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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세수 Feb 09. 2022

엄마의 마흔, 나의 마흔


구정 연휴가 끝내고 조카들을 보낸 뒤, 엄마가 나에게 가장 먼저 가자고 한 곳은 바다였다. 연휴 내내 조카들의 뒤치다꺼리에 지친 엄마는 자리를 펴고 눕는 대신 바다를 보러 갈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매번 바다에 오면 들리는 카페에서 커피를 사고 나오는데 멀리 바다를 보는 엄마의 뒷모습이 보였다.

“커피가 400원이나 올랐어”

“어머 그래?”

나의 말에 짧게 맞장구만 치고 엄마는 방파제에 부딪치며 오고 가는 파도를 한동안 말없이 바라보았다.


엄마는 바다를 바라보는 걸 좋아한다. 어릴 때부터 좋아한 건지, 작년에 일을 그만두고 가끔 들리는 나와 종종 바다를 산책하면서부터 좋아한 건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생활의 여유를 찾은 후 엄마가 바다를 더욱 좋아하게 된 건 확실하다.


내 기억 속 엄마는 늘 생활고에 찌든 얼굴이었다. 안정적인 수입이 없는 집안이라 우리들의 교육이나 미래보다 돈 걱정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바다 가까이 살면서도 “우리 바닷가에 놀러 갈까?”라는 낭만적인 말은 거의 들은 적이 없었다. 여름이면 환한 얼굴로 바다로 놀러 오는 피서객들이 한없이 부러웠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면, 어른이 되어 멋진 차를 타고, 예쁜 옷을 입고 바다에 놀러 오는 나의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여름에 밝은 얼굴로 바다에 놀러 오는 어른이 돼야지’라고 다짐했다.


동갑내기인 부모님은 마흔에 우리를 데리고 바닷가로 이사 왔다. 때로는 돈이 너무 없어 노상의 몇천 원짜리 국수도 못 사 먹고 돌아선 적이 많았다고 엄마는 회상했다.

내가 성인이 되어서도 집안 사정이 나아지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엄마는 성인이 된 내가 쥐꼬리만 한 월급을 받으며 모은 돈으로 대학을 가겠다고 했을 때 무척 서운해했다. 어떻게든 살림에 보탬이 되었으면 했을 테니. 가끔 엄마는 어렵게 취업 후 서울 생활하는 내게 전화해 ‘돈을 좀 보내달라’라고 부탁했다. 이런 전화가 반가울리는 없었다. 나는 전화기가 꺼지도록 긴 한숨을 쉬며 ‘알겠어’라고 대답했다. ‘엄마는 내가 얼마나 외롭고 힘들게 사는지 알기나 할까?’ 어릴 때부터 드리운 돈의 그늘은 내가 어른이 되어서도 거둬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나를 자주 우울하게 만들었다.


결혼 전 남편을 처음으로 인사를 시킨 날, 엄마는 남편 얼굴을 보자 울음을 터트렸다. 사윗감을 웃으며 반겨줄 줄 알았는데 우리는 무척 당황했다.

“객지에서 얼마나 고생을 했을지. 내가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몰라.”

나를 잘 부탁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눈물부터 나온 것이다. 나는 정말 몰랐다. 엄마가 나를 이렇게까지 생각하고 있었는지. 엄마는 홀로 자취하며 대학을 나오고, 일을 하는 나를 내내 마음에 담아 두었던 모양이다. 나는 ‘나 하나 힘든 것만 생각하고 살았다’는 걸 깨달았다. 그 옛날 엄마는 객지에서 홀로 생활하며 일하는 딸에게 돈을 보내달라고 수화기를 들기까지 수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고, 더 힘들었을 것이다.


바다를 보며 엄마와 나의 마흔을 떠올렸다.

아이 둘은 커가는데 주머니에 잔돈도 귀했던 마흔.

아이는 없는 마흔의 유부녀 백수.


“여기 시장 근처에 한 그릇에 천 원밖에 안 하는 국수가 있대”

“뭐? 너 정말 그 국수가 먹고 싶어? 난 싫어. 너희들 어렸을 때 돈이 없어 맨날 그런 국수만 먹었거든.”

누군가에겐 맛있는 음식을 저렴하게 먹는 재미가 누군가에겐 ‘지우고 싶은 기억의 소환’ 일 줄이야.

”그냥 그렇다고~”


고되고 힘든 날 속에서 엄마에게 그나마 작은 희망과 여유를 주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때도 바다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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