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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철 Dec 04. 2023

<평등한 냄새/최희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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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한 냄새/최희철>


치주염 앓는 이빨을 치료하는 이수근 선생 손에서 냄새가 났다. 그 냄새 명징하게 보여줄 순 없지만 노릇노릇하게 잘 익었을 지문(指紋) 냄새, 내 입은 지구이며 그의 손은 하늘, 하늘이 지구를 덮었다, 열었다 한다. 지구는 하늘이 좋다. 서로에게 기대며 즐기는 촉감, 지구와 하늘을 잇는 냄새의 중력장속, 진료행위는 말없는 교신의 연속이다. 내 입안이 그렇게 넓단 말인가. 선생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길이 생기고, 냄새의 덧칠 효과 때문인가, 잇몸을 찢는 치료에도 난 입을 더 크게 벌리며 아야 아야 낮은 신호를 보낼 뿐 오히려 바보처럼 스르르 잠이 온다. 바빠서 치과에 가지 못한 몇 달 후, 앓는 송곳니 잇몸을 눌러보니 하얀 액이 나오는데, 고름이다. 치간 칫솔로 걷어내 맡아 보니 냄새가 낯설지 않다. 그동안 나의 일부분이 되어 주었던 냄새의 결정물, 그럼 선생의 손에서 났던 냄새는 환자들이 겪던 통증의 일부였단 말인가. 아픔의 냄새는 광물(鑛物)보다 긴 시간, 선생의 손에 평등하게 남아 환자들을 안심시키는 역할을 한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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