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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생 Sep 22. 2022

이쯤에서 '엄마노릇' 그만 하고 싶다

엄마됨을 후회하는 것과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별개... 나도 가능할까

영덕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KTX 열차 안에서 안도감과 부담감이 서로 우위를 다툰다. 익숙한 집과 아이들을 향하는 마음이 그러하다.


자연의 품속에서 누리는 자유
                                                                             

▲  금강송과 하늘과의 조화로움


요양차 영덕에서 보내는 9박 10일은 한 마디로 '천국생활'이다. 가족들을 위한 가사노동과 감정노동에서 해방되어 온전히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 창밖으로 펼쳐진 하늘과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따뜻한 물 한 잔을 마신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에 몸을 맡기며 30분간 풍욕에 집중한다. 밤새 굳어진 근육과 관절이 풀어지며 마음도 가뿐해진다.


그리고 식당행! 이것이야말로 영덕 요양 생활의 백미다. 분주하게 씻고 다듬고 썰고 데치고 볶고 지지고 하는 수고 없이, 숟가락 젓가락 운동만으로 밥을 먹을 수 있다니 얼마만에 누려보는 호사인가. 


과일과 샐러드와 빵과 두유, 현미밥과 국, 그리고 각종 나물 반찬으로 아침밥상을 받은 후, 삼삼오오 산책에 나선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굳이 멀리 갈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금강송길을 걷다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붉은 빛의 몸통과 층층히 올라간 솔잎, 그리고 그 사이로 얼굴을 내민 파란 하늘과의 조화란.

'나 여기 있어요!'라고 환하게 웃는 야생화 앞에선 와! 탄성을 지르며 저절로 걸음이 멈춘다. 사람의 왕래가 뜸한 곳이라 뱀의 출몰도 만만치 않다. 자기 서식지에 불쑥 찾아온 방문객에게 슬며시 길을 내어주니, 어찌 아니 고마우리. 덩달아 평화롭다.


점심을 먹고, 수다를 떨고, 책을 읽고, 탁구를 치고, 저녁을 먹고... 어느새 어두움이 찾아오면 별빛 때로는 달빛, 밤벌레들의 합창을 뒤로한 채 깊은 잠에 빠져든다. 이렇듯 9박 10일의 자연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엄마라면 누군들 그 마음이 복잡하지 않으리.



엄마라는 굴레


▲  금강송 아래에서 환하게 자기 존재감을 드러내는 야생화, 나도 그렇게 되어가는 중!


이제사 말이지만 나는 암환자다. 이는 엄마로서 아내로서 당연하게 해왔던 역할과 의무에서 상당 부분 해방되었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뒷짐지고만 있을 수 있는 형편은 아니다. 학교에서 돌아온 막내에게 어찌 저녁밥을 차려주지 않을 수 있으리.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에게도 마찬가지다. 이것은 엄마이자 아내인 내가 나몰라라 할 수 없는 최소한의 일이다.


그런데! 아이들과 함께 지내다 보면 오만가지가 눈에 밟힌다. 아무데나 벗어던진 옷가지, 여기저기 쌓아놓은 물건들... 내가 도맡아서 하기에는 방전된 배터리마냥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대신 신경이 곤두선다. 


어느새 아이들의 시간 관리까지 마음이 쓰인다. 아이들이 조금만 늦게 일어나도 그들의 동정을 살피느라 온 신경이 그쪽으로 향한다. 누가 해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이쯤에서 '엄마노릇' 그만 하고 싶다. 그런데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암환자로 면책 특권까지 받았는데, 이게 무슨 짓이란 말인가. 아이들을 향한 관심인지 걱정인지, 죽을 때까지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



아이들을 향한 사랑과 엄마됨의 후회는 별개


와중에 만나게 된 책이 오나 도나스의 <엄마됨을 후회함>이다. 금단의 열매를 먹듯 두근두근 읽어내려간 책이 나에게 이렇게 공명할 줄이야. 엄마가 된 것을 후회한다는 많은 여성들의 목소리는 현재 나의 상황을 읽고 해석해 주었다.


"미국의 페미니스트이자 철학자 다이애나 티젠트 메이어스는 철저히 식민지화된 여성의 환상을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사회 주입의 결과 엄마로서의 길이 유일한 시나리오로 그들 의식 속으로 들어와 다른 선택안을 모두 제거한다." - 37쪽


50,60대 대부분의 중년여성들은 그들에게 요구되는 사회적 규범에 따라 의문과 선택의 여지없이 임신, 출산, 육아의 길에 들어섰다. 어머니가 되는 것이 여성 완성의 길이요, 최고의 미덕이라는 사회적 통념에 부응했다. 


엄마의 헌신 유무에 따라 자녀들의 삶이 달라진다는 유언무언의 세례를 받으며 기꺼이 희생하는 삶을 살았다. 그렇게 살지 않으면 '나쁜 엄마'로 낙인 찍는 사회적 시선도 다른 선택을 할 수 없게 만든 요인이다.


그렇다면 나도 엄마된 것을 후회하고 있는 걸까? 답하기 매우 곤란한 질문이다. 엄마됨을 후회한다고 말하는 순간, '나쁜 엄마'가 되기 때문이다. 나에겐 반인륜적이라는 사회적 시선을 견뎌낼 재간이 없다. 무엇보다 나의 아이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두렵다.


그런데 책속에 등장한 대부분의 여성들은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과 엄마됨을 후회하는 것과는 별개라고 말한다. 아이들을 사랑하지만, 동시에 엄마가 된 것을 후회하는 마음이 든다는 것이다. 언뜻 모순된 말처럼 들리지만.


인간의 내면에는 다양한 감정이 깃들기 마련이다. 모순된 감정이 서로 양립하기도 하는 것이 인간이다. 그런데 유독 엄마들에게만 반대감정의 양립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왜일까. 죽을 때까지 무조건적인 사랑을 요구받는 엄마들은 인간이 아니라 신이란 말인가. 엄마를 '성스러운' 자리에 모셔놓는 것, 이것도 엄마들의 인간됨을 억압하는 사회적 폭력 아닐까.


요 며칠간 엄마로서의 삶이 수렁에 빠진 것 같다는 마음, 알고보니 이런 맥락 안에서 고개를 든 것이었다. 엄마됨을 후회함! 만약 내가 경험한  엄마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20,30대로 돌아간다면, 엄마가 되진 않겠지.


막내에게 <엄마됨을 후회함>, 도서관 대출을 부탁하며 뒤가 켕겼었다. 엄마가 자기를 낳은 것을 후회한다고 여길까봐. 그럴리가! 다음번 영덕에서 돌아올 때는 엄마의 굴레에서 조금 더 자유로워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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