1의 속내가 짐작 가지 않는 건 아니다. 부모님 이제 연로하셨으니 맏이로서 동생들 챙기던 마음을 부모님께 옮겼으리라. 챙길 자식 없으니 되려 부모님 더 챙기려는 마음이 이해는 간다.



몇 해 전 부모님께 자식들 사위들 생일 이제 그만 챙기시라 한 것만 봐도, 무슨 생각인지는 알겠다. 그간 자식들 키우고 맘 쓰느라 고생하셨으니 이제 그만 본인들 삶 편히 즐기시라는 큰딸의 배려였으리라. 근데 또 부모님은, 아마 그게 잘 안 되실 거다. 자식들 머리 하얗게 새고 허리 다 굽어도 부모 눈엔 여전히 애기라지 않나. 아무리 생각 안 하려 해도 늘 눈에 밟히는 게 자식이다.



별말 없이 별일 없이 지내다 명절에나, 부모님 생신 때나 모여서 호호 하하 웃고 떠드는 게 가족애가 아니다. 가끔은 걱정 끼쳐도 자식들 어떻게 사는지 늘 궁금한 게 부모 마음이거늘. 마찬가지로 소소한 것 하나하나 가족들과 나누고픈 그 마음이 어디 자식들만 있으리. 부모도 똑같을 거다. 시시콜콜 미주알고주알 다 나누고 들어주길 바라실 거다.



타인과 나누기만 해도 덜어지는 마음이 있다. 피 한 방울 안 섞인 남들과 나눠도 그런데 하물며 가족들과 나누면 더 좋지 않을까. 뭐든 가감 없이 말할 수 있는 게 가족 아닐까. 좋은 일이든 안 좋은 일이든, 어디서든 할 수 없는 얘기라도 가족들과는 나눌 수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나한텐 그게 가족의 의의다. 가족은 최후의 보루니까.



그러니 우리, 진짜 대화 좀 하고 삽시다.

가족 좋다는 게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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