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기자미술관(234) 칸옥션 제40회 미술품 경매 프리뷰
안중근 의사가 중국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뒤 체포돼 감옥에 갇혀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일본 경찰은 거사에 가담한 다른 인물들을 체포하기 위해 안중근 의사의 사진을 수배용으로 뿌렸다. 안중근 의사의 머그샷과 저격에 사용된 권총 사진이었다. 그러면서 사진 옆에 한자와 일본어를 섞어 ‘흉한 안중근과 흉기(兇漢安重根ト凶器)’라고 적었다.
일본이 어떤 나라인가. 예나 지금이나 ‘굿즈’에 진심인 나라다. 수배용 전단을 잽싸게 엽서로 만들어 시중에 팔았는데, 이게 대박이 나서 불티나게 팔린다. 일본에서도, 조선에서도 안중근 의사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을 테니, 안중근이 대체 어떻게 생긴 인물인지 사람들이 당연히 궁금해하지 않았겠는가. 눈치 빠른 상인들은 바로 그 점을 노렸다. 조선인들은 민족정신을 상징하는 초상으로, 일본인들은 화제의 인물로 ‘안중근’을 열렬하게 소비했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바로 그 <안중근 엽서>가 칸옥션 11월 경매에 나왔다. 세로 13.5cm, 가로 8.5cm로 딱 엽서만 한 크기이며, 커다란 나무 액자에 담겼다. 같은 엽서가 꽤 많이 시중에 유통됐으리란 점을 고려하면, 지금까지 남아 전하는 엽서가 제법 될 것 같은데 실상은 다른 모양이다. 이런 엽서를 본 게 나로서도 처음이다. 추정가는 8백만 원에서 1천5백만 원.
공교롭게도 이번 경매에 일제강점기 자료가 여러 점 나왔다. 먼저 일본 화가 히요시 마모루(日吉守, 1885~?)가 조선 풍속을 담은 목판화 석 점이다. 히요시 마모루는 1909년 설립된 경성중학교 도안과 교사로 재직하며 조선 풍속을 담은 작품을 여럿 남긴 인물로, 조선미술전람회 심사위원과 조선미술협회 이사장을 지냈다.
멀리 황톳배 두 척이 떠 있는 너른 강가에서 빨래하는 여인들의 모습을 담은 게 하나요, 돈화문(서대문)으로 보이는 문을 중심으로 펼쳐진 거리의 분주한 일상을 담은 게 둘이요, 장승이 서 있는 어느 시골 마을 초입 풍경을 담은 게 셋이다. 날카로운 판각이나 강렬한 색채가 두드러진 여느 목판화와 달리 조선 풍경을 상당히 잔잔하고 부드럽게 묘사한 게 특징이다.
조선총독부철도국이 발행한 기념엽서 석 장도 경매에 나왔다. 겉봉투와 반으로 접힌 엽서 석 장이 한 세트를 이룬다. 봉투 안에 든 속지를 보면 조선 지도 다섯 군데를 찍어 그곳 풍경을 하나하나 엽서로 만든 거로 보인다. 따라서 엽서는 모두 다섯 장이었을 것이다. 경매에 나온 석 장은 평양 모란대(牡丹臺), 조선 여인의 물 긷기, 경주 신라 무열왕릉 귀부(龜趺)다. 표지에 ‘증정(贈呈)’이라고 인쇄된 걸 보면 관광객들에게 준 기념품이었던 것 같다.
또 하나 주목되는 출품작은 <일한분의결국담판지도 日韓紛議結局談判之圖>라는 다색판화다. 이 판화에는 1882년(고종 19) 임오군란 후 일본의 압력으로 체결된 제물포조약 협상 장면이 담겨 있다. 화면 왼쪽에 서양식 군복을 입은 일본 측 인사 4명이, 오른쪽에 전통 복장을 한 조선 인사 4명이 서로 삿대질하며 열띤 토론을 벌이는 모습이다. 조선 측 인사는 영의정 홍순목, 좌의정 김병국, 우의정 송근수와 당대의 실권자였던 흥선대원군이다. 화면에서 일본인들에게 손가락질하는 인물이 바로 대원군이다.
이 작품은 조선 개항과 일련의 외교 사건(운요호 사건, 강화도조약, 제물포조약)을 일본의 외교적 성취로 묘사한 근대 일본의 선전용 판화로, 조선을 향한 일본의 문명 개화론적 시각과 외교적 우위 의식을 반영했다. 시각적으로 화려한 구성과 인물 묘사를 통해 일본이 조선과의 외교를 주도했다는 이미지를 강화한, 정치·외교사적으로 의미가 큰 자료다.
이번 경매의 하이라이트 작품이 바로 그 흥선대원군, 석파 이하응의 대작 병풍 <괴석묵란일지십곡병 怪石墨蘭一枝十曲屛>이다. 이번에 최초로 공개되는 이 작품은 이하응이 55세이던 1876년에 운현궁에 머물면서 그린 것이다. 좌우로 근경에 위아래로 가파른 경사면을 따라 바위를 배치하고, 그 뒤로 층층이 언덕을 쌓아 올렸다. 화면 중앙과 오른쪽에 형태와 높이가 각기 다른 괴석들이 놓여 있다. 바위의 윤곽은 옅은 마른 붓질로 그리고, 그위에 짙은 먹으로 태점을 찍었다. 굽이치는 언덕을 따라, 그리고 언덕 사이사이 괴석 주위로 난초가 무더기로 어지럽게 피었다.
화면 왼쪽에 ‘광서2년병자윤하노석사우수작루(光緖二年丙子閏夏老石寫于壽酌樓)’라고 쓰고 석파(石坡) 주문방인과 대원군장(大院君章) 백문방인을 찍었다. 병풍 오른쪽 바위 아래에는 이하응이 50대부터 말년까지 자주 쓴 ‘포오호불여장차서 袌烏號不如藏此書’ 주문방인을 찍었다. 서명과 인장을 통해 이 작품이 1876년 윤 5월 수작루에서 그려졌음을 알 수 있다. 수작루는 1865년(고종 2) 경복궁 중건이 한창일 때 석경루에서 ‘수진보작(壽進寶酌)’이라 적힌 소라 모양 술잔이 발견된 걸 기념해 이하응이 운현궁에 있는 자신의 거처 옆에 지은 작은 누각이다. 추정가는 1억 5천만 원에서 3억 3천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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