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돌베개 Nov 25. 2019

참선을 방해하는 모기는 죽여도 될까?

모기를 죽여 악업을 말살하라

출가 3일째 밤잠도 설쳤다. 산사의 밤소리에 적응하는 데는 더 긴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더 힘들었지만 새벽 예불 때의 『금강경』 봉송은 가슴을 벅차게 했다. 『금강경』의 뜻을 아슬아슬 따라가며 읽는 것이 환희심을 일으켰다. 행자 스님들의 맑고 우렁찬 독경 소리는 더욱 큰 감동을 주었다. 세존이 수보리에게 “어의운하”(於意云何: 너의 생각은 어떠하냐?)라 물으면 수보리는 먼저 간략한 답을 한 뒤 다시 그 말을 부연 설명하는데, 그 설명의 말은 언제나 “하이고”(何以故: 그 까닭이 무엇인고 하니)로 시작했다. 단락마다 반복되는 ‘하이고’, ‘하이고’는 경쾌한 리듬을 만들었지만 ‘아이고’, ‘아이고’ 애절한 곡소리로 들리기도 했다. 한문 불경의 뜻을 이해하지 못해 분신한 스님 생각이 났다.


 참선하고 설법을 듣느라 거의 하루 종일 앉아 있으니 두 다리는 물론 팔과 가슴의 근육이 부어올라 뭉쳤다. 걸어 보면 아주 단단한 쇳덩이 몇 개가 온 몸을 짓누르는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반가부좌를 틀면 첫날보다는 통증이 약했다. 눌리고 접치는 부분이 적절하게 꼴을 갖추었기 때문일 것이다. 화두 수행에서 “생소한 곳은 저절로 익숙해지고 익숙한 곳은 저절로 생소해지듯이”(生處自熟, 熟處自生: 『서장』書狀) 우리 몸도 그에 따라 길들여지고 익숙해지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시간이 흘러 어느 순간이 되면 통증이 다시 심해졌다. ‘이 통증은 내가 느끼는 것이 아니다.’ ‘이 통증을 느끼는 주인은 실체가 없다.’ ‘통증은 내 지각이 만들어 낸 것이고 내 지각은 내 것이 아니다.’ 나는 이렇게 암시하며 참고 참았다. 통증은 파도처럼 몰려와 극에 이르렀다가 잠시 약해지는 듯했다. 그러다가 더욱 강력해져서 육신을 찌르고 으깼다.


 그런데 그렇게 아픈 순간에도 졸음이 몰려왔다. 그것은 육신에서 일어나는 명백한 모순이었다. 잠시 무념의 경지에 들어갔다가 나올 때면 진정한 참선의 경지를 경험한 것인지, 극도의 통증으로 환상을 경험한 것인지 아니면 졸다가 깨어난 것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그동안 몇 번이나 지도 법사의 길쭉한 발이 지나가는 것을 발견하고 움찔 놀랐기에 졸지는 않았다고 스스로 변명했다.


 점심 공양 후 해우소를 청소하기 위해 갔다. 청소 도구는 빗자루 두 개와 마대 한 개 그리고 물뿌리개와 걸레 및 고무장갑 한 개가 고작이었다. 그것을 여자 도반들과 나눠 사용해야 하니 턱없이 모자랐다. 청소 도구를 잡은 도반들이 청소를 하는 동안 나머지는 우두커니 서 있었다. 모든 일에 적극적이던 내 옆 자리의 도반은 청소 때마다 고무장갑을 먼저 끼고 변기를 닦았다. 그 일이 가장 힘들고 더러운 것이라 판단한 듯했다. 그는 남들이 꺼리는 일을 몸소 하는 것이 최고의 보시임을 스스로 알고 실천했다. 그의 그런 행동은 여러 행사에 거듭 참가하여 봉사한 경험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난 것일 듯했다. 그때부터 그 도반이 달리 보였다.


 팔다리가 저려서 바닥을 쾅쾅 내려치곤 하던 맞은편 도반은 이제 졸음 때문에 더욱 힘들어했다. 휴식 시간이 되면 계곡으로 뛰어 내려가 세수를 하고 머리에 물을 뒤집어쓰며 고함을 질렀다. 그러고는 물을 뚝뚝 떨어뜨리고 묘한 웃음을 지으며 황급히 돌아왔다. 스카프를 목에 감았다 혼이 났던 도반은 한 끼를 굶은탓인지 힘이 빠져 있었다. 그 옆의 체구 작은 노 보살이 걱정된다는 듯 그녀를 힐끔힐끔 보았다. 몇 줄 건너의 젊은 도반은 여전히 용맹정진하고 있었다. 나는 그 도반의 정진을 위해 뭔가를 도와주고 싶었다. 투명한 뿔테 안경이 얼굴에 비해 지나치게 컸다. 안경은 콧잔등에 땀이 맺히자 계속 흘러내렸다. 그를 위해 그 큰 안경을 벗겨 주고 싶었다.


 휴식 시간에는 호기심이 많은 도반들이 많은 질문을 했는데 지도 법사들의 답변에는 거침이 없었다. ‘잘 모르겠다’라든가 ‘다시 한 번 더 생각해 볼게’라는 표현을 그분들은 거의 쓰지 않았다. 그분들의 높은 도의 경지와 박학에 감탄했다. 다른 한편으로 답변이 그렇게 재빨리 나온다는 것에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퇴계 선생이 말씀했던가. 선생이 제자로부터 질문을 받을 때 설사 그 질문이 보잘것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시간의 간격을 두었다가 답하라고. 질문이 떨어지자마자 답하는 ‘응성이대’(應聲而對)는 말하기 전 한 번 더 깊이 생각하기 어렵게 하며 제자가 안고 있는 고뇌에 대해 공경을 보내기 어려운 것이다. 설사 스님들이 온갖 진리를 꿰뚫어 보는 혜안을 갖추고 있다손 치더라도 그 대답이 지나치게 신속하고 단호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런 생각을 하다가 강의실에서의 나를 떠올렸다. “뭐든 질문하라.” 나는 언제나 이 말로써 수업을 시작했다. 나는 학생들의 어떤 질문에 대해서도 그럴듯하게 대답할 수 있음을 과시하여 그들의 기를 죽이려 한 것이 아닐까. 지적 균형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선생의 일방적 질문 강요와 그에 대한 거침없는 대답은 선생이 강의실의 권력자로 군림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었던가. 지적 불균형 상황에서 열등한 자를 향한 우월한 자의 발언은, 설사 그것이 가르침이라는 형식을 취하더라도 억압적 속성을 지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퇴계 선생이 강조한 ‘답변의 뜸들이기’는 억압이나 폭언을 피하기 위한 지극한 배려라 여겨진다.


 어느 수련생이 참선 중에 달려드는 모기를 그대로 두어야 하는지 아니면 죽여야 하는지 물었다. 지도 법사의 답변은 아주 단호했다. “모기는 죽여야 한다. 왜냐? 사람의 참선을 방해하는 업을 더 이상 짓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참선을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행위로 보고 그 행위를 방해하는 일은 가장 나쁜업을 짓는 것이라는 판단을 전제한 대답이었다. 나는 그런 전제와 논리가 그렇게 재빨리 명쾌하게 이루어지는 것에서 약간 놀랐다. 그런 발상이 종교의 이름으로 그에 동조하지 않는 집단을 응징하는 것을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얼마 전 우리 대학에서 열렸던 강연회에서 신앙의 폭력성을 신랄하게 비판한 현각 스님도 그 강연 방식에서는 억압의 틀을 보인 것은 일종의 아이러니였다. 스님은 질문자에게 질문을 극도로 압축하기를 요구했다. 스님은 몇 마디만 들으면 질문자의 의중을 꿰뚫어 본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질문자에게 즉각적 반응을 보여 주어 스스로 깨닫게 하려 했지만, 그 과정이 일방적이고 비약적이었다. 질문자는 스님의 말하기 전술에 압도당한 채 결국 고개를 끄덕이도록 이끌어졌다. 그러나 스님들의 ‘벽력같은 일갈’은 보통 사람에게는 폭언으로 들리기 십상이다. 물론 임제의 할(喝)이나 덕산의 몽둥이질이 지극한 자비심의 소산임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런데 모기를 죽여야 한다고 답변한 지도 법사는 다음 날 그것을 수정했다. 나는 주위가 소란해 그 말씀을 듣지 못했다. 스님이 그 말씀을 어떻게 수정했을까 지금도 궁금하다. 스님 스스로 자기 말씀을 수정한 것은 처음이었다.


 모기를 죽이라는 지도 법사의 대답이나 현각 스님의 강연 분위기를 되새겨 본다. 수행이나 지식 전수에서 우열 관계가 엄연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우위에 있는 분들의 말씀은 본의는 아니겠지만 듣는 사람에게는 억압의 틀로 작용할 수 있으며, 또 말씀의 내용까지도 은연중 과격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형식은 내용을 새로 만들지는 못하지만 변질시킬 수는 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생각이 한번 회오리를 일으키고 지나간 그날 오후의 참선에서는 몸이 훨씬 더 가벼워진 듯했고 집중도 잘되었다. 바닥에 부처님의 상이 나타나다가는 중절모자를 쓴 남자의 얼굴이 나타나기도 했다. 망상을 없애려고 눈의 초점을 흩트려 보았다. 그 상들이 희미해지다가 사라졌지만 얼마 뒤 다시 나타났다. 어느 순간 나는 심연으로 가라앉는 듯하다가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무거운 중력을 온몸으로 느끼며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것 같았다. 현기증에 정신을 잃을 뻔했는데 죽비 소리가 구해 주었다.

작가의 이전글 현봉 스님의 '반야심경' 해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