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뭉치를 발견했다.사고 싶은 게 많다는 생각도 잠시, 누가 내 모습을 보고 있는 것 같은 의식에 휩싸여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맡길까 써버릴까. 아니다. 문화시민, 문화시민.. 아무래도 경찰서를 가야겠다. 발걸음은 경찰서로 향하지만 마음은 자꾸 집으로 향한다. 아, 쓰고 싶다. 당장 써버리고 싶다... 정직하게, (아니 어딘가 두려워) 갖다주는 나 자신이 기특하면서도 마음은 반으로 뚝 나뉘는 것 같다. 묘한 고통에 심장 모양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이 돈이면.. 이 돈이라면...
문득 억울하다. 아무도 본 사람은 없었는데. CCTV 마저 없던 시커먼 곳이었는데. 상상으로라도 소비를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니까 일 순위로, 90퍼센트의 돈을 서울 부동산 곳곳에 박아두고 수많은 계약서를 쥐어야겠다. 나는 독보적 인감의 주인이 될 것이다. 나머지 쌈짓돈으론 평생 마사지 회원권과 새 침대, 새 컴퓨터, 원목으로 된 새 책상을 사겠다. 묵은 빚도 쿨하게 가리고, 다만 아이에겐 고스란히 없는 척을 해야지. 이유는 너를 사랑하니까.
상상이 막 날갯짓을 하려는데 경찰서에 도착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 아직 후원처도 못정했는데. 내 것이 아닌 뭉치들을 건네고 나니 후련하고 섭했다. 잠시 행복의 나라 손잡이를 돌려본 것, 그것으로 된 걸까.
'글쓰기'는 돈뭉치에 당황하는 내 모습과 똑같다. 기상 몽롱 쓰기를 하며 자유로운 글쓰기를 배웠지만, 사실 그리 쉽게 고쳐지는 것이 어디 사람이겠나. 나는 어제도 어느 문장의 작은 토시 하나에 괴로워했다. 읽긴 쉬운지, 연결은 되는지, 주제는 선명한지, 맞춤법은 제정신인지 괴로워했다. 계란을 부치다가, 신발을 신다가, 잘 자보겠다고 튼 명상 유튜브 속에서, 그리고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다. 눈앞의 돈뭉치에 쫄아서 바로 경찰서로 갖다주는 것이나, 글쓰기 교실에서 자유를 갖다 줘도 못 먹는 바보거나 매한가지란 생각을 했다.
2023년 12월 27일 오티움 작가 살롱 줌 강의 시간에 쓴 프리 라이팅을 다듬는다. '돈뭉치를 발견했다.' 라는 주제로 8분간 자유롭게 쓰고 소감을 나눴다. 착한 사람들만 모였는지 써버린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모두 부자 되시길.
혹시 내가 진정 돈뭉치를 주웠다고 생각했다면, 잠시나마 함께 가슴이 콩닥거렸다면,오늘은 글뭉치를 주운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