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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ar Jade Jan 20. 2020

'죽음을 기다리는 집'의 죠셉 할아버지

원 없이 자원봉사 활동해보려고 떠난 길바닥 여행기 (10)

인도 동부의 도시 ‘콜카타’를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이 있다면 ‘카오스’로 불리지 않을까 싶다.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길가다가 사람에 치이기 다반사고 그러다 보니 교통체증도 말도 못 한다. 게다가 웬만한 숙소에는 빈대가 기본 옵션으로 들어가 있다고 보면 된다. 괜히 내가 카오스라 부르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이 ‘카오스’ 속으로 굳이 들어온 이유는 바로 ‘마더 테레사 하우스’때문이었다. 마더 테레사 수녀님이 평생을 바쳐 봉사하던 곳인데, 세계 곳곳의 젊은이들이 봉사활동을 하러 모이는 자연봉사활동의 성지이기도 하다. 콜카타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풀고 마터 테레사 하우스로 향했다. 다짜고짜 간다고 아무나 봉사활동을 하는 게 아니라, 면접을 보고 적절한 봉사 장소를 배정받아야 했다. 마더 테레사 하우스에는 소속 기관들마다 성격이 달라서 면접을 볼 때 원하는 곳을 먼저 지원을 하지만 성향이 맞지 않다면 다른 곳으로 배정이 될 수도 있었다. 다행히 나는 희망했던 ‘깔리가트 : 니르말 리다이(죽음을 기다리는 집 혹은 순수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집)’라는 일종의 호스피스 기관에 배정받았고, 그곳에서의 잊지 못할 시간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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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6시 30분. 

전 세계에서 날라 온 각국의 봉사자들이 한 곳으로 모이는 시간. 

마더 테레사 하우스 산하의 여러 자원봉사 기관들은 각기 다른 장소에 흩어져 있지만 모든 봉사자들은 우선 새벽마다 본부로 모인다. 같은 곳을 향해 걸어가는 외국인들 틈에서 가끔 알 수 없는 소속감에 발걸음이 가벼워지기도 한다. 그렇게 다 같이 이곳에 모여 빵을 나눠 먹고 서로 대화도 나누다가 기도로 하루의 시작을 연 뒤, 각자의 배정받은 장소로 이동하는 식이다. 새벽마다 나눠주는 따뜻한 짜이 한잔과 빵, 바나나 한 개가 가난한 여행자인 나에게는 더 바랄 것 없는 풍성한 조식이었다. 다른 봉사자들과의 아침 수다나 수녀님들이 세심하게 봉사자들을 챙겨주는 것만으로도 이 곳으로 걸어올 충분한 이유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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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식사 후 봉사자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죽음을 기다리는 집’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또 다른 수녀님들이 우릴 반갑게 맞아 주셨다.  

“어머, 처음 보는 얼굴들이네요. 어서 와요!”

상냥한 미소의 수녀님은 의외로 카리스마 넘친 여장부였다. 터프한 매력의 수녀님 지시에 따라, 오전에는 내내 빨래를 하고 옥상에다 말리는 작업을 했다. 점심시간에는 보통 병동에 계시는 할아버지들의 식사와 약 수발을 거들었는데, 이 시간이 나는 가장 행복했다. 나를 유독 좋아해 주신 56세의 ‘죠셉’ 할아버지와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다른 할아버지들은 갑갑한 병실에서 나와 복도에서 식사를 하거나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도 할 수 있었지만, 죠셉 할아버지는 다리를 심하게 다쳐서 침대에 다리가 묶여있었다. 밖엘 나오질 못하는 할아버지가 안타까워 점심시간 때면 “할아버지 저 왔어요!”하며 할아버지 옆을 지켰다. 그리고 그런 나를 할아버지도 참 예뻐해 주셨다. 


죠셉 할아버지는 원래 뭄바이에 있는 국제회사에 근무했던 사무원이었다.

“결혼을 했는데, 아이들이 계속 없었어. 지금은 아내가 다른 지역에서 따로 살고 있다네.”


할아버지는 항상 거친 숨을 몰아쉬며 힘들게 한마디, 한 마디씩 이어 나갔다.

“빨리 몸이 나아서 회사도 가고 아내도 만나고 싶은데.”


마치 병든 할아버지의 몸 안엔 젊고 꿈 많은 청년 죠셉이 들어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런 할아버지가 죽음을 기다리는 집에서 다리가 묶인 채 쓸쓸히 병실에 누워 계시니, 그 모습이 정말 안타까웠다.

‘할아버지 꼭 다시 일어서실 수 있을 거예요.’

이런 위로의 말이라도 해드리고 싶었지만, 힘들게 숨을 몰아쉬며 누워 있는 할아버지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아서 차마 해드릴 수가 없었다. 대신 “할아버지, 많이 잡수시고 얼른 기운 차리셔야 돼요”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비록 언어가 완벽히 통하진 않았고 서로가 서로에게 하지 못한 말들이 참 많았지만, 할아버지는 마치 내 마음을 모두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서로의 손을 꼬옥 잡아주고 기도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죠셉 할아버지의 마음을 나도 어림잡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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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동안의 봉사활동 마지막 날.

죠셉 할아버지께선 내가 마지막이란 걸,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말없이 천장만 바라보고 계셨다. 작별인사를 건네고 나오려는데 할아버지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뚝 떨어졌다. 그러면서 힘겹게, 힘겹게 한마디 건네셨다.  

"Be happy, my friend. Thank you. Thank you"


그렇게 콜카타를 떠나면서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 구절이 떠올랐다. 

내게서 죠셉 할아버지가, 죠셉 할아버지에게서 내가 오갔듯, 

콜카타에서의 이 시간들은 절대 잊을 수 없을 만큼 실로 어마어마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 정현종, '방문객'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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