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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민 Mar 24. 2020

연극영화과는 '외모'를 본다?

내가 연극영화과를 나왔다고 하면 주변 사람들은 제일 먼저 연예인 이야기나 방송 프로그램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나는 지난 15년간 TV를 보지 않았다. 최신 방송 트렌드나 유행하는 프로그램을 본 적도 거의 없다. 신문, 잡지를 통해 뉴스로 접할 뿐이다. 학교 다닐 때 많은 연예인과 함께 수업을 들었지만 별로 관심이 없었다. 나는 연극영화가 방송, 연예가와 일차원적으로 연결되는 것이 이상했다. 나는 연극영화를 예술로써 바라보았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잡지를 볼 때마다 그 속에 빠져드는 것처럼 (고고학, 우주, 심해의 세계, 탐험가들의 이야기, 세렝게티 초원 등) 영화를 보고, 또 연극을 보았다. 다양한 고전들을 접할 때의 그런 설렘을 가지고 연극과 영화에 접근했다. 나는 연극과 영화 그 자체가 신비했고 가슴 떨렸지, 거기에 나오는 어떤 스타나 연예인으로 인해 가슴 떨리지는 않았다. 오늘의 주제는 바로 이 부분에 대한 것이다.


진지함에 대하여


예술 입시에서 말하는 ‘진지함’이란 어떤 것일까? 내가 처음 이런 글을 블로그에 쓸 때만 해도 예술입시를 인문학적으로 접근한다는 것은 매우 생소한 개념이었다. 그래서 인문학을 언급하는 자체로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방송 프로그램을 줄줄 꿰는 학생은 많아도 체호프의 희곡을 깊이 있게 읽은 학생은 드물었다. 최소한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이라도 다 읽어본 학생은 더 적었다. 배우를 하겠다는 학생들이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조차 읽지 않았을 정도이니 우리나라 예술교육이 얼마나 연예나 방송에 길들어 있었는지 체감할 수 있었다. 소위 예능감이 충분한 배우는 많아도, 자신이 참여한 작품에 대해 최소한의 이해를 하고 연기에 임하는 배우가 그토록 드물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딜레마가 발생한다. 이렇게 진지하고 진정성 있는 학생들이 실제로 합격하는가?


교수들이 인성과 인문학적 깊이를 본다고 하지만, 수천 명이 지원하는 입시에서 그런 깊이 있는 분석이 과연 효과적으로 이뤄질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은 결국 입시제도의 문제로 귀결된다. 진지하고 진정성 있는 것보다 한눈에 확 들어오는 어떤 개방성(아우라라고 할까? 끼라고 할까?)이 훨씬 더 주목받기 쉽기 때문이다. 이런 개방성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말할까? 과연 어느 정도까지 진지해야 할까? 진지한 것이 과연 도움이 되긴 되는 걸까? 나름의 결론을 내려본다. 우리는 이 진지함을 자꾸 면접과 연결 짓는다. 면접에서 뭔가 깊이 있어 보이려고 한다. 면접에서 책을 많이 읽은 것을 자랑한다. 면접에서 그래도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정도는 읽은 여자란 걸 강조하려고 한다. (‘난 이대 나온 여자’와 비슷한 프로파간다이다) 그런데 이게 문제란 거다. 


면접에서 신나게 소통하라


면접에서 너의 인문학적 지식이나 깊이, 예술적 지식 등을 인위적으로 드러내지 마라. 극단적으로 말해 면접에서 진지해지지 말라는 이야기다. 진지함 자체론 나쁠 게 없다. 다만 싫증 남으로 이어지기 쉽고, 소통을 방해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가장 나쁜 것은 의도와는 달리 너의 진지함이 교수들에게 거짓 포장으로 비칠 수 있다는 거다. 면접 때 절대로 포장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면접은 너의 인성과 창의성과 소통능력을 파악하는 자리이지 너의 인문학적 깊이를 평가하는 자리가 아니다. 오히려 네가 진짜 깊이 있고 진지한 친구라면 오히려 교수들과 신나게 소통할 수 있을 것이다. 친구들과 한바탕 신나게 떠들고 나온 그런 느낌이 들 것이다. 그건 지식을 자랑해서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서로 관점이 통할 때 가능한 일이다. 지식보다 소통이다. 인문학보다 소통이다. 학벌보다 외모보다도 중요한 것이 소통이다. 면접에선 이런 소통이 가장 중요하다.


그렇다면 진지함은 도대체 어디에서 노출되어야 하는 걸까? (인문학적 깊이나 예술적 몰입과 같은 진정성이 면접에서 노출되는 게 아니라면) 우선 노출이라는 개념이 적절치 않다. 노출보다는 DNA에 비유하는 게 더 적절하다. 인문학적 배경, 진정성, 진지함은 DNA와 같다. DNA는 몸 곳곳의 체세포에 녹아있는 것이지 보여줄 수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인위적으로 보여주려고 하는 순간 물 밖의 생선처럼 부패해버릴 것이다. 인문학적 깊이나 예술적 DNA는 오히려 네 작품 속에 녹아있는 게 합당하다. 즉 말로 포장하려 하지 않고 실력으로 경쟁해야 한다. 즉 인문학적 깊이나 진정성, 진지함 등은 너의 실기와 작품을 통해 평가받는 것이 합당하다. 다행히 교수들은, 또 입시에서 그런 너의 모든 노력은 반드시 입증된다. 단, 면접보다는 작품을 통해서. 


완벽한 실기로 자신을 증명하라


인문학적인 깊이는 너의 예술 속에 녹아있는 게 합당하며 결국 너의 삶 속에 녹아있는 게 합당하다. 영화과라면 직접 쓴 작품 속에 자기만의 인문학적 깊이와 DNA가 흐를 것이다. 연기과라면 연기 속에 이러한 깊이와 열정이 흐를 것이다. 물론 입시를 평가하는 교수들이 가장 많이 보는 것은 (한예종을 기준으로 하면) 다름 아닌 기본기다. 목소리, 발음, 발성…. 그러나 그다음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연기적 진실이다. 입시 현장을 보라. 연기학원에서 짜준 대로 앵무새처럼 대사를 외운 후 아무 생각 없이 내뱉는 학생들이 부지기수다. 현장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대사를 이해하고 말하는 배우가 매우 드물다. 교수들은 지원자가 자신의 이야기에 대해 얼마나 책임질 수 있는지를 평가한다. 인문학적 깊이란 바로 이런 데서 드러난다. 자신의 대사를 책임질 수 있는 배우가 된다니, 생각만 해도 근사하지 않은가? 영화나 극작, 연출이나 방송영상, 예술경영 같은 부분은 이런 인문학적인 깊이나 소통, 진정성을 실기에서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이 적지 않다. 실기로 경쟁하라. 면접에서 어설프게 포장하려 하지 말고 완벽한 실기로 입증하라. 그걸로도 충분하다.


피지컬이 중요하다


하지만 네가 연기과를 지원한다면 안타깝게도 사정이 좀 다르다. 일부 학교에서는 역시 외적인 매력을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때 외적인 매력이란 성형한 얼굴이나 몸매 따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식의 획일화된 미인은 너무 많고 흔하다. 그런 외모를 갖춘 학생들이 뜻밖에 입시에서 고전하곤 한다. 예술에 대한 진지한 열정? 인문학? 소통? 미안하다. 연기과 입시에선 그런 것보다는 외적인 매력이 훨씬 더 중요하다. 사실 연기자란 원래 그런 것이다. 외적인 매력이 곧 연기자의 매력 그 자체로 중요하다. 그러므로 자신을 충분히 가꿀 줄 알아야 한다. 외적인 매력과 단순 외모는 다르다. 분위기나 아우라, 느낌… 이런 것들을 표현할 수 있는 외적인 정체성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외적인 개성을 드러낼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정신적인 면에 비해 몸이나 육체성, 즉물성, 이드의 영역을 지나치게 금기시해 왔다. 하지만 현대 예술의 트렌드는 무조건 몸의 회복이다. 육체성과 즉 물성, 즉흥성의 재발견이다. 잘 준비된 육체에서 나오는 신체적 매력은 매우 중요하다. 배우에겐 이런 피지컬한 부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연극영화과가 외모를 많이 본다는, 그런 피상적인 이분법적인 언급을 하려고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니다. 육체적인 트레이닝을 통해 잘 훈련된 신체, 조화로운 신체, 잘 가꿔진 신체, 그리고 연기나 특기를 통해 충분히 표현되는 신체적 요소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하고 있다. 배우에게 육체성, 몸, 물성 즉 피지컬은 현대 연극, 연기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자 최신 트렌드다. 몸이 통제되지 않는 배우가 인문학을 논할 때 교수들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배우는 가장 먼저 무대 위에서 보이는 존재다. 이것을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일단 신체가 잘 훈련되고 난 후에는 나머지의 다양한 요소들은 모두 배우의 개성으로 만들 수 있다. 큰 키도, 작은 키도 배우의 개성이다. 주걱턱도, 살집이 있는 것도 배우의 개성이다. 일단 개성으로 인정되면 그 자체로 존중받을 수 있다. 교수들도 이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훈련되지 않은 신체, 훈련되지 않은 몸뚱이는 누구도 용납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연영과는 외모만 본다고 단순하게 말하지 마라. 피지컬적인 훈련이 부족한 신체를 외면하고 외모 탓만 하지 말라는 것이다. 개성 있는 외모도 괜찮다. 몸이 훈련된 배우라면 무조건 된다. 네가 못생겨서 떨어진 게 아니라 훈련되지 않고 가꿔지지 않은 신체이기 때문에 떨어진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한다. 육체성의 회복, 이것은 연극에 있어 가장 중요한 트렌드다. 연극의 근원적인 존재 요소 중 하나다. 현재 가장 잘 나가는 남자안무가 정영두씨를 보라. 좋은 모델이 될 것이다. 어떤 공연에서도 몸이 받쳐주지 않는, 신체가 훈련되지 않은 배우들은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외모를 말하기 전에 피지컬을 훈련하라. 훈련된 몸이 가장 아름다운 외모임을 절대 잊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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