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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석 Jul 19. 2024

나는 자유롭기 위해 그린다

석기자미술관(73) 이상국 10주기 기념전 <그림은 자유>

나무 4326-R II, 1993, 캔버스에 유채, 97×145cm


"나는 자유롭기 위해 그린다. 그림 그 자체는 자유(自由)다.

자유는 인습적이지 않은 데 있다고 생각한다.

한때는 현대(現代)라든가 전위(前衛)라는 혼돈에 빠지기도 했었다.

인습과 혼돈, 그것은 내가 아니었고 물론 자유도 아니었다."

  

산동네 II, 1977, 회벽에 안료, 75×91cm


"현실로 돌아가 오늘의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다.

가장 가까운 삶의 부분들을 그리고 싶었다.

우리는 무엇이고, 어디에, 어느 때에 서 있는가를 이야기하고 싶었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주방에서, 1981, 마포에 혼합재료, 61×91cm

 

"그것이 진실로서 표현되었을 때 희열을 느꼈다.

다정한 이웃, 성실한 이웃, 슬픔을 알고 있는 이웃, 삶에 보람을 느끼는 이웃,

이웃을 사랑할 줄 아는 이웃과 오늘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맹인부부가수 II, 1979, 마포에 혼합재료, 78×56cm


나는 앞으로도 자유를 위해 그림을 그릴 것이다.

인습, 혼돈이 아닌 자유.

허재비, 공장지대, 판자집, 산동네, 그 사람, 겨울 사람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

이러한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 한 나는 그림을 그릴 것이고

거기에 온통 벌거숭이를 보여주고 싶다.     


공장지대 (구로동에서), 1978, 마포에 혼합재료, 59×81cm



화가 이상국(1947~2014)이 세상을 떠난 지 꼭 10년이 됐다. 이상국은 서울대 미술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했지만, 동양화가의 길을 가지는 않았다. 1971년 서울대 미대를 졸업한 뒤 그림을 그렸다. 1984년 동국대 교육대학원을 나와 중학교 미술 교사가 됐다. 그 뒤로도 줄곧 그림을 그렸다. 1989년 교직을 내려놓고 전업 화가가 됐다. 이후 죽는 날까지 그림을 그렸다. 이상국은 천생 화가였다.     


(좌) 사람들 I, 1980, 목판화, 36×50cm (우) 겨울사람, 1983, 목판화, 36×55cm



이상국은 생전에 회화보다 목판화로 더 주목받았다. 다른 화가들처럼 회화에만 집중한 것도 아니고, 오윤처럼 목판화에만 몰두한 것도 아니다. 이상국은 회화와 판화를 분리하지 않고 같은 비중으로 병행하며, 두 작업이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갖도록 했다. 현장을 스케치한 뒤 목판에 칼로 떠보고 나서 비로소 유화를 그리는 독특한 과정을 거쳤다. 유화를 먼저 그리고 목판을 나중에 찍는 다른 화가들과는 다르다. 목판화에서 조형화된 세계가 유화로 다시 옮겨지는 과정에서 화가만의 독특한 조형 어법이 만들어진다.     


무제, 2014, 종이에 혼합재료, 62.5×122cm (4점)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되는 이상국의 유작 <무제>는 화가가 2014년 3월 5일 작고하기 일주일 전인 2014년 2월 말에 완성한 작품이다. 4폭 병풍처럼 넉 점으로 이뤄진 연작으로, 짙은 바탕 위에서 해체된 형태의 나뭇잎과 줄기들이 꿈틀거린다. 이상국은 작품을 완성한 뒤 평소처럼 서명으로 마무리하려 했다가 그림에 서명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지 않자 기왕에 쓴 서명을 배경색으로 덮고 나중에 액자를 꾸미면 액자에 서명하려 했다고 한다. 하지만 미처 서명하기도 전에 화가는 세상을 떠났다.     


 

KBS 아카이브에서 확인한 이상국의 인터뷰는 2건이다. 2011년 3월 가나아트센터 개인전 소식이 다른 화가의 전시와 ‘추상 미술’이라는 주제로 묶여 소개됐다. 당시 화가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파괴하고 그것을 재구성해서 나 나름대로의 새로운 조형 질서를 만들었습니다.”      


 


앞서 2006년 4월에는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린 <이상국 목판화전>이 뉴스에 소개됐다. 이때 화가의 인터뷰 내용은 다음과 같다. “화면 그 자체에서의 또는 대상 그 자체가 갖고 있는 어떤 혼이라든가 기를 나름대로 표현한다, 소화시켜서 표현한다…” 사이 좋게 회화와 목판화 전시회가 각각 한 건씩 남아 있다. 두 뉴스 모두 KBS 뉴스 홈페이지에서 검색하면 원고와 영상을 볼 수 있다.     


추상 미술에 담은 자신만의 세계’ (KBS 뉴스광장 2011.03.24.)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2263398     

[문화살롱]··日 판화 삼국지’ (KBS 아침뉴스타임 2006.04.10.)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62445     



이상국은 대중에게 많이 알려진 화가는 아니다. 하지만 한평생 따뜻한 시선으로 우리네 삶과 정경을 소박하고 담백하고 표현한 작품들은 회화, 목판화 할 것 없이 지금 봐도 참 좋다. 과거 가나아트가 접견실로 사용하던 1층 공간을 전시장으로 꾸며 첫 번째 방에서는 회화를, 그 안쪽 방에서는 목판화를 선보인다. 목판화 방에서는 완성된 작품과 더불어 목판 원본도 만날 수 있다. 인물 목판화 가운데 <자화상>(1985)은 생전에 화가가 명함 이미지로 사용한 작품이다.     


자화상, 1985, 목판화, 50×36cm

 

전시 정보

제목이상국 10주기 기념전 <그림은 자유>

기간: 2024년 8월 4()까지

장소가나아트센터 1층 Space 97 (서울시 종로구 평창30길 28)

문의: 02-720-1020


자화상, 2001, 캔버스에 유채, 47×36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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