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대문자 육각형일 필요는 없잖아요
결국 마음먹기에 달린 일이라는 걸 만 서른에서 서른하나로 넘어가기 전 하우스메이트인 J에게서 배웠다.
동갑내기인 J는 한국에서는 축산과를 졸업하고 연구실에서 분석하는 일을 했는데, 일과 사람에 치여 워홀을 선택했다. 뉴질랜드에서는 서빙일을 하고, 호주에서는 도축공장 그리고 지금 블루베리를 따고 있는데 그 누구보다 잘하면서 열심히도 딴다. 불평 한마디 없이 손이 느려진다며 물 한 모금이나 애써 싸온 점심도 거르고 가장 성실하게 일한다.
어디선가 누군가가 적은 글을 읽다 J가 문득 생각났다. 접시닦기 알바를 하는 한 유학생은 본인의 찬란한 미래를 꿈꾸며 접시를 닦고, 다른 유학생은 어떻게 하면 접시를 더 잘 닦을 수 있을까 고민을 하면서 접시를 닦는다고 한다. 그리고 성공적인 삶은 결국 두번째 접시를 더 잘 닦을 고민을 한 사람에게 돌아간단다. 그런 의미에서 J는 내가 보기엔 누구보다 성공적인 마음가짐을 가지고 산다.
접시를 잘 닦건 못 닦건 한국인에게는 경쟁사회가 익숙하다. 외모, 학벌, 재력 기타 등등 내보일 수 있는 것들은 어떤 것이든 남들보다 월등하게 우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평균치에 미치지 못한다며 자책을 한다. 그리고 이런 기준점들은 단순한 노오력만으로는 달성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을 너무 무엇보다 '타고나야' 한다는 점을 더 높게 산다.
육각형 인간이 뭐길래 2024년 트렌드 코리아에 키워드로 나왔을까. 예컨데 예전에 짤로 돌아다닌 명품 지갑별 피라미드 계급 나누기가 생각난다. 이제는 인간도 외모 별로, 직업 별로, 학번 별로 담을 쌓는 걸 모자라 타고난 집안으로도 급을 나누어 숫자로 평가를 내린다. 이건 한국의 데이팅 앱에서도 극명하게 나타나는 데 예를 들면, 골드스푼에서는 다른 유저들에게 사진 프로필 평가를 받아야 하고 일정 기준 점수를 넘지 못하면 (여자인 경우) 가입이 불가능하다. 남자라면 상황은 조금 더 복잡해지는데, 연봉 수준이 7,000만원 이상이 넘어감을 인증받아야 한다.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완벽한 육각형 타인과 나를 비교하는 문화가 하나의 놀이이자 문화가 되어버린 한국 사회에 살아남기 위해 부던히도 애썼다. 호주로 오기 전 나는 일명 '갓생살기'에 빠져 월요일 새벽에는 테니스 레슨을 다녀와 집에서 재택근무를 하고 저녁에는 IT 기술 스터디를 운영했고, 화요일과 목요일에는 저녁 발레 레슨을, 그리고 주말에는 (전)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즐기거나 친구들을 만나며 거의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헬스를 다녀왔다. 중간중간 이동시간에는 책을 읽고, 자기 직전까지 넷플릭스에서 좋아하는 쇼를 챙겨보는 삶을 몇 개월을 지속을 했다. 그럼에도 마음은 항상 허기졌고, 관계들은 망가졌으며 자기 검열은 점차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나는 내 삶의 육각형을 꽉 채우기를 포기했다. 대신 삶을 즐거운 것들로 채우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더 자주 많이 통화를 하며 위로를 받고 밤새워 깔깔대며 와인을 마시거나 저녁에는 맛있는 음식을 요리해먹는다. 살은 더 까맣게 타가며 마지막으로 속눈썹 펌을 언제했는지도 모르지만 아침 산책은 언제나 상쾌하고, 날씨는 언제나 맑고 바닷물은 투명하다. 나만의 육각형은 이제 새로운 도전을 할 용기, 삶을 성실하게 대할 태도, 친절한 마음을 가지는 법 등으로 채워나간다. 그리고 나는 이제 정말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