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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홉 Feb 06. 2023

갈증과 오래된 기억


  햇살이 따가운 여름이었다. 도시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나는 모험을 좋아하는 초등학생이었고 이 동네 저 동네를 들쑤시며 돌아다니기 바빴다. 뛰어서 2분도 안 걸리는 곳에 작은 놀이터가 있었다. 매일 아침 당연하게 그곳으로 향했고, 언제나 이름 모를 아이들이 반겨주었다. 낯선 아이들의 반가움이라니. 현재를 사는 나는 어쩐지 그때가 당황스럽다. 


  때마침, 노란 페이트가 칠해진 조금 녹슨 정글짐 아래에 다섯 아이가 모여 있었고, 나에게 함께 놀자며 다가왔다. 낯선 순간은 언제나 새로운 놀이였으니 거절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여섯 번째 멤버가 되어 정글짐 아래를 뛰어다니며 경도(*경찰과 도둑) 게임을 했다. 경찰 한 명과 다섯 명의 도둑이 서로 잡고 도망 다니며 모래를 온통 헤집고 다녔다. 도둑을 다 잡아서 끝나거나, 경찰이 져서 끝나는 게임을 수차례나 반복했다. 

모르던 아이들이 친구로 변할 무렵, 놀이터의 풍경은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포근한 공기가 감돌았고 노르스름한 주황빛 노을이 우리 몸을 서서히 물들이고 있었다. 


  우리의 둥근 손톱 사이엔 꺼글거리는 모래가 잔뜩 껴있었고, 다들 배가 고프다며 집에 돌아갈 준비를 했다. 가끔 아쉬운 마음에 한 번 더를 외치며 놀다 보면 저녁도 금방 사라지고 늦은 밤이 돼버리곤 했다. 지금보단 덜하지만 늦은 골목에 두려움이 컸던 나는 2분 거리를 30초 만에 단숨에 뛰어 집으로 달려갔다. 오늘도 재밌었냐는 엄마의 말에, 오늘은 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냐면서 쉬지 않고 떠들어 댔다. 


  다음 날, 어제 만났던 친구들을 또 보고 싶은 마음에 일찍 놀이터에 나갔다. 그 아이들은 유령이라도 된 듯 나타나지 않았다. 그때 그 친구들은 어디로 가버렸을까. 어제의 하루가 아쉽지 않았을까. 벤치 위에 누워 떠가는 구름을 쳐다보며 묘한 상념에 빠졌지만, 여전히 친구들은 보이지 않았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나는 아쉬움에 대해 생각했다. 모래를 한 움큼 집었을 때 잠시 황홀함을 느끼다가 금방 손 아래로 스르르 흩어졌을 때도, 마음에 드는 구름 모양이 눈 깜빡하는 사이에 사라져 버렸을 때도, 오지 않는 아이들을 기다렸을 때도, 영원을 약속했던 친구가 떠났을 때에도 그랬다. 처음 느껴보는 공허감에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충만했던 순간은 늘 그렇게 금방 사라져 버렸다. 영원하지 않았다. 


잠시 빈자리를 느끼다가 다시 뒤를 돌아봤다. 스르륵 흘러내린 모래 알갱이가 바닥에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구름은 또 다른 모양이 되어 나를 바라봤다. 혼자 남았던 놀이터에는 또 다른 아이들로 채워졌다. 

영원을 약속했던 친구는 영영 떠났지만 좋은 사람들이 나를 찾아왔다. 

내가 느꼈던 공허와 새로움에 대한 감각은 영영 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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