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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별 Jan 10. 2022

책 속의 세상

계몽사 아저씨가 고마운 이유

  두꺼운 동화책을 펼치면 빛이 쏟아져 나오고 책을 연 아이는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어린 시절 나에게 책은 그런 느낌이었다.


 우리 집은 삼 남매에 엄마 아빠, 할머니 여섯 식구가 살았고 종가이다 보니 달마다 한 차례 이상  제사며 집안 대소의 행사들이 열려 언제나 복작복작거렸다. 밖에 나가 뛰어노는 게 일상이던 오빠들과 달리 나는 안에서 조용히 지내는 걸 좋아했는데 그 소란한 일상 속에서 고요한 나만의 공간을 찾기란 불가능했다.  그런 나에게 글을 깨친 이후 책은 나만 아지트이자 놀이터가 되어주었다.


  80년대 중반 시골에선 지금처럼 어린이용 단행본이나 전집을 서점에서 쉽게 구할 수가 없었다. 엄마가 우리에게 책을 사주시는 유일한 통로는 가끔씩 들르는 계몽사 외판원 아저씨였다.


 넥타이를 맨 말쑥한 양복 차림의 계몽사 아저씨가 전집 브로셔가 담긴 까만 서류가방을 들고 우리 집 현관에 발을 들이면 나는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숱이 없는 고수머리에 금테 안경을 쓴 아저씨의 얼굴과 불투명한 격자무늬 현관문 앞에 서 있는 그 모습이 사진처럼 뇌리에 박혀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엄마는 델몬트 주스병에 담긴 시원한 보리차를 내왔고 아저씨는 가방에서 전집 브로셔를 꺼내 보여주며 우리 삼 남매에게 지금 들이면  딱 좋은 책들이라며 전문가의 포스로 설명했다. 사실 아저씨가 했던 말은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브로셔 안에 들어있는 전집 세트가 어찌나 근사한지 나는 정신을 놓고 빠져들어 브로셔의 책 목록과 홍보 문구 한 글자 한 글자를 눈으로 탐색하곤 했다. 엄마가 어서 그 얇디얇은 계약서에 사인을 하기만을 기도하면서.


 계몽사 아저씨를 통해 우리 집 책장에 꽂히게 된 책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전집은 두 가지다.   파란 책 표지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소년소녀 세계 문학> 전집 그리고 컬러 삽화가 예뻤던 <어린이 한국의 동화> 전집이다. 아마 그 당시 집집마다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인기 있던 책이었다. 나는 화려한 컬러의 디즈니 동화책 보다도 흑백의 그 세계문학책에 더 손이 갔고 당시 티브이 만화보다 멋지게 그려진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유명한 고 김용환 화백의 작품들이 실린) 한국의 전래 동화집이 좋았다.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에 들인 그 책들은 나의 사랑을 듬뿍 받아 내가 초등학교 3학년쯤 되었을 무렵 이미 너덜너덜하게 닳아 있었다.  작은 내 손에 두툼하게 잡히던 양장 커버의 세계 문학 전집은  영어권이나 유럽의 동화와 명작 문학뿐 아니라 아시아, 일본, 인도, 아랍 등 생소한 이국의 옛날 옛적 이야기들이 가득 담겨있어 그야말로 내게는 환상적인 이야기보따리였다. 그때 내가 느낀 충격적 신선함과 한 번 잡으면 내려놓을 수 없던 재미는 훗날 해리포터 조차도 견줄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책을 사랑하게 되고 읽는 장면을 생생하게 머릿속에 그려낼 수 있게 된 것이.


 여전히 페이지를 펼치면 나는 그 시절처럼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가곤 한다. 보이지 않는 유령이 된 듯 이야기 속 세상을 부유하며 주인공들의 삶을 엿보고 그들의 대화를 엿듣는다. 주로 순수문학을 읽지만 가끔 인문학 책이나 자기 계발서를 읽을 땐 저자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느낌도 든다. 몇 해 전부터는 여러 권을 동시에 읽곤 하는데 끝까지 읽지 못하고 한동안 덮어두는 책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그러다 보면 책들이, 아니 책 속의 인물들이 나를 기다리는 것 같은 생각이 들면서 그들이 궁금해진다.


 얼마 전 다시 꺼내 읽는 <죄와 벌>은 라스콜리니 코프의 행적을 따라가며 광기 어리고 달뜬 감정을 함께 느끼다가 어머니와 동생 두냐가 그를 두려워하는 장면에서 책을 덮었다. 영화의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른 듯 그는 그 장면에 멈춘 채  나를 기다리고 있다. 언제든 이어서 읽으면 그만인 것인데 나는 살아있는 누군가의 소식을 궁금해하듯 라스콜리니 코프에 대한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켈리 최의 <웰씽킹>을 읽다가 덮어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열심히 내게 부를 위한 웰씽킹 비법을 설파하다가 갑자기 정지 화면처럼 멈춰 선 채 나를 기다린다. 어제 아침 읽던 최은영 작가님의 <내게 무해한 사람> 속 첫 이야기 "그 여름"의 수이도 '잘 자'라는 말을 남긴 채 이경의 방을 나가는 장면에서 정지 화면으로 멈춰있다. 그러다 내가 다시 책을 펼치면 플레이 버튼이 눌러진 듯 돌아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문장 하나하나가 살아있는 사람의 목소리로 감정과 분위기를 실어 느껴진다. 이렇게 생생하게 영상화되어  본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흑백의 삽화조차 많지 않아 문자에만 의지해 상상하며 읽던 어린 시절 책들의 영향이 아닐까 싶다.


 다 읽은 책의 존재감도 읽다 덮어둔 책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 세계는 어딘가에 진정으로 존재하며 각각의 인물들을 여전히  그 에서 삶을 이어나가고 있을 것만 같다. 어쩌면 이것이 상상이 아니라 정말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 때도 있다.


 고층인 아파트 베란다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공원을 거니는 사람들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자전거, 다른 빌딩의 사람들의 움직임이 작지만 제법 잘 보인다. 물끄러미 그 모양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들만의 스토리를 슬그머니 상상해보게 된다. 저들의 삶도 어찌 보면 각각 하나의 책이고 그들뿐만 아니라 나의 삶도 수많은 책들 중 하나라는 생각과 함께. 최근 베스트셀러로 올라온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도  이와 다른 이야기이나 비슷한 맥락의 작가적 상상이 아니었을까 한다.


 타인과 세상을 그리고 자신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더욱 깊숙이 이해하게 만들어주는 책을 나는 사랑한다.  책은, 아니 아주 짧더라도 하나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또 다른 완벽한 세상이다. 나는 그 세계를 창조하는 작가들 동경해왔다. 그리고 언젠가 나도 삶과 사랑 대한 이야기 담은 세상을 빚어낼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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