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스토리텔링과 고객 경험 마케팅
최근 방문한 샤넬뷰티 팝업스토어는 마치 한 편의 동화 같았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빨강머리 앤이 트렌디한 소녀가 되어 이 팝업에 방문한다면 공간 하나하나 시를 읊듯 아름다운 단어들로 표현할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달 전 읽은 고전문학 <빨강머리 앤>의 주인공 앤은 눈앞에 펼쳐진 모든 것을 아름답게 묘사하며 감탄하는 능력이 있었다. 그 감동이 아직 가시지 않았나 보다.
CHANEL, 여심을 사로잡기 위해 작정했구나 싶은 마음과 동시에 그래 이게 고객 경험이지 싶었다. 그 아름다움에 심취한 내 감정을 앤처럼 문학적으로 뱉어내지 못하는 몹쓸 표현력이 원망스러울 뿐.
이번 샤넬 팝업에는 한마디로 '이야기'가 있었다.
이야기야 늘 있었지만 이번엔 유독 더 그 스토리텔링에 빨려 드는 느낌이었다. '샤넬과 함께하는 한밤의 외출'이라는 테마를 잡고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밤의 무드를 여러 공간으로 구분해서 표현해 놓은 것.
01:00 한밤의 스릴 넘치는 드라이브부터 02:00 샤넬 캠페인 필름을 감상할 수 있는 시네마와 백스테이지 공간. 실제 영화관처럼 꾸며 팝콘까지 받으니 점점 더 이야기 속 주인공이 되어 가는 경험. 04:00 레드 노트 재즈클럽이라는 공간에서는 바텐더 모습을 한 모델분들이 시향을 할 수 있게 도와준다. 05:00 벨벳 클럽은 쉬어가는 느낌으로 포토존을 즐기고 7:00 그랜드 알뤼르 호텔에서는 메이크업 서비스까지.
즐기는 소비자 입장에서야 이 정도 기획은 나도 하지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결코 간단한 작업이 아니었음을 어찌 감히 다 헤아릴 수 있으랴. 기존의 브랜드 아이덴티티 유지와 새로운 제품 출시 그 둘을 묶어줄 컨셉 창조, 그에 맞는 공간 구성과 고객 경험 설계 등 그 복합적인 것들에 모두 맥락을 만들고 연결시켜 하나의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낸다는 게 보통의 의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아이디어는 물론이거니와 예술적 감동과 매출이라는 점수표를 실과 바늘처럼 연결해 한 땀의 수를 놓아야 하는 것이 브랜딩과 마케팅의 환상적 결과물이 아닐까. 때론 삐뚤빼뚤 하더라도 결국 함께 작품을 만들어 가는 것. 당연하면서도 정말 어려운 일인 것을 회사를 운영하는 매 순간 몸소 느낀다.
가고 싶은 마음 반 직업상 의무감 반으로 다녀왔다. 루쥬 알뤼르의 화려함과 샤넬의 고급스러운 브랜드 이미지가 만나 팍팍한 일상에 섹시함을 안겨준 하루였다. 브랜드 스토리텔링은 단순한 마케팅이 아니다. 브랜드의 철학과 가치를 진심으로 전할 때 고객은 그 브랜드와 깊은 유대를 형성하며 팬이 된다. 거기다 고객을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만드는 경험까지 제공하니 고객은 그 무대에서 춤을 출 수밖에. 샤넬 팝업스토어의 5가지 스테이지의 여정을 마치면 지갑은 자동으로 열린다.
다녀와서 알게 된 사실인데 샤넬 화장품을 실제로 사용하는 멤버십 고객과 일반 소비자의 예약 시간이 구분되어 있었다. 블로그들을 찾아보니 입구에 줄을 길게 선 사진들, 팝업 내부도 사람이 많이 북적거리는 사진들도 꽤 보였다. 나는 vip 세션으로 다녀와서 총 8명이 함께 들어갔고 공간이 8개 정도 되다 보니 공간마다 혼자 편하게 체험하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vip 고객과 일반 관람객의 예약을 구분해 확실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또한 가히 명품스러웠다.
한 가지 또 재미있었던 부분. 인간이 기계로 대체되고 있는 AI 시대, 인공지능도 결국 자본력의 싸움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이런 거대 기업 샤넬의 팝업에는 일하는 휴머노이드가 아닌 일하는 인간이 있었다. 아니 너무 많았다. 공간을 소개하고 사진을 찍어주며 응대하는 모델 같은 남자분들이 입구에만 거의 4명, 스테이지마다 2-3명 이렇게만 계산해도 거의 15-20명은 됐던 것 같다. 고객은 8명이었는데 말이지.
최근 인스피아 뉴스레터에서 읽었던 글 중 소비자의 그림자 노동이라는 주제의 글이 생각났다. 요즘 우리는 키오스크에서 주문하고 계산하고 식기까지 직접 정리하고 나온다. 불편한 점을 상담사에게 물어보던 시대는 끝났고 FAQ 게시판에서 직접 답변을 찾아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우리는 돈 한 푼 받지 않고 노동하는 소비자가 된 것이다. 기업이야 인건비도 줄고 노조도 없고 퇴사도 안 하는 데다 24시간을 일해도 지치지 않으니 가히 땡큐인 거다. 하지만 소비자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됐었던 일상의 사소한 순간들에까지 신경을 써야 하니 그만큼 알게 모르게 에너지가 많이 들어가고 집에 가면 지쳐 뻗는 것.
그럼 명품 매장은? 루이비통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키오스크로 물건을 고르고 셀프 결제를 하니 순댓국집에서 서빙하던 그 로봇이 제품을 들고 와 고객이 스스로 꺼내가야 한다면 명품이라는 가치가 유지될까? AI 시대일수록 오히려 오프라인에서는 사람이 더 깊이 관여해 하나하나 응대하는 고급화 전략으로 더 차별화시키며 마케팅하지 않을까 하는 그런 이야기였다. (원문 그대로가 아닌 한 달 전 읽었던 글에 저의 감상이 더해져 뉴스레터의 관점과는 조금 다를 수도 있습니다.)
샤넬도 그런 전략이었을까. 그 어느 때보다도 친절했고, 먼저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말을 건넬 때도 부담스럽지 않게 접근했다. 그리고 사진을 찍을 때는 평소 가까운 사람에게 찍히는 것보다 훨씬 덜 민망하게 연사를 날려주며 포즈도 이렇게 저렇게 제안해 주면서 최선을 다해 찍어주셨다. I인 내가 스테이지별로 혼자 공간에 들어가도 부담스럽지 않게 잘 즐기고 나왔으니 말 다 했지.
이번 샤넬 팝업은 마케터의 렌즈를 끼고 샤넬이 만들어 놓은 스토리텔링의 파도에 몸을 맡긴 채 숨어 있는 기획과 메시지를 발견하는 재미를 느껴보면 좋겠다. 5/26까지인데 이틀 남은 이 시점에 이렇게 쓰기 있냐고... 인스타에 인증샷 몇 장 올리고 말기에는 이번 샤넬뷰티 팝업 스토어는 나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벅차오르는 감정을 글로 토해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정말 오랜만에 브런치를 열었는데, 음 문학을 좀 더 읽어야겠다.
한낮에 갔지만 자정부터 아침 7시까지 이어지는 환상적인 밤의 무드를 만끽하게 해 준 샤넬, 고맙습니다.
- 샤넬뷰티 덕후 씀
ps. 메모장에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가브리엘 샤넬 여사의 명언 몇 가지로 마무리합니다.
�아름다움이란, 당신이 자신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할 때부터 시작된다.
⭐️우아함은 내면과 외면의 아름다움이 공존할 때다.
�장식은 대단한 과학이며, 아름다움은 무기이자, 겸손은 우아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