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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som Nov 23. 2020

상견례를 합니다.

인생 처음 상견례를 하면서

우리는 우리 집과 남자친구네 집 딱 중간에 있는 한정식집을 예약했다. 내가 가는 맛집도 그렇게 치열하게 찾아본 적이 없는데 상견례 장소는 정말 인터넷에 있는 후기를 전부 다 읽을 정도로 찾아봤다. 오죽하면 나는 해당 식당 이름을 치고 신규순으로 게시물을 봐야 했다. 이전 게시물을 모두 다 봐서.


어른들의 입맛을 맞추려니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었다. 특히 상견례 자리이다 보니 음식 맛이 하다못해 평범해야 그럭저럭 호불호 없이 다 같이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여기저기 바뀌기도 엄청 바뀌었지만 결국 작은 한정식 집을 찾아 예약했다.


그러고 나니 상견례에 누구까지 모셔야 하는지 의논을 하게 되었는데, 원래는 각자의 할머니까지 모시기로 했었다. 왜냐하면 우리 쪽은 아빠 자리가 비어있었기 때문에 물량(?)으로라도 머릿수를 맞춰야 하지 않나 싶었고, 또 어른들이 계시면 더 수월하게 분위기가 풀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할머니의 사정으로 결국 우리 쪽은 엄마, 나, 동생 이렇게 셋이 나가고 남자친구 쪽은 부모님, 형 부부, 남자친구 이렇게 다섯이 나오기로 되었다.

인원이 조금 차이가 나다 보니 자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는데 남자친구가 고맙게도 우리 쪽으로 앉아주겠다고 하여 내 옆에 앉게 되었다.


모든 일이 지난 지금은 별거 아닌 일이 되었지만, 그때 당시에는 자리 하나가 어찌나 신경 쓰이던지. 지금 생각하면 어른들에게 꼬투리 잡힐까 무서운 마음이었던 것 같다. 나만 그렇게 생각했는지는 모르겠는데 뭐 하나 준비가 미흡하면 밉보일 것만 같은 공포가 있었던 것 같다. 우리 집 쪽 어른들 중에는 그다지 어른에 대한 격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없는 편이다. 그래서 우리 가족들은 모였을 때 설전을 많이 벌이는 편이다. 고등학생인 막내 사촌까지도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그 의견이 더 좋은 것이면 언제든 그 의견이 채택된다. 이모 쪽도, 고모 쪽도.


그런데 남자친구 부모님과 우리 엄마가 10살이 넘게 나이 차이가 있기도 하고, 연애 시절 겪던 몇 가지 에피소드와 남자친구 이야기에 따르면 시부모님은 어른들에 대한 격식을 굉장히 중요히 여기는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혹여나 어른들이 생각하는 예의에 어긋나는 것이 있을까 두려웠다. 나에게 시가는 이전에는 접할 수 없었던 새로운 관계였고, 어디서 어디까지 나에게 허용된 자유가 있는지 전혀 가늠할 수 없었다.



"사돈은 손님들 못 모셔서 서운하지 않으세요?"


아니나 다를까 내심 서운하셨던 주제를 엄마에게 물어보셨다. 약간 흠칫하며 미소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엄마가 말했다.


"애들 결혼식인데 제 손님은 중요하지 않죠. 애들이 원하는 것을 해주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강력하게 우리 편을 들어주는 엄마가 있어서 든든한 순간이었다. 내심 야리야리한 우리 엄마가 상견례에서 잘 이야기를 할까 했는데 우리 편을 들어주면서 요즘 결혼식에 대해 이야기하는 엄마를 보니 그렇게 감사할 수 없었다.


그 외에도 참 불편한 자리였던 상견례였다. 우리 가족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대화방식이 여기서 웃어야 할지, 같이 안타까워해야 할지, 두 사람의 관계가 정말 괜찮은 것인지 좌불안석하게 만들었다. 앞으로 나의 가족이 될 분들과 대화하는 방식부터 익숙해져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이것은 내가 그분들의 과거와 현재를 잘 모르기 때문에 어려운 점이었다. 그리고 일적으로 만난 어른이 아닌 '시가'사람들이라는 관계에 대한 정의가 되어 있지 않아서 무척이나 곤란했다. 내가 여기서 어떤 말을 해도 되는지 조심스러웠다. 나는 관계에 상당히 민감한 편이어서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운 이 관계가 너무 어렵게 느껴졌다. 우리 가족처럼 가깝지도 않지만 남처럼 멀지도 않고, 그러나 오히려 때로는 남이 더 편한 이 관계가 주는 긴장감이 썩 적응하기 쉬운 것은 아니었다.


좋은 말이 오가고 분위기도 나름 좋았지만 나는 상견례를 하면서 내가 진짜 결혼을 하는구나 하고 눈 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꼈다. 내가 이 관계를 어떻게 정의하고 받아들여야 할까.



난 관계가 확고한 편이다.


나랑 맞지 않다고 생각하면 더 이상 관계를 맺지 않는다. 나와 맞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도 나는 피곤함을 많이 느끼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그래 왔고 회사 사람들과도 그 관계를 유지하기는 굉장히 수월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다가온 이 관계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나랑 안 맞으면 어떡하지? 내가 실수하면 어떡하지? 소심쟁이 내 속이 이 날부터 매일매일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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