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얼굴을 가졌다.
당신은 얼굴을 가졌다.
필요에 따라 높낮이가 다른 목소리를 내기도 하는, 얼굴 안쪽의 기분을 능숙히 가릴 수도 있는 가식을 포함한 여러 겹의 얼굴을 당신은 가지고 있다. 일터에서 당신을 만나는 사람들은 일터 밖에서의 당신의 얼굴을 알지 못하고, 부모 혹은 연인도 당신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지어 보이는 당신의 얼굴을 다 알지 못한다. 적재적소의, 여러 개의 얼굴들.
누구나 그렇듯 거의 본능에 가까운 감각으로 보여지는 것과 감출 것들을 영리하게 고른다. 선별된 이미지를 크롭 하거나 필요에 따라 확대하기도 한다. 간단한 보정은 하되 심하게 가공된 느낌을 주는 필터는 쓰지 않는다. 적절한 텍스트를 곁들인 이미지를 전시하면서 당신은 당신의 얼굴을 완성해간다.(당신이 되어간다.) 완벽하게 혼자일 때 얼굴을 벗을 수 있을까. 당신은 스스로 얼굴을 벗을 줄 모른다. 심지어 일기를 쓰는 순간에도 당신은 당신의 얼굴 뒤편을 정확히 바라보지 못하므로.
이제 막 섹스를 하게 된 사이, 계산 없이 밀어를 나누어도 안전하다고 느끼는 사람 앞에서만 비로소 당신은 잠시 얼굴을 벗을 수 있게 되지만 그런 사람은 쉽게 찾아오지 않을뿐더러 타인은 완벽한 구원이 아니므로 호르몬의 은혜가 걷히고 나면 불현듯 벗어놓았던 속옷을 주워 입는 사람처럼 한층 다르고 두터운 겹겹의 얼굴을 한 채로 이별을 고하기도 한다. 더구나 당신은 완전한 혼자가 되는 방법을 자주 잊는 탓에 손바닥 안에 난 작은 불빛 속으로 얼굴을 밀어 넣는다. 그곳에서의 얼굴은 완벽에 가깝고 부족한 돈이나, 시작도 안 한 설거지, 피부 트러블 따위는 없거나 블러 처리되지만 더 완벽해 보이는 타인들의 얼굴을 관음 하고 서로 참조하며 비슷한 얼굴을 만들어 간다.
주차금지용 약수통이 굴러다니는 동네 골목, 편의점 도시락, 성실한 카드고지서, 배수구의 머리칼, 메신저의 차단 목록, 오늘 당신이 지나온 곳, 그러나 기록되거나 자랑할만한 것이 못 되는 풍경이 당신 주변을 배 회한다. 당신이 의식하는 당신의 얼굴 안에 그런 풍경은 없다. 오로지 기록되는 사진만이 당신의 오늘을 이루고 훗날의 기억으로 자리 잡는다. 기억하기에도 바쁜 당신을 위해 작년 오늘 당신은 어땠는지 친절한 알람을 받기도 한다. 다른 것은 얼굴 뒤의 심연으로 가라앉는다. 오늘도 완벽한 얼굴을 한 당신은 새로운 바에서 칵테일 한잔을 시킨다.
이름 없는 사진을 전달받고 사진을 바탕으로 씁니다.
사진 | 2019년 7월 7일 가비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