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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즈키 Aug 29. 2020

"이곳에서는, 사람 절대로 믿지 마."

분노하며 찾아오는 사람들


노동청에 와서 처음 선배들에게 들었던 말은

사람 믿지 말라는 것.


처음에는 민원인(근로자)을 대하는 선배들의 태도에 적잖이 충격받기도 했다.

'왜 저렇게 불친절하게 대하시지? 조금만 따뜻하게 말하면 좋을 텐데..'

'조금만 부드럽게 말할 순 없을까? 저 근로자가 노동청에 신고하기까진 얼마나 힘들었을 텐데.'


그런데 6개월이 지나갈 무렵에 진상 민원인들을 겪으면서, 왜 선배들이 그렇게  수밖에 없는지 몸소 체득했다.



정말 억울하고 정말 약자인 근로자도 있지만,

'이해관계'가 다른 근로자로 오는 경우도 많았다.

아는 지인끼리 돈 못 받은 것인데도 자신은 노동청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감독관을 협박하는 경우도 있었다.


자기가 누릴 건 다 누리고,

사장이 법적인 부분을 지키지 못한 걸 교묘하게 이용해서 협박하는 민원인들을 보며 근로감독관이란 직업에 대해 상당한 회의감이 들었다.

내가 도대체 누굴 위해서 일해야 하는지,

내가 왜 이런 인간들을 위해 이들의 권리를 찾아줘야 하는지,

내가 진짜로 도와주어야 할 사람은 어디에 있는지.



사고는 자신들이 쳐놓고, 못 받은 부분은 억울하니

감독관이 돈 당연히 받게 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며 생떼를 부리고

국민신문고에 감독관 징계 주라고 협박하는 민원인들을 보며

이딴 공무원 더러워서 안 한다고, 내가 민간인이 돼서 한판 붙어보자고.

그런 마음이 들었던 적이 수십 번이었다.


"민원인들이 항상 녹취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말조심해야 해."


맞는 말이다.

초임 때 멋 모르던 시절,

근로자가 무조건 약자라고 생각하여,

심지어 조사하다가 어떤 민원인이 자기 신세한탄을 해서

같이 울어주기까지 했는데도,

자기 뜻대로 조사가 이뤄지지 않으니,

태도를 돌변하여 미친 여자처럼 나한테 수십 번씩 전화해서  모든  녹음하고 피해망상에 사로 잡혀 피해자 코스프레했던 민원인이 있었다.


이곳에서 별의별 진상들을 만나다 보니,

나도 행동이 험악해진다.

나를 방어하려고

나도 모르게 불친절한 태도로 변하게 된다.


감독관이 친절하게 대했을 때, 그걸 이용하여

자기 입맛대로 수사를 진행하려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다 보니, 어쩔  없다.

  진상 1~2명에게 받은 상처 때문에

때론 평범한 이들이 내 태도에 상처를 받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사람을 믿어선 안 되는 이곳.

나를 먼저 지켜야 하는 곳.


가끔은 마음이 팍팍해진다.

이곳을 내가 언제까지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다.

신경은 언제나 날카롭고

분노와 억울함이 주된 감정인 이곳의 민원인들에게

내 말 한마디 한마디를 아껴야 하는 상황들에 때론 숨이 막힌다.


하지만, 때론

원수같이 싸우던 당사자들이 서로 화해하고

풀리지 않을 거 같던 사건이 풀릴 땐

보람을 느낀다.


주님도 사람은 믿지 않으셨다.

다만 사람을 사랑하라고 하셨지.

 

어느 선배의 조언처럼

미운 민원인들을 일부러 사랑하려고 스스로 괴롭게 하기보다,

먼저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싶다.

그들을 믿지 않으려고 스스로 힘겹게 하기보다,

나를 먼저 믿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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