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 나갈 수 없었던 입사 첫 며칠은 분명 퇴근했는데도 긴장이 풀리지 않았다. 선배들 취재를 따라나섰던, 첫 OJT전날은 거의 밤을 새우고 현장에 나갔다. 그간 하도 긴장했어서인가 오히려 처음으로 혼자 나간 취재는 떨지 않았다. 오히려 미팅을 잡느라 하루 종일 전화기를 붙잡고 있던 그때 더 떨었던 거 같다.
어쩌면 바빠서 긴장할 새 없었는지도 모른다. 혼자 현장에 발을 뗀 뒤에는 갈수록 더 바빠지기만 했었으니까. 매일이 미팅이었고 미팅 장소는 참 다양했다. 가장 많이 움직인 날은 당산역, 이대 앞, 오금동 순서로 미팅을 갔다가 회사에 돌아온 날일 정도다. 취재원과 시간 약속을 맞추기 쉽지 않다 보니 동선은 늘 뒤죽박죽이었다. 그럼에도 하루의 시작과 마무리는 회사였다.
대부분의 출입처가 회사보다는 집에서 더 가까웠던지라, 현장에 나가면 집 근방을 자주 지나쳤다. 내 출근길 지하철의 시작점은 삼성역인데, OJT시절에 하루에 한 번은 지나갔던 것 같다. 행사와 미팅이 겹친 선배가 날 행사장으로 투입하면서, 혼자 나간 첫 현장도 삼성역이었다. 그날은 출근하자마자 바로 삼성역으로 떠났었다. 바로 전날에도 우래옥(삼성역 근처 냉면집) 근처에서 미팅하고 회사로 복귀했었는데.
늘 외근 길에 집 근처를 지나가면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바쁜 와중이라도 청담동이나 삼성역 근방을 지나가게 되면 괜스레 마음이 떴다. 집 방향으로 가는 버스만 봐도 마음이 술렁거렸다. 복귀하고 싶은 마음보다 현장 퇴근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삼성역을 지나 잠실이나 문정동에서 미팅을 해도 똑같았다. 또 오금동에서 미팅이 있었는데, 오금동에서 회사로 돌아가는 그 길이 참 멀게 느껴졌다. 실제로도 멀지만, 집 근처를 지나오니 더 멀게 느껴졌달까.
하루는 복귀하는 길에 대학 동기에게 전화가 왔다. 외근하고 들어가는 길이라고 대답하니,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외근하고 회사로 돌아가야 한다니 그건 너무 비효율 아니야? 언니가 딴짓할 사람도 아니고 왜 현장 퇴근이 안 돼?"
"너는 날 4년이나 봐왔지만 회사는 날 4주밖에 못 봤으니까."
신뢰의 문제도 있겠지만, 사실 회사로 돌아가야 할 이유는 간단하다. 복귀해서 기사를 써야 한다. 나는 기자니까 당연한 걸. 게다가 나는 선배들의 검사를 받아야 기사가 올라가는 수습 기자니까 더더욱 복귀해야만 했다. 선배들도 현장출퇴근은 드문 일이었다 보니 수습기자인 나는 말할 것도 없었기도 하고.
출입처에 얼굴도장을 찍고, 슬슬 홍보대행사에서 내 이름을 알게 될 쯤부터 매일 보도자료가 쏟아졌다. 매일의 취재에 대한 기사와 보도자료를 함께 해내기에 수습기자는 힘이 부쳤다. 사실 내게 할당량이 많진 않았다. 회사는 내게 기대하는 게 없었지만, 나 혼자 고군분투했다. 글이 느려 슬픈 수습으로 야근하다 보니 어떤 날은 내가 마지막 퇴근자였다. 오늘의 야근왕 나야 나. 그렇게 매일 야근이었다. 일이 느려 슬픈 수습기자인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