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the Absence_04 - 성 로렌스교회 추모예배당
아직 오후 두 시가 채 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하늘이 어둑해지려고 합니다. 버스에서 내리니 눈발도 한두 점씩 날리기 시작합니다. 핀란드의 겨울이 선사하는 시간감각 속에서 비로소 내가 낯선 곳에 와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옷깃을 여매고 십여 분간을 걷다보니 저 멀리 성 로렌스 교회가 보입니다.
성 로렌스 교회(Church of St. Lawrence)는 헬싱키 시내에서 버스로 한 시간가량 떨어진 반타(Vantaa)에 위치해 있습니다. 교회는 15세기 중반에 지어진 석조건물로, 인근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입니다. 본래는 가톨릭 교회였으나 현재는 핀란드의 국교인 루터교에 속해 있다고 합니다.
교회의 본 건물과 종탑 사이에 난 길을 따라 걸어가면 양옆으로 수많은 신도들의 무덤들이 줄지어 나타납니다. 무덤의 수만 세어보아도 이 교회가 거쳐온 세월이 느껴지는 듯합니다. 저 멀리 성 로렌스 추모 예배당의 흰색 외관이 시야에 들어옵니다.
추모 예배당(St. Lawrence Chapel)은 사이즈가 다른 세 개의 예식 공간이 연속적으로 중첩되어 있는 형태입니다. 건물의 모서리에는 높은 종탑이 위치하고 있고, 종탑의 육중한 청동 출입문을 지나치며 모서리를 돌면, 작은 연못이 있는 두 개의 중정이 나옵니다. 작은 연못에는 날카롭게 깨진 형태의 자연석으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중정을 지나면 로비로 연결되는 입구가 있습니다.
로비에서 관리인분의 안내를 받아 내부 공간을 둘러보기 시작합니다. 조도가 낮게 설정된 로비는 꽤 아늑한 느낌입니다. 로비의 왼쪽 벽과 천장이 만나는 부위에 천창이 길게 나있어, 위로부터 유입된 자연광이 하얀색 회벽을 쓸고 내려옵니다. 마치 빛의 인도를 받는 느낌으로 벽을 따라 걸으면, 대형 예식 공간이 나옵니다. 이곳은 망자와 애도자들이 만나는 공간으로 작별을 위한 장례예식이 치러지는 장소입니다. 전체적으로 로비에 비해 천장이 높고 부드러운 빛으로 채워진 공간입니다. 경사진 천장과 오른쪽 유리벽면에는 푸른빛의 코퍼 메쉬(patinated copper mesh)가 덮여 있어, 건물 북측에 위치한 무덤으로 향한 시야를 제한합니다. 바닥은 모두 검은색 슬레이트 타일로 덮여있어서 견고하고 엄중한 느낌을 줍니다.
회중이 앉는 벤치는 집성목을 두툼하게 잘라 만들어서 엄숙하고 견고한 느낌을 줍니다. 형태와 구조가 거의 일치되며 만들어지는 간결함이 인상적입니다. 넉넉하고 여유롭게 나무를 사용한 방식에서도 핀란드다움이 느껴집니다. 나무의 표면은 특별한 마감처리를 하지 않아서 자연스러운 질감으로 그대로 방문객을 맞이합니다.
공간과 가구뿐 아니라 장례 집행에 필요한 여러 가지 소품들도 건축가가 직접 디자인하였습니다. 촛대, 꽃장식대, 오르간 케이스 그리고 성직자용 제단 등 모든 것에서 극도로 간소화된 디테일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식을 진행하는 동안, 주변의 그 어느 것도 불필요한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게끔 절제된 건축적 장치를 통해 배려한 것입니다. 인간이 죽음과 상실을 경험하는 과정에서 겪는 감정적 고통을, 건축이 어떻게 완화할 수 있는가에 대한 건축가의 진지한 고민과 탐구의 과정이 여실히 드러나는 공간입니다.
이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는 아반토 아키텍츠로 헬싱키에 사무소를 둔 아주 젊은 건축가 듀오입니다. 이튿날, 저는 그들의 사무실에 들러 답사 시 느낌을 나누고 궁금했던 점을 질문하였습니다. (CP: Curious Praxis / AA: Avanto Architects)
CP: 먼저 오늘 이렇게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무실이 참 좋네요.
AA:네, 사무실이 있는 이 건물은 예전에 공장등으로 사용되던 곳으로 현재는 여러 건축 및 디자인 관련분야 회사들이 들어와 있습니다. 주변 지역에도 크리에이티브 분야 관련 업체들이 많이 분포하고 있어, 디자인을 하기에는 좋은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CP: 어제 세인트 로렌스 채플에 갔었습니다. 여기서 조금 떨어져 있어서 가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가보니 너무 좋았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아반토의 첫 프로젝트로 알고 있는데요, 건물의 각 공간이나 디테일의 완성도가 너무 훌륭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만드는 게 가능했나요?
CP: 세인트 로렌스 채플이 저희의 첫 프로젝트이긴 하지만 실제로 완성되는 데에는 8년 정도 되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동안 시간을 들여서 서서히 프로젝트를 다듬어 가는 것이 가능했기에, 완성도 높은 디테일이 나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CP: 성 로렌스 추모 예배당을 구상할 때 특별히 영감을 줬던 공간이 있었나요? 그리고 공간 구성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요소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AA: 스칸디나비아의 장묘 건축의 전통이나, 루터교의 전통에 대한 배경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스웨덴 건축가 레베렌츠나 다른 핀란드 건축가의 작업에 대해서도 익숙하게 알고 있긴 했지만, 저희는 특별히 장묘 건축 관련 사례에서만 영감을 찾으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는 사례는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과, 이집트의 피라미드 같은 건축물이었어요. 문화적, 역사적 경계를 초월하여, 영성(spirituality)을 담고 있는 건축물에 있어서 공간의 연속성(continuity)에 대해 리서치를 하면서, 그 공간 안에서 사람들의 움직임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면밀히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원리를 추모 예배당에서 일어나는 종교적 의식의 연속성과 사람들의 움직임의 연속성에 적용하고자 하였죠. 길(Polku)이라는 컨셉은 그러한 맥락에서 선정되었습니다. 여기서 길은 ‘이곳'에서부터 ‘다음'으로 이르는 길, 기독교인의 영혼의 통로를 상징하는 동시에, 의식의 과정에서 애도자들이 따라 걷는 길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장례예식은 아주 독특하고 힘든 행사이기에 예식이 어떤 방해도 없이 잘 진행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채플에서 의식이 진행되는 동안, 식과 관련된 모든 동선은 한 방향으로만 흐르도록 되어있고, 각기 다른 예식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동선은 절대로 겹치지 않도록 설계하였습니다. 장례의식이 끝나면 관은 예배당 앞쪽의 오른쪽에 나있는 출구를 통해 북쪽의 묘지를 향하고, 참석한 회중은 그 뒤를 따라 행진하도록 동선을 계획하였습니다.
CP: 어제 성 로렌스 채플에 처음 들어섰을 때에는 공간이 마치 위로의 말을 건네는 듯 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무척 인상적인 경험이었는데요. 채플의 공간에 특정한 문화적·사회적 경계를 초월하여 사람에게 호소하는 힘이 있는 듯 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건물에 사용된 주요 재료들이나 공간에 적용된 디테일들, 그리고 설치된 예술작품들이 각기 어떤 확고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사용되고 있다는 인상이었는데요. 예를 들어, 천장에 적용된 녹청이 입혀진(patinated) 동판은 그 자체로 슬픈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푸른색을 띠고 있는 듯했습니다. 인간의 고통과 슬픔에 대한 공감이 느껴졌다고 할까요? 제가 느낀 이러한 감각이 설계과정에서 의도된 것인지 궁금합니다.
AA: 어제 경험하신 바는 우리의 디자인 의도의 핵심에 무척 가깝습니다. 우리는 채플이 고통스러운 경험을 겪는 애도자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는 공간이 되었으면 하였습니다. 조적식 벽체 위에 하얀색 플라스터를 발라 마감한 것도, 장례 예식이 거행되는 배경이 엄숙하고 고요한 것이 되길 원했기 때문이지요. 기존 교회(성 로렌스 교회) 건물 외벽에 사용된 재료인 돌을 표면에 드러내게 되면, 너무 강하고 무거운 느낌이 들것이고 그것은 우리가 떠올린 의식의 이상적 모습과는 맞지 않았습니다. 녹청(patina)은 실내환경에서 자연적으로 생기지 않기 때문에, 장인에 의해 일일이 손으로 입혀서 효과를 낸 것입니다. 이러한 수작업의 강조는 전체 프로젝트를 아우르는 중요한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재료 선정의 또 다른 기준은 재료의 지역성 및 내구성입니다. 추모 예배당이 속해있는 성 로렌스 교회는 15세기부터 있었던 것으로, 지붕에는 청동, 벽체에는 돌이 주재료로 사용되었습니다. 저희는 이 채플이 최소 200년의 수명을 가진 건물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각종 시뮬레이션을 통해 건물의 구조와 재료들이 목표에 부합하도록 선정하는 동시에, 주변의 역사적 지역적 맥락에 부합하는 재료를 선정하였습니다.
CP: 채플 곳곳에 설치된 예술 작품들도 비슷한 맥락에서 선정되었나요? 작품들이 건축 의도와 상당히 잘 맞아떨어진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예술가들과의 협업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궁금한데요.
AA: 건축 제안이 공모전을 통해 선발된 것과 마찬가지로, 모두에게 개방된 형태의 예술작품 공모전이 있었고 380개의 작품이 출품되었습니다. 예술작품의 형식에 대한 제한은 없었으나, 작품이 대중이 접근 가능한 곳에 설치되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습니다. 예술작품의 심사에는 저희 건축가도 함께 참여하였습니다. 선정된 작가들은 우리가 설계한 건축공간에 대한 이해뿐 아니라, 건축과 예술작품 간의 관계에 대한 뛰어난 이해를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작품에는 사람들이 겪는 고통에 대한 공감과 그들을 돕고자 하는 의지가 담겨 있었습니다.
CP: 한국의 경우, 죽음이라는 테마의 무거움 때문인지, 장묘건축 설계 프로젝트가 젊은 건축가에게 주어지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아반토의 첫 프로젝트로서 세인트 로렌스 채플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과 관련하여 특별한 어려움은 없었나요? 이 프로젝트는 아반토 아키텍츠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도 궁금합니다. 프로젝트 이후 설계 작업의 행로에 있어서 어떠한 변화가 있었는지도요.
AA: 2003년도의 공모전에서 당선된 것은 아반토 아키텍츠를 설립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당선 후 실제로 건물이 완공되기까지는 8년 정도 되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8년간 시간을 들여 서서히 프로젝트를 다듬어 가는 것이 가능했기에, 완성도 높은 디테일이 나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아반토에게 매우 축복된 기회였습니다. 이러한 프로젝트는 핀란드에서도 매우 드문 경우에 속하니까요. 보통 프랙티스 초기에 이런 프로젝트를 맡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지요. 그리고 성 로렌스 추모 예배당 프로젝트는 이후 아반토에게 주어지는 일의 성격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이러한 종류의 프로젝트를 컨셉 구상부터 시공에 이르기는 영역까지 해 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특별히 놀랐던 것은 그들이 가진 시간에 대한 감각이었습니다. 200년 이상 지속될 건물을 상정하고 계획해 나가는 것은 저는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미지의 영역입니다. 그래서인지 시간을 초월한 공간을 만들어 가는 감각이 어떨지 궁금하고 솔직히 부럽기도 했습니다. 건축물을 완공하기까지 걸린 8년이란 시간도, 이 건물이 살아갈 시간을 고려하면 결코 긴 시간은 아닌 듯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