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묵하게 읽어주는 어른이 되는 것
초등학교 2학년 친구들과 함께 그림책 읽기 수업을 한지 딱 한 달이 되었다. 방학 기간 한 주를 빼면 3번째 만남을 가졌는데, 아이들이 수업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오는 발걸음이 느껴진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함 시작했던 수업. 자신감을 갖게 해준 존재도 여러가지 수업자료가 아니라 오히려 아이들이라는 것도 시간이 지날 수록 느끼고 있다.
치료실을 찾은 아이들은 또래와의 소통에 어려움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그렇다고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대화에 끼여들고 싶지만 차례를 지키는 방법을 알지 못해서, 알더라도 서툴어서, 또는 대화를 함께 하고 싶은 의지가 적은 경우도 있다. 내가 만난 아이들은 고학년이 되어갈 수록 또래와 함께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표현 방법이 매끄럽지 않거나 표현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아이들과 그림책 읽기 활동을 하고나면 여러가지를 느끼는데 그 중 하나는 아이들에게도 '독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가정에서 부모님이 독자가 되어줄 수 있지만 가족이 아닌 타인이, 무엇보다 친구가 자신의 글을 읽어주고 들어주는 시간을 아이드은 기다린다. '내가 먼저 하고 싶어요' 이 말을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는 교실도 언어치료실 안에서의 그룹 수업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아이들에게도 독자가 필요하다. 어떠한 지적을 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글을 읽어줄 독자. 어린 시절에는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이 독자가 되어주시곤 했다. 요즘은 인권 이슈로 인하여 일기쓰기 숙제가 매일 있지는 않다고 들었다. 그 여부를 떠나서 누군가 나의 독자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때로는 설렘을 가지고 등하교를 했던 기억이 난다. '오늘은 선생님이 어떤 말을 써주실까?' 등교 후 일기장을 교탁 위에 올리면서 가졌던 그 설렘의 조각을 조금씩이나마 찾아간다.
요즘 아이들이 글쓰기를 싫어하는 이유, 문해력 책이 넘쳐남에도 불구하고 쓰기를 기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쓰기가 재미없어서' 이 말에는 '동기'가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어른들도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할 때 또는 처음 글이라는 것을 쓰기 시작할 때는 독대를 하지만 나중에는 독자의 반응을 기다린다. 그 독자의 반응이 10개, 50개, 100개의 글을 만들어간다.
아이들에게도 독자가 필요하다. 엄마도 아이의 독자가 되어줄 수 있다.그저 묵묵히 읽어주고 감동받은 부분을 한 구절 다시 전해주는 말을 통해 아이의 마음 속에 글쓰기의 씨앗이 심겨진다. 아이의 글에 독자와 팬이 되어주는 마음을 더 갖고자 오늘도 마음을 가다듬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