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기자미술관(73) 이상국 10주기 기념전 <그림은 자유>
화가 이상국(1947~2014)이 세상을 떠난 지 꼭 10년이 됐다. 이상국은 서울대 미술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했지만, 동양화가의 길을 가지는 않았다. 1971년 서울대 미대를 졸업한 뒤 그림을 그렸다. 1984년 동국대 교육대학원을 나와 중학교 미술 교사가 됐다. 그 뒤로도 줄곧 그림을 그렸다. 1989년 교직을 내려놓고 전업 화가가 됐다. 이후 죽는 날까지 그림을 그렸다. 이상국은 천생 화가였다.
이상국은 생전에 회화보다 목판화로 더 주목받았다. 다른 화가들처럼 회화에만 집중한 것도 아니고, 오윤처럼 목판화에만 몰두한 것도 아니다. 이상국은 회화와 판화를 분리하지 않고 같은 비중으로 병행하며, 두 작업이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갖도록 했다. 현장을 스케치한 뒤 목판에 칼로 떠보고 나서 비로소 유화를 그리는 독특한 과정을 거쳤다. 유화를 먼저 그리고 목판을 나중에 찍는 다른 화가들과는 다르다. 목판화에서 조형화된 세계가 유화로 다시 옮겨지는 과정에서 화가만의 독특한 조형 어법이 만들어진다.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되는 이상국의 유작 <무제>는 화가가 2014년 3월 5일 작고하기 일주일 전인 2014년 2월 말에 완성한 작품이다. 4폭 병풍처럼 넉 점으로 이뤄진 연작으로, 짙은 바탕 위에서 해체된 형태의 나뭇잎과 줄기들이 꿈틀거린다. 이상국은 작품을 완성한 뒤 평소처럼 서명으로 마무리하려 했다가 그림에 서명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지 않자 기왕에 쓴 서명을 배경색으로 덮고 나중에 액자를 꾸미면 액자에 서명하려 했다고 한다. 하지만 미처 서명하기도 전에 화가는 세상을 떠났다.
KBS 아카이브에서 확인한 이상국의 인터뷰는 2건이다. 2011년 3월 가나아트센터 개인전 소식이 다른 화가의 전시와 ‘추상 미술’이라는 주제로 묶여 소개됐다. 당시 화가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파괴하고 그것을 재구성해서 나 나름대로의 새로운 조형 질서를 만들었습니다.”
앞서 2006년 4월에는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린 <이상국 목판화전>이 뉴스에 소개됐다. 이때 화가의 인터뷰 내용은 다음과 같다. “화면 그 자체에서의 또는 대상 그 자체가 갖고 있는 어떤 혼이라든가 기를 나름대로 표현한다, 소화시켜서 표현한다…” 사이 좋게 회화와 목판화 전시회가 각각 한 건씩 남아 있다. 두 뉴스 모두 KBS 뉴스 홈페이지에서 검색하면 원고와 영상을 볼 수 있다.
■추상 미술에 담은 ‘자신만의 세계’ (KBS 뉴스광장 2011.03.24.)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2263398
■[문화살롱]韓·中·日 판화 ‘삼국지’ (KBS 아침뉴스타임 2006.04.10.)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62445
이상국은 대중에게 많이 알려진 화가는 아니다. 하지만 한평생 따뜻한 시선으로 우리네 삶과 정경을 소박하고 담백하고 표현한 작품들은 회화, 목판화 할 것 없이 지금 봐도 참 좋다. 과거 가나아트가 접견실로 사용하던 1층 공간을 전시장으로 꾸며 첫 번째 방에서는 회화를, 그 안쪽 방에서는 목판화를 선보인다. 목판화 방에서는 완성된 작품과 더불어 목판 원본도 만날 수 있다. 인물 목판화 가운데 <자화상>(1985)은 생전에 화가가 명함 이미지로 사용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