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027
얼마전부터 아이폰의 일기앱을 사용하고 있다. 예전에는 간단한 메모들을 메모앱에 적어두곤 했었다. 일기앱은 메모앱과 기본적인 기능은 동일하지만 컨셉의 차이가 있다. 일기앱은 마치 나 혼자 쓰는 인스타그램 같다. 스크롤을 내리며 그간 내가 기록해온 일들을 일종의 타임라인처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남들에게 보여줄 만큼 중요하진 않지만 내가 귀엽다고 생각한 것들, 개인적으로 소중한 것들, 순간적으로 내 마음속에서 반짝였던 것들을 사진으로 남겨두고 메모와 함께 기록해 둔다.
시월의 어떤 날에는 전에 내가 어디선가 본 문장을 적어두었다.
“마음 먹은 지 73시간 내에 하지 않으면 영원히 할 수 없다.”
왜 하필 73시간이라고 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니 72시간을 잘못 적은 것이 분명하다. 이 문장을 적어둔 상황은 기억나지 않지만 어떤 부분이 내 마음을 울렸는지 짐작할 수 있다. 글을 쓰기 위한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 메모를 해두곤 하는데, 그래놓고 귀찮아서 묵혀두는 일이 꽤 많다. 그러다가 어영부영 시간이 흘러버리면 그 순간 반짝이던 영감들을 영영 잃어버리게 된다. 하지만 후회해봤자 소용 없는 걸 알면서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게 인간 아닐까.
오늘은 버스를 타고 연습실에 가면서 이런 문장을 적어두었다.
“음악 해야 한다!! 글을 써야 한다!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쓰기 전엔 아무 것도 아니다.”
정말 처절해 보이는 문장이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스스로를 세뇌시키지 않으면 난 아마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누워있는 편을 택하고 말 것이다.
오늘의 곡작업을 얼추 마무리하고, 소파에 드러누워 인스타그램을 켰다. 신혼부부가 소비에 미쳐 신축 아파트 전세를 살다가는 망한다는 글을 보았다. 갭투자로 집을 사지 않으면 바보라는 말과 함께…
남들이 하는 것을 무조건 따라하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지만 모두들 입을 모아 말하는 부자되기 비결을 따르지 않는다는 게 어쩐지 손해보는 일처럼 느껴진다. 회사 사람들과 점심이나 커피를 함께할 때도 종종 듣게 되는 이야기들이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혹해서, 인터넷에 정보를 뒤져보다가 이건 좀 아닌 것 같다며 금방 그만두곤 하지만.
요즘 내 마음을 온통 사로잡고 있는 것은 그런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피아노를 더 잘 칠 수 있는지, 또 이 세상엔 얼마나 아름다운 곡들이 많은지에 대한 것이다. 가끔은 어서 피아노를 치고 싶어서 안달이 난다. 나는 그냥 취미러일뿐이기 때문에 그렇게 열심히 할 필요가 없습니다요, 라고 스스로를 타이르지만 약간은 억눌린 욕망 덕분에 연습 시간이 더욱 기다려진다. 그 마음은 머릿속 생각을 마구 글로 쏟아내고 싶은 마음과 닮아 있다. 하지만 그것은사람들이 말하는 '잘 사는 비결'과는 너무나 거리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들을 하다 보니 문득 잘 살고 있는 것인가 불안해진다. 하지만 애초에 잘 사는 것이란 게 대체 무엇인가...
시월의 일기에는 이런 문장도 있다.
“정말로 좋은 순간은 오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씻으러 가다가 나의 행복 여부에 대해 고민했던 날이었다.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은 그 순간 내가 행복하지 않았다는 의미기도 했다. 나는 내가 진짜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였는지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그리고 딱히 떠오르는 순간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날의 결론이 무엇이었던가.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게 또 하루가 시작됐었고, 나는 습관적으로 일기앱을 켰으며 휘몰아치는 상념들이 휘발되기 전 기록했다. 하지만 정말로 가슴 벅차게 좋은 순간이 온다면 그 순간 느낄 수 있을까. 혹은 그 또한 결국은 지나가는 어느 한 지점일 뿐이라 직감하게 될까. 그 비슷한 순간이 올 때마다 나는 그래도 더, 더 좋은 순간이 남아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나 자신을 위로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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