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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와이 Aug 27. 2021

D+17 오케바리 주차

이탈리아 토리노(뚜린)로 발길을 돌렸다. 프랑스의 남동쪽 끝인 니스에서 다음 행선지인 스위스로 가기 위해, 단 하루의 일정으로 이탈리아를 거쳐 가기로 정한 건 몇 가지 이유들 때문이다. 프랑스 내륙으로 들어와 아비뇽(Avignon)과 앙시(Annecy)를 거쳐 올라가는 루트는, 왔던 길을 다시 밟아 가기에 본 것을 다시 볼 것 같다는 것(지금 생각해보면 아쉬움이 남는 곳이 참 많지만)과 한 번이라도 국경을 더 넘어보고 싶다는 하찮은(?) 욕심 때문이었다.


니스에서 해안을 따라 동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달리는 차의 오른쪽으로는 끝날 줄 모르는 긴 해안선이 함께 달린다. 작은 나라 모나코를 무심히 지나 프랑스-이탈리아 국경 최전선의 도시 멍똥(Menton)을 지나니 어느덧 국경에 이르렀다. 이렇게 바다를 끼고 가다 적당한 때 왼쪽으로 틀어 북으로 북으로 가면 멀리 알프스가 보이는 토리노가 나올 것이다.


톨 게이트에서 티켓을 뽑고, 약간의 흥분된 마음을 안고 지나가려는 중, 갑자기 공무를 수행하고 있는 듯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차를 세웠다.


경찰인가?

백신 여권을 보여달라고 하는 걸까?

교통 신호를 무시했나?

어디서 뭔가, 잘못된 걸까?


불안한 마음을 안고 운전석의 창문을 내리자, 제복을 입은 여자 공무원이 얼굴을 들이밀고 차 안쪽을 살피고는 이탈리아 발음이 섞인 영어로 묻는다.


어디서 오셨나요? 어디로 가시나요? 며칠 계신가요? 국적은 어디신가요?  10,000유로 이상의 현금을 운반하고 계신가요?


그러자 간단히 No라고 대답하면 될 질문에 갑자기 남편이 뒤적거리며 지갑을 찾기 시작한다. 다행히 조금 제정신이 살아있던 내가 남편을 제지시키고 No라 재빨리 대답했다. 그리고 그녀가 던진 마지막 질문,


Are you angry? (화나셨어요?)


엥, 아니 무슨 말이지? 당황한 남편은 즉시 대답을 하지 못한다. 또다시 조금 더 정신을 챙기고 있던 나가 No no 라 대답하고 나니, 차 안을 휘 둘러보더니 그제야 겨우 차를 보내준다.


남편 왈, 일단 그 사람이 마스크를 쓰지도 않고 가까이 얼굴을 대고 이야기하는 것과 그 시간 톨을 지나는 많은 차 중 우리가 잡힌(?) 건 역시나 동양인이었기 때문에 라는 생각에 순간 기분이 나빴다고 한다. (음, Angry 맞는구먼) 그리고 그녀의 태도도 정중하지 않았다고.


Are you anglet?(너 영국인이니?)

후에 이 일을 우리끼리 이야기하며 Angry 가 아니라 Anglet(엉글레, Englishman 란 뜻의 프랑스어)라고 물은 것 아니야? 라며 되돌아보며 웃었다. 남편의 영어가 훌륭(?)해서 영국인인 줄 알았다거나, 생김새가 그 나라 사람 같아서 물었다거나 말이다. Englishman in Italy.


잠시간의 소동이 잠잠해지고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푸른 바다를 옆에 끼고 달린다. 이탈리아 북부 해안가의 시골 마을 산 레모 Sanremo를 지나 제노아를 앞에 두고 왼쪽으로 꺾어 이제 북쪽으로 간다. 그리고 한두 시간쯤 뒤, 빨간 기와지붕 집들이 있는 토리노에 도착했다.


우리에겐 2006년의 동계올림픽으로만 알려진 토리노이지만, 밀라노와 함께 북부 이탈리아의 경제 중심지이자 자동차 산업이 발달한 도시이다. 그래서인지 시내 중심엔 괜찮은 가격에 조식도 포함되어 있는 비즈니스호텔이 꽤나 있는 편이다. 2주일간 갖가지 종류의 에어비앤비에 심신이 지쳤던 모두는 오랜만에 느껴보는 호텔에서의 편안함을 즐겼다. 까슬하게 덮여 있는 하얀 침구, 뜨거운 물을 받은 욕조에 몸을 푹 담그는 것만으로도 긴 피로가 가시는 느낌이다.


나와서 저녁식사를 하는 것조차도 싫고 쉬고 싶다는 의견에 테이크아웃을 하기 위해 가까운 이탈리안 음식점으로 나갔다. 그래도, 하루라도 이탈리아에 왔는데 피자와 파스타를 먹어줘야 할 것 아닌가! 에스파냐어와 비슷한 이탈리아어라 그런지 무슨 메뉴인지 알아보는 게 어렵진 않았다. 적당히 해물파스타와 프로슈토 피자, 해산물 튀김을 주문하고 카운터에 서 있다 보니, 여름밤 모기가 기승을 부린다. 이에 친절한 주인아주머니가 모기퇴치제를 가져다주신다. 세계 어디에나 비슷한 인심이 있다.


워낙 국제적으로 대중적인 음식이라 그런지, 본토의 맛이라고 큰 차이는 없다. 물론, 동네의 평범한 레스토랑 기준.

다음 날, 바로 다음 행선지에 갈 수도 있지만 못내 아쉬운 마음에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 둘러보니 역시 피아트(piat), 이베코(ibeco), 알파로메오(alpha romeo)의 시작이 된 도시답게 큰 규모의 자동차 박물관이 가까이 있는 걸 알게 되었다. 아쉬운 마음과 개운한 몸으로 체크아웃을 한 후 박물관으로 출발하였다.


유럽에서 자동차 여행을 한다는 것은, 주차난과 함께한다는 말과 같다. 또, 주차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하다는 것은 역으로 주차가 해결되면, 관광의 성과의 반은 먹고 들어간다는 의미가 된다. 그 정도로 차를 어떻게 처리(?)해놓고 움직일까는 이번 여행에서 항상 큰 의미를 가졌다.


다행히 토리노 자동차 박물관(Museo Nazionale dell'Automobile)에는 (자동차 박물관답게 당연히!) 지상주차장이 있어 큰 고민을 덜었다. 하지만 일요일 오후라 그런지 차들이 빼곡히 들어가 있어 잠시 주차공간을 찾아 머뭇거리고 있었다. 바로 그때, 한 아저씨가 후닥닥 달려오더니 주차를 리드해주기 시작한다. 나무 그늘이 시원하게 내려있는, 그런데... 주차라인이 맞는 건지 애매한 자리이긴 하지만... 괜찮아 보이기도 한 그런 자리.


“오케바리!”


너무 의외의 나라에서 듣는 너무 익숙한(?) 단어에 웃음이 터졌다. 이 말을 이 나라에서도 쓰는구나! 아저씨의 경쾌한 외침으로 주차를 마무리하고 남편과 아이들이 내리고서 난 짐을 챙겨 조금 후에 내리는데, 응? 저 앞에 선 아저씨와 남편의 분위기가 요상하다..??! 갑자기 지갑을 꺼내려 뒷주머니로 손을 대는 남편! 잠깐!


뛰어가 보니, 남편이 묻는다.


“2유로 있어?”


차에서 기분 좋게 내리고 나니 아까의 친절했던 아저씨의 표정이 싹 굳더니 갑자기 2유로를 내라고 했다는 것이다. 순간적으로, 지갑에서 지폐를 꺼내려고 하는 남편을 막고 이야기했다.


Solo uno euro


라고 하며 1유로를 주니,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자리를 뜬 아저씨...... 아, 이런 게 바로 소위 ‘이탈리아가 그냥 이탈리아 한 거’이다. 이탈리아에서의 작은 친절엔 항상 대가가 따를 수 있다는 것을 여행자들은 명심해야 한다.


구글 평이 상당히 좋았던 박물관답게, 알차게 구성된 박물관이었다. 자동차에 딱히  흥미가 없는 나조차도 슈퍼카, 올드카, 레이싱카  200대가 넘는 전시물을 재미나게 관람했다. 또한 반려견과 함께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다니는 것은 항상 어느 정도의 제약이 있었는데 여기선 그냥 목줄만 채워 데리고 다닐  있어 좋았다.


재미있었던, 역사의 현장에 함께한 자동차들. 스탈린-드골-케네디 등등

도시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전경이 한눈에 보이는 산타 마리아 성당(Chiesa di Santa Maria del Monte dei Cappuccini)에 간다. 붉은 도시 속 뾰족이 솟은 두오모의 탑이 언젠가 보았던 피렌체의 그것을 떠올리게 한다. 너무도 짧은 일정으로 머물고 가는 도시이지만, 충분한 휴식을 취해서인지 더 아쉬울게 없다.


저 멀리 알프스 산맥이 보인다. 오늘은 저 산을 넘어 어딘가에서 다음 여정을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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