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희철 Dec 02. 2023

<폐경(閉經)/최희철>

55

<폐경(閉經)/최희철>

      

h에서 s교수가 철학 강연회를 한다고 해서, 후배 p와 같이 가기로 했는데 p가 바빠 취소되었다. 그날 오후 늦게 p에게서 연락이 왔다. 선배ch(내게는 후배)의 남편이 많이 아프다고, 셋이 만나 돼지국밥과 소주 한 병을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s교수의 나이가 올해 몇 이지? 그게 그러니까 우리가 학교 다닐 때 노처녀로 결혼 했으니까 육십은 안 돼도,  오십은 훨씬 넘었겠군. 문득 폐경(閉經)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동시에 폐광(閉鑛), 짙은 회색의 기다란 갱도가 나타났고, 바람이 빠져 나가듯 끈 하나가 툭 끊어지는 게 보인다. 천 길 낭떠러지, 뿌리 곁으로 낙하하는 아련한 생(生)피의 부스러기들. 자궁 속은 시공을 가로지르는 이명(耳鳴)현상으로 가득한데, 그게 그렇게 오래된 일이었을까, 연약한 곳에서 새살 돋아 오르는 소리가 들린다. ch의 남편도 그러하리라. 눈물 흘릴 사이도 없이, 그렇게 끈이 하나씩 끊어지고 또 연분홍 꽃대 하나 피워 올리는 게 삶이라면...

작가의 이전글 <얼음을 치는 이유/최희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