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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홉 May 05. 2022

흑고니의 행방

단편소설 7

초록의 빛이 만연한 작은 호수가 있었다. 호수는 햇빛을 받아 반짝거렸고, 뭉게구름이 떠 있는 하늘을 가득 품고 있었다. 물 위로 몇 조각의 통나무가 쓰러진 채 묵묵히 놓여있었다. 바람 한 점 없는 호수 주변으로 싱그러운 풀잎들이 둘러싸여 있었다. 길게 뻗은 나무 홈에서 활짝 피어난 초록 잎들은 어찌나 무성한지, 신비하고 고요한 정기가 가득했다. 자연의 소리만 가득한 이 숲에 묘하게 어울리지 않은 통나무 집이 한 채 있었다. 아침이 되면 수염을 턱까지 내려온 젊은 남자가 나무를 했고, 머리가 귀에 닿을락 말랑한 단발을 한 키가 큰 여자가 아이와 함께 남자를 구경했다. 그들은 꽤 화목해 보였다. 아이는 작은 정원에 나와 오두막 주변을 뛰어다녔고, 숲에 모든 생명들과 다정한 속삭임을 나눴다. 자연을 닮은 아이를 보며 두 부부는 흐뭇한 웃음을 지었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저물었다.


어느 밤, 평화롭던 숲에 기이하고도 참혹한 실종사건이 벌어졌다. 부부의 아이가 사라진 것이다. 전에도 숲에서 아이가 종종 없어진 적이 있었지만, 항상 오두막 근처에 있었고 저녁이 되면 금세 집으로 다시 돌아왔었다. 이번에도 부부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서 날이 점점 어두워지자 남자와 여자의 얼굴에 불안한 그림자가 피어올랐다. 마당을 지나, 더 깊은 숲으로 향했다. 바람이 스칠 때마다 찰랑거리는 소리를 내는 호수로 달려갔다. 땅거미가 내린 호수는 검은빛으로 변해있었다. 부부는 모든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작은 아이의 숨소리라도 들을 수 있다면. 간절한 바람은 들리지 않았다.


부부는 오두막으로 돌아가 잘 터지지 않은 전화기를 연신 붙잡았다. 그 짓거리는 새벽 내내 이어졌다. 부부의 눈에 작은 물방울이 맺혔지만, 누구도 티 내지 않았다. 아이를 찾을 것이다. 네 개의 눈동자가 그렇게 말해주고 있었다. 실종신고를 겨우 마친 후, 몇 개월에 걸쳐 숲 수색대와 아동미아찾기 자원봉사자, 인근 마을의 주민까지 밤낮으로 아이 찾기에 매진했지만, 끝내 시체 하나 발견하지 못했다. 그 세월이 자그마치 7년이 되었다. 부모는 일자리를 위해 다시 도시로 떠났다. 버려진 숲에 버려진 오두막만 덩그러니 남았다. ‘현서를 찾습니다. 실종신고 사례 300만 원’이라고 적힌 낡은 현수막이 먼지로 덮여 보이지 않았다.


부부가 떠난 지 20년이 흘렀다. 갑자기 버려진 숲에서 기이한 소문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기묘한 울음소리가 밤낮으로 들려오며, 정체 모를 날갯짓 소리가 쉴 새 없이 들린다는 이야기였다. 귓바퀴를 교묘하게 자극하는 기분 나쁜 울음소리. 몇 번이고 숲으로 달려가 원인을 파헤쳤지만, 생명의 흔적도, 묘한 새의 행방도 찾지 못했다. 그 뒤로 흉흉한 소문이 더 깊어질 뿐이었다. 숲으로 가는 길은 모두 폐쇄되었다. 그 소식은 국립공원연구원 조류연구센터에서 조류학을 연구하던 k에게 닿았다.


k는 벌써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새를 위해 일생을 바쳤다. 순수한 학구열에 불탄 그에게 버려진 숲에서 들려오는 기이한 울음소리는 제법 구미가 당기는 일이었다. 그는 마을 주민에게 물어물어 숲까지 찾아올 수 있었다. 단단한 밧줄로 입구가 엉켜있고, 고딕체로 ‘출입금지’라고 새겨진 철자판이 보였다. 그렇다고 들어갈 수 없게 단단한 담장이 있던 것 아니었다. k는 바로 옆 뚫린 지름길로 유유히 걸어갔다. k가 숲에 도착하자, 마침 그 요란한 울음이 들려왔다. k는 숨을 꾹 참고 눈을 감았다. 어디서 들려오는지, 그 새가 무엇인지 조용히 탐조했다. 날개가 퍼덕이는 소리가 휙 하고 들렸다가 사라졌다. k는 배낭에서 망원경과 카메라를 꺼내 목에 걸었다. 하지만 도통 그 녀석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k는 큰 나무 뒤에 숨었다. 다시 꾀꾀-꽈꽈- 하는 음성이 날카롭게 귀에 박혔다. 한데 정말 이상했다. 그건 새의 울음소리라기보단 어쩐지 새를 흉내 내는 소리처럼 들렸다. 그래, 그건 가짜 울음이었다. 조류학자 k는 새소리만 듣고도 새의 종, 크기 심지어 서식지까지 구별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울음소리는 새가 아니라 인간이 지금 막 만들어낸 흉내음 같았다. k는 햇빛이 강렬하게 비추는 땅바닥을 노려봤다가, 다시 스산하게 흔들리는 잎을 쳐다봤다. 다시 멀리 떨어져 전체적인 풍경을 지켜봤다. 그곳엔 해초가 우거진 더러운 호수가 고여있고, 썩은 통나무가 쓰러지듯 놓여있었다. 스산한 바람이 휙 하고 불었다. 갑자기 팔에 소름이 돋았다. k는 쌍안경과 망원경을 꺼내 숲을 샅샅이 관찰했다. 몇 시간 동안 조류 모니터링을 했지만, 발자국조차 찾지 못했다. 그때 또 한 번 스산한 음성이 들렸다. 깨애액- 깨애액-이번에는 공격적인 느낌보다 애처롭고 구슬픈 울음처럼 들려왔다.


k는 소리가 깊어지는 곳으로 달렸다. 허리를 최대한 굽혀 땅을 손바닥으로 연신 누르며 걸었고, 눈알은 허공을 주시했다. 갑자기 손바닥에서 걸리는 느낌이 났다. 흙과 나뭇가지로 덮인 땅은 울퉁불퉁했지만, 그중 유난히 볼록한 땅이 보였다. k는 손가락으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손톱 사이사이에 흙이 잔뜩 꼈다. 돌멩이들이 흙에 콱 막혀있어 제거하느라 시간이 꽤 흘렀다. k의 두꺼운 외투 안 베이지색 티셔츠가 땀으로 덮여 진한 갈색이 되었다. 얼굴과 머리카락도 비에 맞은 듯 흠뻑 젖었다.


k가 드디어 허리를 피고 일어났을 때, 아래 구덩이에서 까만 깃털이 보였다. k의 얼굴에 발견의 기쁨이 비췄다. 깃털을 손바닥으로 매만지며 남은 흙을 치웠다. k의 엉덩이가 바닥에 퍽-하고 붙었다가 떨어졌고, 손과 팔이 빠른 속도로 요동쳤다.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렸다. 잔재들이 사라진 그곳엔 새까만 덩어리가 웅크리고 있었다. 눈알은 또렷하지만 충혈된듯한 적색이었다. 그건 새가 아니었다. 작고 까만 어린아이의 시체였다. 악-하고 소리치다 몸을 부르르 떨었다. 온몸에 닭살이 돋았다. k는 발이 묶여 움직일 수 없었다. 오랫동안 아이의 시신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생명의 빛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까만 실루엣. 그 속은 이미 빈 껍데기였다. 형체를 알아보기도 힘들 시체 옆에는 까만 깃털이 널브러져 있었다.


잠시 후 다리에 긴장이 풀리자 k는 까만 깃털을 손에 쥐었다. 깃털을 들어서 햇빛 가까이에 비췄다. 유난히 까맣고 빳빳한 털이 손의 움직임에 따라 빛 났다. 이건 틀림없이 그 녀석의 털이야. 하지만 왜 여기에 있는 거지. k는 의아했다. 깃털의 주인은 호주에서 서식하는 매우 귀한 검은 백조, 흑고니였다. 흑고니는 오랫동안 한 곳에서 머무는 특성을 가진 새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딱 한 번 관찰된 국내 미조였기에 k는 깜짝 놀랐다. 지금 아이의 시체 옆에 흑고니의 털이 나란히 놓여있다니 믿기지 않았다.


k는 서둘러 마을로 돌아가 신고를 했다. 잠자리에 들려고 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다시 노트북을 켰다. 시신 유기, 버려진 숲, 아이 시체 같은 키워드를 검색했다. 그러다 몇십 년 전에 이 숲에서 일어났던 기묘한 실종사건을 발견했다. <1998년, 숲에서 실종된 아이> 헤드라인이 새겨진 오래된 기사였다. 어느 날 오두막에서 사라진 아이, 찾으려고 애썼지만 시체조차 발견하지 못하다. 끝내 부모는 오열하며 아이의 시신이라도 보고 싶다는 참 안타까운 인터뷰도 실려 있었다. k는 숲에서 발견한 까만 덩어리를 떠올렸다. 흑고니 같은 녀석 이름이 현서였구나. 뉴스 아래칸에는 아이의 실종 포스터도 있었다. 늦은 새벽임에도 k는 전단에 쓰인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상대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k는 아이의 부모에게 말을 전했다.  


“아이를 찾았습니다.”


k가 눈을 떴을 땐 마을에 외부인이 잔뜩 모여있었다. 경찰, 주민들, 그리고 k가 어젯밤 연락한 부모도 있었다. 어린아이의 부모는 세월이 흘러 중년의 모습을 하고 서 있었다. 밤을 새운 듯 눈가에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있었고, 손은 초조한 듯 조금 떨려 보였다. k는 단호하지만 다정한 말투로 부모를 격려했다. 많이 놀라셨죠. 얼마나 오래 기다리셨어요. 그 말과 동시에 어깨를 토닥이는 시늉까지 보였다. k는 새를 대할 때와 다르게 조금 서툴렀지만, 진심만은 가득했다. 부모는 그의 노력을 느낀 듯 조금 묘하게 웃어 보였다. 곧바로 현서가 있는 숲으로 찾아갔다. 사진 속 수염 대신 멀끔한 턱을 가진 남자가 아이의 까만 몸을 보고 오열했다. 그 뒤를 따라 여자도 얼굴을 손바닥으로 가리며 어깨를 들썩거렸다.


수색대가 나무에 ‘폴리스 라인’이라고 쓰인 노란 테이프를 걸었다. k는 오열하는 부모를 곁에서 바라봤다.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부모의 얼굴이 아이 잃은 슬픔으로 가득 차 보였는데, 이젠 가짜 얼굴처럼 묘하게 뒤틀려 보였다. k는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잠이 부족하군. k는 다시 아이의 까맣고 여린 살결로 시선을 옮겼다. 여전히 그곳엔 흑고니가 있었다.


유난히 추웠던 겨울이 지났을 때 k에게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최 범 형사입니다. 며칠 전 숲에서 유기된 아이 목격자 k씨 되시죠? 범인이 잡혔습니다” 대화는 실로 놀랍고 경이롭기까지 했다. 예 형사님. 그래서 누구였죠? 아이는 왜 죽은 건가요?. 형사는 기가 찬 듯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범인, 그 애 부모였어요. 그것도 친부모는 아니었고요” 형사가 말하길, 젊은 부부에게 아이는 없었다고 했다. 우연히 누군가 오두막에 갓난아기를 버렸고, 차마 외면하지 못해 키우게 되었다고. 처음엔 작고 사랑스러웠던 아기가, 점점 커갈수록 자신들과 닮지 않음을 깨닫게 되었고 그 사실에 욱해서 벌인 일이라는 게 살해 동기였다. 형사는 현서의 친부모가 한국 사람이 아니었을 거라는 의견도 덧붙였다.


k 통화를 끊고 서재 의자에 기대듯이 앉았다. 온갖 조류가 새겨진  더미에서   권을 펼쳤다.


흑고니는 사람에게  발견되지 않은 희귀한 까만 새다. 흑고니가 처음 발견되고서, 전혀 예상할  없었던 일이 실제로 나타난 경우를 뜻하는 ‘흑고니 이론 만들어졌다. 보통 호숫가에서 둥지를   유유히 찾아오는 시간의 흐름을 견디다가, 계절이 바뀌면 다른 서식지로 몸을 옮기기도 한다.’


봄이 찾아오자 흑고니의 울음소리가 더는 들려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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