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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민 Feb 26. 2020

면접을 준비하는 두 가지 공식

포털 사이트에 가끔 ‘소개팅의 정석’ 따위의 글이 올라온다. 그러면 나 같은 순진한 남자는 그런 걸 유심히 본다. 소개팅 매너는 이래야 한다. 같이 걸을 땐 어떻게 해라… 옷은 어떻게 입어라… 그런데 여학생들에게 묻고 싶다. 정말 그런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아마 아닐 것이다. 오늘도 순진한 남자들은 그런 부분이 잘못되어서 본인이 소개팅에서 애프터를 못 받는 걸로 안다. 나도 그래왔으니까. 그런데 아니더라. 소개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How가 아니다. Who가 제일 중요하다. ‘어떻게’의 방식이 중요한 게 아니라 ‘누가’ 나오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막말로 원빈이 나오면 발로 여자를 툭툭 차도 "와 저 오빠 터프하네. 여자한테 잘 보이려고 온갖 서비스는 다 해주는 된장남하고 다르네.” 이렇게 생각한다는 거다. 


면접도 다르지 않다. 입시가 다가오면 1차 합격 출신 학생들을 자주 상담한다. 그런데 이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들이 있다. 그때 면접에서 무슨 무슨 말을 잘못해서 떨어졌다는 거다. 그때 그 말에 대답을 잘 못 해서 떨어졌다는 거다. 과연 그럴까? 한예종 입시에 관해서는 나도 조금은 말할 자격이 있는 사람인데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않다. 절대 아니다. 그 말 몇 마디로 붙고 떨어진다면 그게 제대로 된 입시라고 할 수 있을까? 과연 그렇게 학생을 획일적, 일방적, 이분법적으로 평가할까? 아니다. 그 학생의 How가 부족해서라기보다 훨씬 더 복합적인 이유로 떨어졌을 것이다.


스킬(How)에 집중하지 마라


결론은 이거다. 스킬(How)에 집중하지 마라. 실망했지? 이 글을 통해서 무언가 비법을 전해 듣기를 원했을 테니까. ‘이 글 한 번만 봐도 면접은 100% 합격한다’ 같은 말을 원했을 테니까. 그런데 그런 건 없다. 기대도 하지 말라. 혹 그런 거 있다는 사람 있으면 분명 사기꾼이다. 어떻게 면접에 100% 합격하는 방식이 있을 수가 있겠는가. 생각해보라. 합격하는 방식이 따로 있다면 그런 방식으로 하는 학생이 수십 명만 되어도 이미 싫증 난 방법, 인위적인 방법이 되어버리지 않을까? 정말 면접을 잘 보고 싶다면 어떤 기술이나 빠른 길을 찾아서 헤맬 것이 아니다. 먼저 자기 자신이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거다. 


학생들이 착각하는 것이 면접 때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평소엔 엉망진창으로 살아도 면접 때 말 몇 마디 잘하면 합격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자신이 얼마나 심각한 상태인지 아예 모르는 학생도 많다. 어찌 됐든 결론은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 한예종 교수를 예로 들어 보자. 한 10년 정도 교수를 했다면 일 년에 수백 명의 학생을 면접 보고, 또 합격한 학생들의 성장 과정도 지켜봤을 것이다. 줄잡아 수천 명의 학생의 입시 과정을 지켜보고, 지도해 본 교수들이다. 그리고 예술이란 인생에 대한 통찰을 다루는 학문이니 어쩌면 가장 촉이 가장 발달한 분야 아니겠는가? 결론은 교수 무시하지 말라는 거다. 교수는 다 안다. 네가 어떤 학생인지. 그러니 자소서와 면접을 가볍게 보지 마라. 입시 때 네가 쓴 글과 자소서와 경력을 참고해서 몇 마디만 물어봐도 너에 대해서 확실하게 알 수 있다는 것. 그것을 신뢰하는가? 신뢰하지 못한다면 말콤 글레드웰의 '블링크' 란 책을 읽어보라. 우리가 말하는 ‘직관’이라는 것이 얼마나 과학적, 통계적 근거에 기반을 둔 치밀한 메커니즘이 작용하고 있는지를 밝힌 책이다. 그러니 정말 평상시의 네 행실이 중요하다.


네가 누구(Who)인지 돌아보라


강철 멘탈은 정말이지 눈에 띈다. 난 학생을 볼 때 불합격했을 때 또는 막 시험을 보고 난 뒤를 주목한다. 이것 역시 나의 경험에서 나오는 학생 평가법이다. 내가 지금까지 경험해봤을 때 시험 보고 나서 바로 연습실에 와서 연습하는 배우 지망생, 또 바로 수업에 나와서 글 첨삭 받는 연출가 지망생 중에 입시에 실패한 학생을 본 적이 없다. 혹 운이 없어서 몇 번 실패했을지언정 결국 한예종에서 만나게 되더라. 이건 명백한 사실이다. 세상이 그렇게 병신같은 게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말 중에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말이 있다. 프로페셔널한 학생은 반드시 성공한다. 몇 번 기회를 놓칠 순 있어도 반드시 한 번의 기회를 잡는다. 예술가로의 성공까지는 보장할 순 없어도 입시 정도는 반드시 결과를 낸다. 이 글을 통해 면접을 잘 볼 수 있는 스킬(How)을 배우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Who)를 돌아보는 시간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나는 상담 때도 수업 때도 직설적이다. 에둘러 말하지 않는다.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 객관적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동기를 불어넣어 줘야 한다. 그렇다고 걱정은 마라. 걱정하지 마라. 이 글을 읽는 학생들의 사정은 거의 비슷하다. 강철 멘탈, 사실 별거 아니다. 조금만 더 계속하면 되는 거다. 이 책을 여기까지 읽었다면 너는 대단한 열정이 있는 학생이다. 이미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을 것이다. 연극영화과 입시는 100%가 합격하는 게 아니라 55%가 합격하는 것이다. 100%가 떨어지는 게 아니라 45%가 떨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자신을 객관적으로 돌아보고 단 하나의 행동이라도 실천하라. 그걸로 변화의 조건은 충분하다. 나를 믿고 그렇게 해보길 바란다.


제 3의 이유(Others)를 직시하라


하지만 How보다, Who보다 더 중요한 게 한 가지 있다. 그건 바로 Others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제3의 이유란 거다. 그건 너를 면접하는 심사위원들의 의중이기도 하고, 학교의 내부사정이기도 하고, 네가 잘 알지 못하는 어떤 변수를 말하는 거다. 100% 면접에서 합격하는 법을 말해주겠다. 바로 심사위원의 마음에 쏙 들면 된다. 당연한 말 아니냐고? 그런데 이 당연한 말 속에 진리가 있다. 네가 아무리 삽질을 해도 그 어떤 극악한 실수를 해도 심사위원이 너를 좋게 보면 무조건 합격한다는 것이다. 올해 입시에서도 결국 보면 학생들, 입시생들이 아무리 예측하고, 예상해봐야 소용없다. 교수의 마음이 제일 중요하다. 입시장에서 교수가 널 보고 괜찮다고 한다. 이런 분야에서 잘 할 것 같다고 꼭 집어 말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일이 실제로 종종 일어난다. 


한예종에 합격한 학생들에게 물어보라. 뭘 잘 준비해서 합격했다기보다는 교수와 학교 측의 어떤 기준, 당시의 어떤 매력 어떤 부분이 교수의 마음에 들어서 무난하고 순탄하게 합격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교수가 마음에 들어 한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우리가 조종할 수 없듯이 교수의 마음도 우리가 조정하려 해서는 안 된다. 어찌 됐든 심사위원의 의중이 가장 중요하다. 입시의 주도권이 너에게 있지 않다는 것 정도만 기억하자. 입시에서 가장 먼저 깨달아야 할 것이 입시의 주도권이 너에게 없다는 것이다. 심사위원에게 있다는 것. 그것을 깨달아야 한다.


너만의 기준을 버려라


그런데 문제가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보편적인 입시의 기준과 교수가 평가하는 개인적 기준이 다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내가 6년 전쯤 입시학원에서 학생들 연기를 가르쳤을 때다. 당시 잘나가던 클라라 같은 성격을 가진 여자가 있었다. 사실 클라라보다 훨씬 못했지만… 아무튼 비슷한 이미지였다. 쫙 달라붙는 분홍 트레이닝복에 다소 통통한 체형, 글래머러스한 몸매(여학생들은 이런 스타일 싫어한다. 슬랜더한 스타일을 훨씬 더 쳐주는 것 같더라) 그리고 성격은 클라라 판박이였다(인격체 클라라가 아닌 방송에서 그려지는 일반화, 대상화된 측면에서의 클라라). 수업 시간 일주일 중 한두 번 수업에 나오는데 수업시간에 무슨 지적을 하면 '아이이잉~~~' 하고 애교를 부리며 핑계를 늘어놓았다. 당연히 여학생들이 토할 정도로 싫어했다. 그 학생은 수시 보기 약 3주 전에 학원에 나왔는데 이미 학원에는 연기를 배운지 몇 년 된 학생도 적지 않았다. 3주 후 결과는? 서울에 있는 모 대학 연기과 입시에 합격했다. 학원에서 극찬을 받는 성실한 학생들, 저런 애가 진국이지 하는 학생들은 모두 다 떨어지고 그 여학생 혼자 붙었다. 단 3주 만에. 그때 다른 여학생들이 단체로 충격을 받아서 며칠을 힘들어하던 게 기억난다. 실제 경험한 일이다. 


너의 기준을 버려라. 학원에서 학원 선생들이 칭찬해주는 성실하고 좋은 학생들도 물론 중요하지만, 결국 입시는 뽑아 주는 사람의 취향에 달려 있다. 그런데 더 무서운 것은 그 기준이 일반적이고,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그것과 완벽하게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특히 연기 쪽이라면 더욱 그렇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은 현실이 이러니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다. 입시에서 섣부른 예측, 자신만의 기준, 예상 등을 너무 믿지 말라는 말이다. <승자독식사회>에 나오는 ‘워비콘호수 효과’라는 기억하라. 사람은 아무리 그 가능성이 낮다고 해도 자신만은 그 낮은 가능성을 뚫고 행운을 잡을 거라는 막연한 심리가 작용한다는 것을 말이다. 한예종 연기과의 경쟁률이 아무리 4000 : 30을 기록한다 해도 ‘나는 다르겠지. 나는 붙겠지. 나는 당연히 합격하겠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경마장에서 경마를 통해 돈을 딸 가능성이 아무리 낮다고 해도 그 낮은 가능성을 믿는 수 많은 사람 덕분에 마사회 따위가 대한민국 청년들의 선호 직장 1위가 되어 버렸다. 워낙 이런 사람들이 많으니 직원들한테 몇 억씩 뿌릴 수 있는, 이른바 신의 직장이 된 것이다.


이것의 배우의 인생이다


그러니 이렇게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 반대로 생각해보는 것이다. 위의 말이 사실이라면 네가 떨어진 것은, 사실은 네 책임이 아닐 수도 있다. 입시 따위에 실패했다고 상처받지 마라. 그건 그냥 그들의 취향이 아니었던 거다. 진실로 네가 뭘 잘못해서가 아니다. How의 문제가 아니란 거다. 그런 자들의 평가 따위에 상처받기엔 너의 꿈과 열정, 마음이 너무 소중하다. 너무 아깝다. 입시의 결과를 함부로 너의 실존과 등가 교환하지 말자. 그리고 또 이렇게 생각하자. 입시에서 제일 중요한 게 교수나 심사위원의 취향이나 기준 따위라면, 그 기준이 일관되고 나름 원칙적이라면, 그 결과에 해당하지 못해 떨어지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지 않겠는가? 내가 그 기준에 못 미쳤음을 받아들이고 다시 최선을 그 기준을 넘어서기 위해 노력하면 되지 않겠는가? 규정이 정당하고 규칙이 원칙적이라면 원하지 않는 결과가 나와도 손뼉 쳐 주고 다시 시작할 수 있어야 프로패셔널한 것이다. 실제로 한예종 입시에 이 같은 Others의 원칙이 태풍처럼 강타한 해가 있었다. 합격생을 거의 다 고3 학생으로 채운 것이다. 합격생의 절반이 고3인 과도 적지 않았다. 이처럼 학교 안의 내부사정은 매우 중요하다. 남학생과 여학생의 성별 비율도 중요하다. 그런 여러 가지 사정들을 고려해서 학생들을 선발한다. 한 마디 정도로만 정리해보자. 입시는 네가 예상하던 것과는 다른 요소들이 훨씬 더 중요하고 많다. 하지만 그 규정이 정당하고 일관성 있다면 깨끗이 승복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결과에만 집착하면 상대방은 안다. 집착하고 꾸미는 무리수는 드러나게 마련이다. 결과에 집착하는 학생은 반드시 실패하게 되어있다. 그러므로 결과를 보기보단 과정에 충실하고 언제나 최선을 다할 수 있어야 한다. 설혹 기회가 오지 않더라도 흔들리지 않고 계속하는 게 중요하다. 예술 입시의 특징 중 하나가 바로 많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경쟁이 치열하니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한예종 연기과 지원자 4,000명 중 남자만 15명을 뽑는 입시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상담 중에 종종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 한예종이 커리큘럼, 교수진과 같은 이런저런 면이 좋아서 선택했다고. 그렇지 않다. 한예종은 자신이 선택한다고 합격하는 곳이 아니다. 그 전에 한예종이 정한 기준에 자신이 부합되는지부터 객관적으로 살펴볼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연기를 한다면 떨어지는 걸 두려워해선 안된다. 수 없이 거절당하다가 한 번의 기회를 붙잡는 것이 바로 배우의 인생이다. 그래서 배우가 힘든 것이다. 연출도, 뮤지컬도, 극작도, 방송도, 심지어 영화까지 모두 마찬가지이다. 그러니 실패하지 않으려 하지 마라. 오히려 실패 후에 더 강해지려고 노력하라. 예를 들어 서울예대 같은 경우엔 수시보다 정시입시가 훨씬 더 수월하다. 그만큼 거품이 많다는 증거다. 그러니 실패를 겁내지 말고 실패 후 오뚝이처럼 일어서려고 노력하자. 그렇게 시도하면 그 의지 때문에라도 반드시 결과를 이룰 것이다. (실제로 포기하지 않고 몇 번씩 준비하는 학생들은 방향만 정확하다면 결국 3년 안에 많은 수가 합격한다) 특히 연기과 지원이라면 명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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