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플페이퍼의 시작과 리뉴얼 전까지의 과정
브런치는 오랜만이다. 지난 10월 쓰던 글을 마무리하지 못한 이유는 회사와 글을 병행하다가 응급실에 실려갔기 때문. 언젠가 다시 이어 쓸 생각을 갖고 있다. 새롭게 글을 올리는 지금은 퇴사한지 약 4개월째다. 아무래도 브런치는 뭔가 각잡고 써야할 것 같아서 부담스럽다보니 복귀가 늦어졌다. 브런치 울렁증이 생긴 것 같다. 그럼에도 지난주 퍼플피플들에게 퍼플페이퍼 리뉴얼 비하인드를 브런치에 공개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난 돌아왔다. 퍼플페이퍼는 내가 운영하는 뉴스레터이고 퍼플피플은 내 구독자들이다.
비하인드를 공개하기 앞서 내가 운영하는 뉴스레터 '퍼플페이퍼'를 소개하고, 탄생 비화부터 이야기해보려 한다. 만든 지 12주만에 세상 밖에 내놓는 이야기다, 왜냐면 오늘은 12호가 발송되니까. 10회만에 로고를 만들었고 11회만에 굿즈를 만들었으며 12회만에 인스타를 개설했다. 그 이야기 모두 풀어야 하다보니 처음부터 이야기해야 한다. 이제 그걸 다 거슬러 올라가서, 퍼플페이퍼를 처음 기획했던 2월의 어느날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퇴사 후 외주일을 시작하기 직전, 내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면서 발견한 내 삶의 방향성, 지향점은 '영감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 그리고 동시에 가장 친한사람이 내게 제안했던 것, '민정이는 잡지를 해야 할 것 같아, 관심사가 넓고 다양해서 어떻게 사람이 이럴 수 있을까 했는데.. 잡지였어'. 그랬다. 영감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때, 내가 줄곧 그렇게 살아왔다는 걸 떠올렸었다. 그 중 하나가 미국 사는 친구에게 내 소식과 함께 한국의 현재 트렌드를 소개하면서, 그게 친구 작업물에 영감이 되길 바라는 나였다. 미국 사는 친구에게 보내왔던 손편지처럼 가벼운 잡지를 시작해볼까 생각했다. 미국 사는 친구에게 영감을 주는 편지를 보낸 것처럼, 영감을 주는 편지 한 통을 독자들의 우편함에 넣어주자고 생각했다.
영감을 주는 편지 한 통, 그게 퍼플페이퍼의 시작점이다.
잡지를 만들라는 이야기가 반가웠던 건 근 10년간 취미가 잡지보기였기 때문. 영화잡지를 시작으로 2008년?2009년부터 꾸준히 잡지를 봐 왔다, 거의 2019년까지는 그랬다. 2020년부터는 띄엄띄엄. 아무튼. 그랬기도 했고, 기자로 일하면서 항상 아쉬웠던건 매체의 방향성에 나를 맞춰야 했다는 것이다보니 나만의 매체를 갖고 싶었다. 편하게 내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서도 독자에게 유익한 매체, 잡지. 무엇보다 가장 친한사람은 나와 알게 된지 약 3개월 남짓이었는데, 3개월만에 파악된 나는 '잡지적 인간'이었다는 점에서 내가 잡지를 만드는게 필연적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십년간 봐 왔고 그 중 일년반은 신문을 만든 경험이 있으니, 매체를 만들 자격도 충분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잡지를 만들어 배포하는 것. 다양한 플랫폼이 있을 수 있지만, 기자때 독자에게 다이렉트로 정보를 제공하고 싶었던 점을 살려 뉴스레터를 생각했다. 이메일이라는건 독자의 메일함으로 다이렉트로 꽂아줄 수 있는 매체니까. 인스타나 블로그나 유튜브를 시도해보면서 실패해보면서 느낀건, SNS보다 깊이 있고 보다 개인에게 근접할 수 있는 매체가 내게 맞다는 판단이었다. (실패 이야기는 나중에 모아서 다루겠다) 브런치도 사실 너무 좁은 풀이라고 생각해왔다보니 좀 더 범용성 있는 매체를 선택하고 싶었고, 그렇게 생각한게 이메일이다. B2B 매체에 일했던 경험상 왠지 이런 이메일 배포 솔루션을 제공하는 업체가 있을 것 같았다. 바로 검색, 가장 대중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플랫폼 '스티비'를 선택했다. 막상 들어가보니 다양한 디자인의 템플릿을 제공해 손쉽게 뉴스레터를 제작할 수 있는 구조였다. 더욱 맘에 들었다.
플랫폼까지 정했다. 어떤 잡지를 만들까? 정리해봤다. 일단 패션과 음악을 기본으로 깔고 가기로 했다. 내 전공이자 강점은 패션트렌드와 약간의 패션비즈니스 지식이니까. 음악은 패션만큼 내가 좋아하는 요소니까 가져가고. 처음 내게 잡지를 해보라고 제안했던 사람은 술 이야기도 했으면 했다. 술 이야기를 할 때면 내가 청산유수라서. 뭐 그걸 포함해서 이러저러한 아이디어를 생각하다보니 결과적으로 브랜드 이야기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브랜드 소개가 아니라, 브랜드 경험을 나누는 글. 해당 브랜드 마케터에겐 고객경험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가끔 내 생각을 담은 글도 공유하고 싶었다, 그게 어쩌면 그들에게 영감이 될 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내 근황을 소개하기로 했다. 초기 구독자는 내 지인들일 것이고, 그들은 항상 내 근황을 궁금해할 테니까. 나중에 합류할 구독자들도 내게 친밀감을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서 그걸 가져가기로 했다. 실제로 잡지에서 '이달의 이슈'를 매번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이달의 민정'을 하나 가져가기로 한 거다. 구성은 그렇게 정해졌다.
패션도 음악도, 매주 선정할 브랜드도 결국 내 취향이 반영될테니 애초에 그냥 내 취향을 공유하는걸 컨셉으로 가져가기로 했다. 이전에 유리라이프를 기획했을 때 가져갔던 슬로건인 '취향을 통해 나를 발견하자'를 반영한 셈이다.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가 가장 창의적이라는 말을 믿고, 가장 개인적일 수 있는 내 취향을 적기로 했다. 유리라이프가 '취향을 통해 나를 발견하자' 였다면, 이건 '내 취향이 사람들에게 영감이 되었으면'하는 작은 바람이었다. 정리하자면 내 잡지는 결국 '영감을 주는 편지 한 통', 그 내용은 '내 개인적인 취향' 이며, 그게 독자들에게 영감이 되길 바란다는 것.
기획하다보니 내 이름이 필요했다. 이달의 민정도 그렇고, 내가 중심이 되는 1인매체다 보니 화자 설정이 필수였다. 민정이라는 내 본명으로 시작할 수 있겠지만 패션인플루언서나 유튜버중 민정이 워낙 많았다. 독보적일 이름이 필요했다. 블로그와 유튜브에 도전하던 시절, '유민정의 프리라이프'를 줄여 만든 '유리라이프' 여기서 나온 '유리'가 있지만 다시 사용하자니 영 어색했다. 일단 자유라는 요소는 내 인생을 관통하는 지향점이기 때문에 가져가고 싶었다. 자유 앞에 다양한 걸 붙여 봤다. 여러 단어로 아이디에이션 중 '실용예술'이 있었고, '예술' 과 프리, 즉 자유를 붙여 '예리'라는 이름을 완성했다. 레드벨벳 예리는 유명할지언정 크리에이터 예리는 본 적이 없었다. 유리라이프를 만들다 그만둔 건 유리라는 이름이 입에 붙지 않았던 것도 있었는데, 이상하게 예리는 잘 붙었다. 그렇게 예리가 되었다.
크리에이터 예리의 잡지, 영감을 주는 편지 한 통, 내 개인적인 취향이 당신들에게 영감이 되길 바란다는 것, 구성은 '패션은 예리', '음악은 예리', '예리와 브랜드', '이 달의 예리' 뭐 그 정도. 이제 잡지의 이름이 필요했다. 이름이 가장 중요하다보니 꽤 오래, 머리 아프게 고민했다. 바이닐클럽을 생각했을때랑은 차원이 달랐다. 그때는 그냥 그 브랜드를 도와주는 초기멤버였다보니 가볍게 지었지만(사실, 바이닐클럽을 지어갔더니 이미 확정된 이름이 있었다) 이건 내 매체고, 쓸데없는 대작병, 명작병으로 한번 지으면 오래 갈 이름이라고 생각해서 꽤 고심했다. 저작권이나 상표권을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가볍게 기억할 수 있는 편한 이름을 짓는게 목적이었다. '예리레터' 등 예리를 넣을까도 생각했지만 너무 개인적인 느낌이 컸고, 좀 더 컨셉을 소개할 수 있는 이름을 생각했다. 고심 끝에 산책을 나갔다가, 듣던 음악에서 영감을 받아서 결국 지은 이름은 '퍼플페이퍼'. 아이브의 '일레븐' 가사에 보랏빛? 이 나오는 부분이 있는데, 걷다가 '보랏빛'에 꽂혀버렸다. 왜 꽂혔냐면 애초에 내가 보라색을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보라색은 신비로운 색, 영감을 주는 색, 뭐 그런 이미지가 있다보니 '영감을 주는 편지 한 통' 에 적합한 색이었으니까. 퍼플레터, 보라레터, 뭐 다양하게 검색해도 다 뭐가 나오는데 '퍼플페이퍼'는 겹치는게 없었다. 예상보다 다소 길지만 기억하기 나쁘지 않다는 판단에 '퍼플페이퍼'로 확정하게 됐다.
이름을 짓고 나니 다른 뉴스레터에도 으레 쓰이듯, 로고가 필요했다. 그렇지만 이미 기획에 지쳐있었다. 그때를 회상하며 물 흐르듯 쓰고 있지만, 저기까지 생각해내는 데 약 일주일의 시간이 걸렸다. 일단 뭐라도 써서 보내지 않으면 시작을 못할 것 같기도 했고, 로고의 중요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여기에 또 시간이 많이 필요할 것 같았다. 기획에 끝이 없다는 걸 아니까 이쯤에서 시작해야 했다. 시간 리미트를 잡았다. 이름을 지은게 목요일인가 금요일 낮이었고, 로고 디자인을 시작하면 끝이 없을 것 같아서 토요일 오전 12시로 배포 예약을 잡고 글을 썼다. 쓰고 싶은 이슈는 많았고, 길게 쓰면 지루할까봐 짧게 짧게 잘라 썼다. 별다른 모객도 못했다. 개인 인스타그램에 '저 뉴스레터 시작해요' 구독링크 올린게 다였다. 구독링크의 멘트가 제대로 오게 설정하는데도 꽤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렇게 2월 26일 오전 12시 첫 뉴스레터를 배포했다. 사실 기획에 지쳐 '일단 지르자'고 시작한 날짜였는데, 보내고 보니 신기하게도 내 뉴스레터 기획의 시작점, 그 미국 사는 내 절친의 생일이었다. 의도한 게 아닌데 의도처럼 보여서 오히려 좋아.
첫 레터를 보내자마자 바로 다음으로 정해야 하는 건, 구독자 모집을 위한 홍보, 그리고 배포 주기였다.
월간잡지가 경쟁사였던 주간지에서 일하면서 배운 건, 경쟁사가 뛰어나긴 해도 주간지라는 특성상 정보가 빨라서 아무리 월간지가 더 유익한 기사를 내놓아도 시의성과 즉시성에서 주간지가 앞서간다는 거다. 그래서 일단은 주 1회로 정했고, 다음 고민은 발송시간이었다. 마케터들이 사용하는 황금시간대가 있지만 항상 그때마다 쏟아지는 카톡플친의 카톡에 스트레스가 컸던 나다. 이 잡지의 용도를 생각해 봤다. 가볍게 약속 가는 지하철 안에 편하게 읽고, 영감 받은 내용을 약속에 가서 친구랑 공유하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토요일 열한시쯤 보낼까 했지만, 주말은 왠지 메일함을 열기 싫기도 하고 주말에 꼭 약속이 있으리란 보장도 없다. 그래서 가장 보편적인 시간, 주말로 넘어가는 바로 그 시간. 불금의 약속가는 길, 퇴근 길 읽길 바라며 금요일 저녁 여섯시로 시간을 정했다.
배포 주기를 주 1회로 잡았지만 사실 스티비는 월 2회까지 무료 발송이 가능하다. 초기 시작자라 과금의 부담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다른 크리에이터와 교류하고, 내 뉴스레터도 홍보할 겸 '스티비 크리에이터 트랙'에 신청했다. 기획의도를 소개하고, 심사용으로 첫 레터를 보내고 한 일주일? 안에 합격 소식을 받았다. 그동안 브런치도 유튜브도 블로그도 계속 실패투성이었는데, 처음으로 내 콘텐츠를 인정받았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더 진지하게, 적극적으로 내 매체에 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구독자도 적극 늘리고, 콘텐츠도 더 신경쓰자는 뭐 그런 포부였다. 무엇보다 6개월 간 뉴스레터에 매진할 이유가 생겨버려서, 적어도 지난 유튜브나 블로그처럼 도중에 포기하거나 그만두진 않겠구나, 드디어 꾸준히 할 수 있겠구나 희망이 생겼다. 그래서 더 열심히 써내려가기도 했다.
기자 때, 옷을 그렇게 잘 만들면서 어떻게 그렇게 홍보에 인색할 수 있지? 싶은 브랜드들을 몇 봤었는데, 꾸준히 발행해야 하는 콘텐츠 제작자가 되고 나니 그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생산하는데 모든 힘을 써서 홍보할 여력이 없다. 처음 몇 주는 정말, 그저 제작하기 바빴다. 초반엔 하고싶은 말이 많다보니 세이브원고도 있었지만, 애초에 시의성을 중점삼아 주 1회 배포로 시작했기때문에 세이브원고보다는 실시간으로 작성하게 됐다. 그래서 더 모든 에너지를 제작에 쏟고 나면 남는 게 없었다. 극초반이던 3월은 특히, 뉴스레터와 외주를 병행했기 때문에 더욱 홍보에 힘을 쓸 여력이 없었다. 자고 일어나면 일하고, 마감하고, 다음 마감에 힘쓰고, 동시에 페이퍼 작성에 힘쓰고, 그러다보니 어느새 루틴하게 작성하는 나를 발견했다.
한편으로는 객관적인 피드백이 간절했는데 아무런 피드백을 받을 수 없어 힘들었다. 그저 절친한 사람들 몇에게 '쉽게 잘 읽혀서 좋다'는 이야기를 듣는 정도였다. 간간히, 패션콘텐츠다보니 사진이 있으면 좋겠다는 얘기 정도. 답장을 하기에는 그저 쉽게 읽고 넘기는 글이었던 점, 누군가 슈퍼팬이 되기에는 짧았던 배포기간, 뭐 등등의 이유로 어쨌든 답장메일 한 통 없이 홀로 꾸준히 작성만 해 왔다. 구독자 수는 조금씩 늘었지만, 여전히 지인 중심이었고 홍보를 더 하자니 지금까지 보낸 내 뉴스레터가 주는 객관적 이미지에 대한 의문만 가득해졌다. 제작자가 아닌, 타인의 시선에서 평가받고 고칠점을 찾고 싶은데, 애초에 어떤 피드백도 받지 못하다보니 문제점을 내가 몰라 답답했다. 템플릿도 한번 바꿔봤지만 큰 틀이 바뀌지 않아 별다른 변화를 느낄 수 없었고, 니즈를 반영해 사진을 좀 넣어볼까 했는데 패션컨텐츠다보니 뭐랄까 특정 브랜드에 대한 홍보로 비쳐질까봐 살짝 두려움이 있었고, 갑자기 사진을 추가할 명분이 딱히 없어 자연스럽게 넣는 방법을 고심하기도 했다. 열심히 작성에 매진하던게 5회까지였으면 6회쯤부터는 뭘 고쳐야 할까, 어떤게 좋고 어떤게 불편할까, 아무튼 피드백에 목말라있었고 8회쯤부터 생각했다. 10회를 기점으로 페이퍼를 리뉴얼해보자.
지금 생각해보니 10회를 기점으로 리뉴얼하기 잘한 것 같고, 그때 새롭게 기획하면서 많이 되돌아볼 수 있었다. 솔직히 내가 성급하게 피드백을 바랐던 것 같기도 하다. 앞서 말했다시피 슈퍼팬이 되기에 짧은 시간이었으니까. 타이밍 좋게, 리뉴얼을 기획하던 중 스티비 크리에이터트랙 줌미팅으로 운좋게 다양한 팁을 얻을 수 있었다. 수많은 팁 중 어떤걸 내 뉴스레터에 적용하면 좋을 지 고민해보면서, 한 주 내내 리뉴얼 기획에 시간을 쏟았다. 다음 글부터는 리뉴얼 기획 비하인드를 풀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