쫌 웃긴 우리집
무료한 겨울 일요일이었다.
엄마가 말했다.
"돈이 없어서 놀러 안 나가니? 용돈 줄까? 너도 남들처럼 놀러도 가고 그래야지."
엄마도 참 웃긴다. 내 월급을 몽땅 엄마에게 드리는데, 선심 쓰듯 용돈을 말한다. 실상은 내 돈인데.
아빠가 안 계신 집안의 장녀는 남들처럼 하고 싶은 것을 하기에는 책임감이 너무 크다.
작은 창문으로 겨울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지점에 발령받아 온 신입직원이었는데 혹시 연극을 보지 않겠냐고 했다.
망설임 없이 예스라고 했다. 엄마의 잔소리와 걱정 어린 눈에서 도망쳐야 했다.
시청 앞에 있던,
그 시절 춘천에서 가장 괜찮았던 공연장인 문화예술회관이었을 거다.
'오장군의 발톱' 참 특이한 제목이었다. 아쉽게도 지금은 내용이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연극이 끝나고 키 큰 플라타너스 나무 길을 맹숭맹숭 걸어 내려왔다.
회사 골목에 있던 닭 한 마리 식당에서 백숙 반마리와 칼국수를 먹었다.
그가 나를 집까지 바래다줬던가 조차도 기억이 희미하다.
닭칼국수를 하시던 사장님은 지금은 소양댐 아래서 큰 닭갈비집을 기업처럼 운영하신다.
"내가 위문편지를 읽을 때 당신은 초등학교 졸업이나 했나?" 하며 웃는 남자.
여섯 살이나 많고, 고지식한 경상도 시골 사람이고, 대한민국의 장교였던 사람이랑 올 겨울이면 함께 산 세월이 서른세 해가 된다.
세월은 용기와 결단력을 시험한다고 한다.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세상에 없던 용기를 장착하고 어쩌면 실속 없는 결단을 하며 쫌 웃기게 살 줄은 꿈에도 몰랐지.
그때 그 전화를 받지 않았으면 내 삶이 좀 달라졌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