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님들 만세-
요즘엔 내 핸드폰 너머의 고객사 아저씨들이 새삼 대단해 보인다.
보통 대기업 부장급이면 나이가 최소한 40대 중후반은 되었을 테고, 직장 생활을 느지막이 28살쯤 시작했다고 쳐도 어림잡아 20년 가까이 일하고 일한 아저씨들이 대부분이다. 조금씩 다른 일을 맡더라도 결국엔 비슷비슷한 일들을 하루 단위로, 한주 단위로 또는 한 달 단위로 이리저리 치이면서 까이면서 그 시간을 버텨온 것이다. 그 원동력이 가족이든, 본인의 인정 욕구든, 아니면 금전적인 이유든 간에 그 긴 시간을 견뎌내다니 꼰대 아저씨들 만세.
그들에 비하면 나는 이제 고작 10년이 조금 넘게 회사 생활을 해왔을 뿐이고, 한 조직에서 일하면서 나름 이런저런 기회를 잘 타고 상대적으로 다양한 곳에서 다른 업무를 일을 해왔음에도, 몇 번의 고비를 지내고 지금은 3%정도의 배터리가 남은 핸드폰의 상태가 되어버렸다. 아침마다 출근한 사무실에 그냥 한 시간, 하루 이렇게 버티고 있는 것 같다. 일하는 사람이나 회사가 싫은 게 아니라 최근 1-2년 동안 불타던 열정이 스르륵 사그라지고,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이것저것 찾아서 만들어보고 다른 사람들과 나누던 나의 모습을 잃어버린 채로 그냥 사무실에서의 할 일만 해나가면서 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리는 내가 싫어졌다.
이럴 때 무엇을 해야 하느냐,
첫 번째로 할 일은 통장 잔고를 확인하는 일이다. 지금까지 회사 생활을 (나름) 성실하게 짧지 않은 기간 해왔으니, 그리고 버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은 아마도 당분간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처음에 내 맘이 끌렸던 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를 확인해 보는 것이다. 최소 일 년, 혹은 다만 몇 달이라도 금전적으로 버틸 수... (아 이것도 또 다른 버팀이구나...) 있을지 계산해 본다.
두 번째는 퇴직금을 계산해 본다. 결국에는 퇴직금을 합한 전체 통장 잔고, 혹은 마통을 포함하여 끌어모을 수 있는 돈을 계산해 보고 사업을 할지, 투자를 할지, 아니면 그냥 일정 기간 동안 휴식을 취한 후에 다시 일터로 나아갈지를 계획을 세워보는 것이다. 넘버 원/투는 무조건 현실 파악이다.
그럼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세 번째,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주욱 써 내려가는 것이다. 보통 일을 10년 이상 한 사람들은 그냥 집에서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가만히 쉬고 싶다는 것도 아마 세밀하게 들어가다 보면, 여행을 가고 싶다던가, 뭔가를 배우고 싶다던가 운동을 하고 싶다거나 뭔가 내재되어 있는 지금의 매일과는 다른 니즈가 있다. 그 니즈에 대한 리스트를 만들어 보는 것이다. 실제로 생활에 도움이 되는 내용일 수도 있고 (예를 들면, 본격적인 투자를 시작해 보고 싶다거나), 아니면 그냥 나의 정신적 안정을 위한 것이나 (악기를 다루는 법이나, 가드닝을 배우러 간다던가 혹은 그냥 수목원을 간다든지 여행을 간다든지) 신체적 발전을 위한 것일 수도 있다.
네 번째는 앞서 했던 #3 리스트 만들기와 #2 가용한 자산을 가로로 놓고 현실 가능성에 대해서 평가해 보는 것이다. 예를 들면 직장 생활 대신에 전업투자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무엇을 더 해야 할지 그리고 그 무엇을 위해 얼마를 지불해야 할지 생활비 이외에 모든 예산을 계산하여 가능한 한 디테일한 내용을 적어보고 가장 하고 싶은 일을 Top 3 정도로 추려본다. 그리고 그 일들을 기준으로 나의 하루를 상상해 본다. 너무 자연스럽게 잘 그려지는가?
마지막, 다섯 번째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내가 정말 쉬고 싶은 것인지 물어보는 것이다. 아니면 단순한 생활과 커리어에 자극제나 혹은 또 다른 기회가 단순히 필요한 것은 아닌가 정말 차분하게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여러 번의 자문자답 이후에도 같은 대답이 나오고 더 이상의 미련이 없다면 이젠 당신의 매니저를 만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