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없이 자원봉사 활동해보려고 떠난 길바닥 여행기 (9)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었다는 그곳, 보드가야를 구경할 때였다.
하루 종일 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니 금방 노을이 지고 있었다. 호주머니에 100루피(한화 약 1700원) 밖에 남지 않았던 터라 간단히 저녁을 때울 요량으로 길거리 음식을 찾아다녔다. 그러다 길가에서 자지러질 정도로 까르르 거리며 놀고 있는 한 아이들과 마주쳤다. 도대체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궁금했다. 학교 다닐 때에도 친구들이 재밌는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꼭 같이 들어야만 직성이 풀리던 나였다. 결국 비상식량으로 남겨둔 비스킷을 풀며 애들한테로 가보니 우리나라로 치면 술래잡기 비슷한 걸 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멀리 도망가지도 않고 잡히면서도 까르르, 잡으면서도 까르르 반복하는 중이었다. 나도 같이 한 판을 막 끝냈을 즈음, 저 멀리서 두 명의 어린 수도승들이 다가왔다.
그리고는 나를 보자마자 물었다.
“안녕하세요! 외국사람이시네요! 근처에 우리가 다니는 학교가 있는데 구경 오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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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를 받아서 고맙긴 했지만, 사실 살짝 두려웠다. 학교를 소개하고 싶다 했지만, 오늘은 학교가 쉬는 일요일이었다. 근데 왠지 모르게 따라 가보고 싶었다. 평소에 공포영화를 볼 때마다 '아 저기를 도대체 왜 들어가는 거야? 저걸 왜 따라가서 이 난리야?'라며 온갖 역정을 다 내는 나지만, 실제 그 순간을 마주하니 두려움보다는 막연한 호기심에 나도 모르게 이끌려 갔다. 한 가지 위안이 됐던 게 혹시 돈을 빼앗긴다 하더라도, 끽해야 나에겐 저녁식사 값 100루피가 전부라는 사실이었다.
“그래, 한번 가보자. 어디야?”
아이들에게 이끌려 도착한 곳은 정규 학교가 아니라 ‘고아원’이었다. 보드가야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아이들을 데려와 교육시키는 곳이었다. 문을 들어서니 보육 선생님인 ‘나쿨데우 다스’씨가 느닷없이 들이닥친 우리를 반갑게 맞았다.-
“잘 오셨어요. 일요일이라 애들이 다 놀고 있어서 보여드릴 게 없네요.”
고아원에는 아이들과 선생님 부부가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었다. 한 건물 안에 그렇게 많은 아이들이 다닥다닥 모여 살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래도 손님이랍시고 아이들은 여태껏 배운 영어, 노래, 춤 등을 자랑이라도 하듯 서로 번갈아가며 뽐냈다. 한 참을 구경하다 선생님에게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됐어요?”
그러자 선생님이 머뭇거리다 대답하셨다.
“음, 굉장히 사소한 이유일 수 있어요. 거리에 너무 많은 어린아이들이 구걸하고 있었죠. 이대로 두면 다 자라서도 거리에서 구걸하며 살게 뻔했어요. 그래서 그냥 제가 몇몇 아이들을 데려다가 학교를 만들고 교육을 시키기 시작했어요. 그 아이들이 공부를 통해 직업을 얻고 좋은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요.”
믿기지가 않아 반신반의하며 다시 물었다.
“그래도 이렇게 많은 아이들을 돌보기 쉽지 않았을 텐데요?”
“물론 쉽지 않은 일이었어요. 아이들 수가 차츰 늘기 시작했죠. 그런데 아이들이 늘어갈수록 저도 이 일이 점점 좋았어요. 가끔은 보드가야로 온 여행자들이 선생님이 되어 아이들에게 영어나 스페인어를 가르쳐주기도 해서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혼자 이 일을 꾸려온 선생님의 고충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러나 정작 선생님은 도와주는 많은 분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자신을 낮추고 계셨다.
한참을 이야기 나누다 한 가지 질문을 더 던졌다.
“그럼 지금까지 운영해오시면서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이었어요?”
“아무래도 재정적인 문제 때문에 힘들지요. 아이들을 먹일 쌀도 부족하고, 옷이나 신발, 학용품 등도 많이 부족하긴 해요. 게다가 이 건물의 임대료도 제 돈으로 내야 하고요. 재정적으로 많이 힘들 때 안타깝죠. 그래도 다행인 게 제 뜻을 이해해주시고 기부해주는 많은 분들 덕택에 힘을 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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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원 문을 나서면서 가지고 있던 100루피를 기부하고 나왔다. 들어갈 때는 참 가벼웠던 100루피가, 나올 때에는 한없이 무겁기만 했다. 적은 돈이라 계속 미안해했지만, 선생님께서는 우리가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며 정말 고맙다는 말을 해주셨다. 아이들에게는 100루피보다, 사람들의 관심이 더 귀하다고 덧붙이며.
나 역시도 100루피로 가장 배부른 저녁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