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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별 Jan 07. 2022

캠핑카의 추억

태즈메이니아 여행기 1



     “잠깐만 차 좀 세워봐.” 


     흥겨운 음악소리에 들리지 않는지 앞 좌석에서 어깨를 들썩이는 남편은 대답이 없었다.


     “차 좀 세우라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어? 왜 그래??”


     “나 도저히 못 참겠어 도저히 못 타겠고.”

 나는 울상이 되어 말했다.  

버킷 리스트 상단을 차지했던 캠핑카 여행. 나는 호주의 제주도 태즈메이니아를 꿈에 그리던 캠핑카를 타고 달리고 있었다.
론서스턴 공항에 내려 캠퍼밴을 픽업하고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캠핑카 여행은 상상과 다르다는 것을 온몸으로 체감하면서...  

지난 1월 남편은 우연히 국내선 핫딜 광고를 보고 충동적으로 4월에 떠나는 태즈메이니아 왕복 티켓을 예약했다. 3박 4일이라 짧긴 하지만 내 소원대로 캠핑카를 빌려 로드트립을 가자는 것이었다. 작년부터 코비드로 발이 묶였던지라 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캠퍼밴을 검색했다.

 침대는 어떤 구조인지 욕실은 있는지, 주방 시설은 어떤지 살피고 있자니 어린 시절 신문 전단으로 들어오는 캠핑장비 광고를 탐독하던 때가 떠올랐다. 넓은 그늘막과 모기장이 달린 근사한 6인용 텐트를 사면 에어매트에서 코펠 세트며 휴대용 테이블과 의자, 돗자리까지 사은품이 어마어마했다. 전단지 속 텐트를 고르고 꼼꼼하게 사은품으로 주는 캠핑 도구들을 살피며 가족들과 산으로 바다로 캠핑을 가는 상상을 하곤 했다.  언제나 바쁜 아빠는 일 년에 한 번 정도 바닷가에 있는 외가에 데려가는 것이 전부였기에 여름방학이면 배를 깔고 누워 전단지를 넘기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시간은 그야말로  행복했다.

 다행히 여행을 좋아하는 남편을 만나 해마다  여행은 자주 다닌 편이지만 캠핑카 여행만은 여전히 나의 버킷리스트에 남아있었다. 드디어 소원을 푸는 날이 온 것이다. 


 생각보다 비싼 렌탈비에 조금 놀라면서도 호텔과 렌털 카 비용도 만만치 않기에 나는 과감하게 예약 버튼을 눌렀다. 욕실이 딸린 4인승 캠퍼밴은 운전석 위로 더블 침대가 세팅되어있고 뒷자리에 식탁을 중심으로 디귿자 형태의 벤치가 있었다. 식탁을 제거하고 아래 받침을 꺼내면 더블 베드로 변신하는 구조.  예약하며 사진으로 보았을 때는 그저 설레기만 하고 환상 그 자체였다. 달력에 표시를 해두고 4월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고대한던 여행날 아침.  오랜만에 구름 위를 날아 작은 공항에 내렸다.  렌터카 회사 직원에게 키를 건네받고 차에 올라보니 제대로 된 좌석은 운전석과 보조석뿐이었고 한 명은 뒷 칸 식탁의자에 앉아야 했다. 뭐 이 정도야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아이를 보조석에 앉히고 내가 뒤에 탔다. 여객선 식당칸처럼 넓으니 책도 읽고 창밖도 구경하고 여차하면 누워서 갈 수 있어 오히려 괜찮을 것도 같았다.  

차가 출발한 지 십 분도 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이건 차가 아니라 사방이 막힌 경운기 뒷좌석이라는 사실을. 고른 노면에서도 심한 진동은 기본이고 작은 턱에도 몸이 좌우로 크게 흔들렸다. 비행기보다 소음이 커 앞좌석에 앉은 사람과 대화를 하려면 소리를 질러야만 했다. 얼마 못가 머리가 띵 해지며 멀미가 나기 시작했지만  앞자리에 신나게 노래를 부르는 부녀의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아 꾹 참았다. 나는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이리저리 밀침 당하며 차를 타고 있는 기분이었다.


     ‘이건 아니잖아. 이러고 어떻게 나흘을 견디냐고… 그냥 호텔 잡고 렌터카나 빌릴 것을…’


     얼마쯤 지났을까 나의 유리 체력에 한계가 오고 말았다. 당장 내려야만 했다.  

     

     “괜찮아? 힘들면 내가 뒤에 탈게 엄마가 앞에 앉아”


     아이가 뒷좌석으로 뛰어올라오며 말했다.


     “아니야 뒷좌석 진짜 힘들어 너 못타.” 


     “엄마, 내가 일단 한 번 타볼게.”


 평소에 늘 골골대는 엄마를 알기에 아이는 내 등을 떠밀어 내리게 하고 식탁의자에 올라앉아 좌석벨트를 조였다. 울렁이는 속을 달래려 일단 내렸다. 

신선한 공기가 절실했다.



     “우와~.” 


 뒷좌석 삼면이 창문으로 되어있지만 차 안에서는 밖을 볼 정신이 없었다. 어느새 차는 생클레어 국립공원의 산등성이를 돌아 오르고 있던 중이었다. 내리자마자 눈앞에 펼쳐진 비경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겹겹이 둘러싸인 산맥을 휘감아 흐르는 구름과 안개를 보니 하늘에 가까워진 기분이었다. 눈을 감고 신선한 공기를 천천히 여러 번 들이마시자 서서히 속도 가라앉고 머리도 맑아졌다.  

신선이 된 기분을 만끽하고 보조석에 올라탔다.  뒷좌석과 달리 앞자리는 훨씬 상황이 좋았다. 아이와 교대로 자리를 바꿔 앉고 자주 쉬면서 가기로 했지만 미안함과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수시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럴 때마다 괜찮다는 표시로 아이는 씩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유연한 아이 몸이라 너랑 다를 거야 걱정 마! 니 몸만 잘 챙겨.”


     편치 않은 심정을 눈치챈 남편이 말했다.
 
 신기하게도 아이는 우당탕탕거리는 뒷좌석에서 핸드폰도 보고 책도 읽고 있었다. 다행이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의 3박 4일의 태즈메이니아 여정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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