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거울을 보다가 우연히 나의 얼굴이 비대칭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이제껏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 이상할 정도로 심한 불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귀의 위치도, 눈의 모양도 각각 달랐다. 게다가 턱이 왼쪽으로 틀어져 있어서 코끝의 방향과 입술의 위치도 미세하게 어긋나 있었다. 이 사실은 곧 나의 온 마음을 지배했다. 한동안 나는 내 얼굴이 비대칭이라는 사실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너무 혼란스러운 나머지 남편 희성에게 이야기 하자 그는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난 잘 모르겠는데. 그리고 사람은 누구나 비대칭이야.”
나에게는 심각한 사건을 가볍게 취급하는 것 같아 마음이 상했다. 혹시나 턱관절이나 뼈의 이상으로 얼굴이 비대칭이 된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어 구강내과에 가보기로 했다. 예약일을 기다리는 사이 마음은 더욱 심란해졌다. 머릿속에서 나의 의학적 상태에 대한 상상은 극으로 치닫고 있었다. 혹시나 턱 교정 장치를 끼우거나 치아교정을 새로 해야 한다고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으로 머리가 아팠다. 희성에게 이런 걱정을 늘어놓자, 그는 역시나 무심한 반응을 보였다.
“일단 병원에 다녀와서 생각해 보자. 생각보다 심각한 게 아닐 수도 있어. 원래 문제가 자신에게 제일 크게 느껴지는 법이잖아.”
그날 우리는 몇 시간 동안 싸웠다. 나에게는 너무나 심각한 문제에 대해 위로와 공감 없이 냉철한 해결책만을 제시하는 그가 미웠다. 하지만 그 큰 싸움이 무색하게도 병원에서는 나의 상태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진단을 내렸다. 얼굴의 비대칭은 선천적으로 좌우의 얼굴 뼈가 다르게 자라난 결과이며, 미용상의 목적으로 수술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치료를 받을 이유가 없는 지극히 정상적인 상태라는 것이었다. 얼굴의 비대칭성을 고칠 수 없다는 말을 의사에게서 듣자, 마음이 빠르게 정리되었다. 거울을 볼 때마다 여전히 돌아간 턱과 입 모양이 신경 쓰였지만 희성의 말처럼 어쩌면 남들은 눈치채지 못하는 미세한 불균형인 걸지도 몰랐다. 그렇게 마음을 고쳐먹으니 그렇게 이상해 보이지 않는 것 같기도 했다. 결국 그의 말이 옳았다는 생각에 조금 머쓱해졌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음향 레슨을 받고 있던 때였다. 수업 시간의 실습을 위해 과제로 내가 연주한 음악 트랙들을 믹싱(Mixing, 녹음한 음악 트랙들에 볼륨 조절, 다양한 효과 등을 주기 위해 작업하는 것) 해서 가져가야 했는데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몇 년간 음악 작업을 하지 않긴 했지만, 간단한 과제 파일 하나 완성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선생님에게 허접한 음악을 들려줄 생각을 하자 어지럽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나는 완벽한 작업물을 만들기 위해 몇 날 며칠을 작업에만 몰두했다. 그래 봤자 실습용 과제였을 뿐인데 말이다. 역시나 머리를 싸매고 앓고 있는 나를 보며 희성은 너무 마음 쓰지 말라며 이렇게 말했다.
“너가 선생님만큼 잘할 수 있으면 왜 비싼 돈 주고 그걸 배우겠어.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모르는 건 가서 물어보면 되지.”
그의 말은 옳았다. 나는 또 나도 모르게 완벽에 대한 강박을 느끼고 있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히 준비되거나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면 뭔가 심각하게 잘못되었다 느끼는 나의 기질. 하지만 그런 생각에 매몰될수록 마음이 더욱 괴로워지는 것이 당연했다. 우리는 필연적으로 그럴 수 없는 존재이므로. 그런 나에게 희성의 조언은 꼭 필요한 것이었다. 아, 왜 나는 처음부터 그렇게 마음먹지 못했던 걸까. 그 후로 나의 결점과 부족한 점이 너무 크게 느껴질 때마다 그의 말을 되새겼다. ‘사람은 완벽할 수 없다. 그게 이상한 것은 아니다.’
희성과 나는 너무도 다르다. 그는 언제나 최선을 다하지만, 매번 성공하고 매번 완벽할 것이라는 잘못된 환상을 갖지 않는다. 그 순간 해야 할 것에 집중하고 좋은 결과가 나왔을 때는 기뻐할 줄 안다. 그리고 조금 느긋하게 상황에서 한 발짝 물러서서 생각한다. 우리의 싸움은 대체로 우리의 다름에서 기인하지만, 그것을 요즘 흔히 말하는 MBTI 성격유형의 T(사고형)와 F(감정형)의 특성이라고만 설명하기에는 좀 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기본적인 삶의 태도 같은. 가끔 너무도 냉철한 그의 조언에 가슴이 시릴 때도 있지만 희성처럼 생각하는 것은 나에게 분명 도움이 된다. 마음이 들끓고 불안할 때 머릿속에 익숙한 희성의 목소리가 떠오르곤 한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그처럼 조금 ‘침착하고 느긋하게’ 상황을 바라보는 것. 나는 이러한 사고방식을 ‘희성적 사고’라고 이름 붙이기로 했다. 요즘 유행하는‘원영적 사고’처럼 말이다.
우리가 함께해온 시간 동안 희성적 사고는 나도 모르게 나에게 조금씩 스며들었을지도 모른다.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은 나를 오랜 시간 괴롭게 했지만, 나는 이제 그 단어를 새롭게 바라보고 싶다. 인간은 본래 완벽하지 못한 존재이고, 더 나은 자신이 되기 위해 그저 그 순간의 최선을 위해 노력해 볼 수 있을 뿐이라고. 어쩌면 우리를 조금이나마 완벽에 가깝게 만드는 것은 스스로를 무한정 채찍질하는 자신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서로의 불완전함을 이해하는 또 다른 불완전한 인간에 의해서일지도 모르겠다.
글 - 주페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