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돌베개 Nov 21. 2019

템플스테이 첫날 밤, 악몽을 꾼 사연

새벽 산사, 축원의 바다

밤 9시 30분부터 취침 준비를 시작했다. 10시면 불을 끈다. 나는 두 번째로 입방하여 산 쪽의 오른편 구석에 가방을 놓아두었다. 그 구석 자리를 원하는 사람이 또 있었던가 보다. 세수를 하고 돌아오니 내 가방 앞에 다른 가방 두 개가 놓여 있었다. 자리다툼은 말아야지 하다가 나는 낯선 곳에서 잠을 잘 이루지 못하니 그 자리를 양보하지 않기로 했다. 요와 이불을 꺼내 폈다. 얼마 뒤 가방의 주인들이 와서 자기 가방들을 가져갔다. 요를 반으로 접어 깔고 나란히 누우니 군대 내무반 취침 대형이 되었다.


 소등이 되자 금방 고요해졌다. 5분이나 지났을까.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옆의 도반이 자기 가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세면도구를 찾고 있었다. 그는 그 뒤로도 꼭 다른 사람들이 모두 잠자리에 든 뒤에야 혼자 살금살금 세면장으로 가서 씻고 왔다. 나는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30분쯤 걸리는 것 같았다. 그는 여유 있는 세면을 위해 기꺼이 30분의 수면 시간을 줄이기로 결심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와 함께 수면 시간을 잘라내야 하는 다른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아차리지는 못했다.


 그가 돌아온 뒤 애써 잠을 청했지만 허사였다. 여기저기서 코 고는 소리가 진동했다. 그 소리가 의식되고 난 뒤부터 온갖 소리들이 경쟁하듯 귓가를 울렸다. 이 가는 소리, 문고리 흔들리는 소리, 풍경 소리, 비 듣는 소리, 시냇물 소리, 쓰르라미 소리, 살쾡이 소리…… 깊은 밤 산사의 소리는 그치지 않았다. 졸음이 오는 듯했는데 아르르르, 아르르르, 이름 모를 새의 울음소리가 창호지를 떨게 했다. 새는 대지전 처마 밑을 아슬아슬 비껴 날아가는 듯했다. 가수 상태에 빠진 듯하다가 이상한 감촉이 느껴져 깨어났다. 바로 옆 사람의 손과 발이 내 몸통을 짓누르고 있었다.나는 악! 비명을 질렀다. 소리가 커서 나도 놀랐다. 가슴을 진정하니 눌러 두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러니까 벌써 20년이 지난 일이다. 논산훈련소 훈련을 마친 나는 자대로 배치되었다. 더플백을 내무반 침상 끝에 놓고 부동자세로 앉아 긴장하고 있었다. 머리가 길어 곧 뒤로 넘어갈 듯한 고참 병장이 다가왔다. 병장은 대학을 휴학하고 입대해 3년을 보냈으니 24살이 되었을 것이고 나는 석사 학위를 받고 막 입대했으니 27살이었다. 내 동생과 같은 나이였던 그는 측은한 듯 이등병인 나를 내려다보고 군용 건빵 한 봉지를 건네주었다. 그리고 말했다.


 “오늘 밤 네 자리는 내 옆이다.”


 나는 그 말을 단순하게 이해했다. 취침 소등이 시작되자 나는 병장 옆에 뉘어졌다. 병장은 어느새 잠들은 듯했는데 갑자기 내 쪽으로 돌아누웠다. 그리고 내 몸의 곳곳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기나긴 시간이었다. 나는 몸과 혼을 유린당했다. 어떤 저항도 할 수 없었다.


 산사의 선방에서 그 악몽이 되살아나다니. 바람이 세차게 부는 듯하더니 나뭇가지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어디선가 신음 소리도 들렸다. 눈을 떠도 감고 싶은 충동이 안 생기고 눈을 감아도 뜨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지 않았다. 창호지가 코발트으로 변해 갔다. 새벽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제 잠들면 일어나기가 더욱 어려울 것이다. 그래도 눈을 감았다. 바람 소리가 더 거세지더니 비 듣는 소리가 나고 시냇물 소리가 우렁찼다. 다양한 소리들은 지금까지 내가 겪어 온 온갖 슬픈 일들을 생각나게 했다. 부끄러운 장면들이 나타나 차례로 이어지기도 하고 중첩되기도 했다. 우웅 우웅, 고라니인 듯 이리인 듯 숲속에도 잠 못 이룬 짐승들이 있었다. 그들에게 내면이나 자의식이 없다는 것은 인간들의 편견이나 착각이겠지. 무슨 고민이 있어 저렇게 울어댈까. 아니 짐승들에게는 자의식이 없을 것이다. 짐승들은 구름 모양을 보고도 울부짖는다 했으니 먹구름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이렇게 밤의 소리는 낮의 소리보다 훨씬 다양하고 심각했다. 그것은 밤의 시간이 활동의 정지가 아니라 생성을 위한 준비의 시간임을 은근히 알려 주었다. 한순간 뚜벅뚜벅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그 순간이 오고야 말았다. 일어날 수 있을까. 일어나서 나를 지탱할 수 있을까. 불이 환하게 켜졌다. 여기저기 신음 소리가 들렸다. 일어났다 고꾸라지는 도반도 있었다. 2시 50분. 나는 겨우 몸을 가누며 옷을 입었다. 그리고 천천히 방문을 나섰다. 새벽바람이 스쳐 갔다. 과연 먹구름이 빠른 속도로 몰려가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것 같았다.


 대웅전 앞마당으로 나가니 도량석(道場釋: 새벽 예불 전에 도량을 청정하게 하기 위하여 행하는 사찰의 의식) 도는 스님이 목탁을 두드리며 걸어가고 있었다.


 사사바바바 수다살바 달마 사바바바 수도함


 정삼업진언(淨三業眞言: 삼업을 깨끗이 하는 진언)을 염하고 있었다. 이산 선사 발원문은 더욱 간절하게 들렸다. 


 보리 마음 모두 내어 윤회고를 벗어나되

 화탕지옥 끓는 물은 감로수로 변해지고

 검수도산 날 선 칼날 연꽃으로 화하여서

 고통받던 저 중생들 극락세계 왕생하며

 나는 새와 기는 짐승 원수 맺고 빚진 이들

 갖은 고통 벗어나서 좋은 복락 누려지이다


 장삼 자락 휘날리며 스님은 멀어져 갔다. 그가 한 발 내디딜 때마다 발이 땅 밑으로 빠져드는 듯 보였다. 발목까지 빠지는 어두운 설원 위를 걷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설원에 새 길을 내기보다는 앞서간 스님이 만들어 놓은 길을 따르기로 했다. 스님의 발자국에 내 발을 내려놓았다. 대웅전 안에서 당 당 당, 가녀린 종소리가 들려왔다.


 이 종소리 울려 번뇌를 끊어라

 지혜가 자라나 슬기를 거두리

 지옥을 떠나고 삼계를 벗어나리

 원하던 부처 되어 뭇 삶을 건지라


 달빛과 별빛이 쏟아지듯 축원의 말씀이 퍼지고 있었다. 새벽 산사는 축원의 바다였다. 법고의 두터운 소리가 한 꺼풀 대지를 덮어 주더니 깊이와 넓이를 형언키 어려운 범종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소리는 지옥 중생을 구원하기 위해 지옥으로 날아가기 전에 먼저 내 속으로 들어왔다. 내 머리에서 발길까지, 내 몸 구석구석까지 흔들며, 찌르며, 어루만져 주었다. 시들어 가던 내 육신에 힘이 돋기 시작하고 웅크려 있던 혼은 기지개를 폈다. 나는 그 생육의 은혜를 느끼며 부르르 떨었다. 스물여덟 번을 떨었다.


 대웅전 법당의 사방 문으로 사람들이 들어왔다. 가운데 문으로 스님들이 들어오고 양 옆으로 수련생들이, 뒷문으로 행자승과 자원봉사자들이 들어왔다. 어느새 법당이 가득 찼다. 종고루의 운판 소리를 받아 법당의 운고와 경쇠가 울렸다. 그리고 예불이 시작되었다.


 아금청정수 변위감로다 봉헌삼보전 원수애납수

 원수애납수 원수자비애납수

 我今淸淨水 變爲甘露茶 奉獻三寶殿 願垂哀納受

 願垂哀納受 願垂慈悲哀納受


 예불문의 간절한 봉송이다. 이산 선사 발원문을 독송(讀誦)하는 젊은 스님의 목소리가 간절했다. 『반야심경』 합송은 박진감 있으면서도 그윽했다. 『천수경』을 염하는 행자승들의 목소리가 굳세고 웅장했다. 사람의 목소리도 새벽 산사에서 울려 퍼지던 나무와 쇠, 가죽의 소리 못지않게 감동을 준다. 황토색 법복을 입은 행자승 사이에 아직 머리도 깎지 않고 평복을 입은 행자가 있었다. 그는 갓 출가한 듯했다. 그도 나처럼 잠을 설쳤을 것이다.


 나는 귀로 법당 가득한 염불 소리를 들으며 눈으로는 『금강경』 구절들의 뜻을 새기며 읽어 갔다. 새벽 산사의 마당은 축원의 말씀으로 가득 찼고 예불이 이루어지는 법당은 고백과 참회와 절하기로 분주했다. 마침내 예불을 마무리하는 입정(入定) 정근(精勤)이 시작되었다. 반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으니 지금 이곳에 내가 있다는 사실이 꿈결인 듯했다.


 잠시 뒤 대웅전 뒤의 담과 그 위의 집이 떠올랐다. 대웅전보다 더 높은 곳에 모셔진 그 집에는 누가 계실까? 대웅전 뒷문을 출입하는 행자승들은 대웅전으로 들어오기 전에 왜 그 담 쪽을 향해 절을 하는가? 절에서 석가불이나 연등불보다 높으신 분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이상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다.


 예불을 끝내고 문을 나섰다. 구름 사이로 음력 열이렛날의 달이 나타났다. 내 생일이 열이렛날이니 우리 어머니가 나를 낳고 바라보신 달도 저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이지러지기 시작하는 둥근 달이었다. 달은 막 완전한 원의 굴레를 벗어 내고 스러지면서 밝디 밝은 빛을 내려 주고 있었다. 열이렛날의 달은 완전하면서도 그 완전함에 집착하지 않는 아름다움을 보여 주었다. 그래서 더 맑고 밝았다. 성성적적(惺惺寂寂)하고 적적성성한 것이란 이런 모습을 말하는 것일까. 깨달은 마음의 고요함을 열이렛날 새벽달은 보여 주고 있었다.


 먹구름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조계산 봉우리 쪽에 새하얀 조각 구름이 걸렸다. 우러러보면 시린 심연처럼 맑은 하늘, 굽어보면 달빛까지도 어둠 속에 고요히 담아 주는 두터운 땅. 밤새 울부짖던 숲속 짐승들도 법고 소리에 평정을 되찾고 귀뚜라미들은 지장전 뒤뜰에서 조용히 가을 소리를 연습할 것이다. 개미들은 여전히 법당 마루를 기어 다니며 절을 하고 있겠지. 그 사이로 두손 모으고 조용히 여기저기로 나아가는 사람들. 어깨를 스쳐도 그냥 고개를 더 숙일 뿐이다.


 다시 하늘을 본다. 먼 하늘에 별 몇 개가 총총하다. 하늘이 맑듯 내 머리도 맑아졌다. 고무신에 느껴지는 땅의 감촉이 포근하다. 한 걸음 한 걸음이 그윽하다. 나는 극락을 떠올리고 있었다. 내가 이런 성성적적한 곳에 몸을 담을 수 있다니. 아, 나는 지금 죽어도 좋다. 속으로 되뇌었다. 이 맑고 밝은 세상의 소생을 지켜보았고, 세상 만물이 가없이 축복받는 소리를 듣고 그 모습을 보았으니 더 이상 바랄 것은 없다. 그러나 나는 곧 죽고 싶다는 외침이 진정에서 우러난 것이 아니었음을 시인했다. 죽고 싶다는 외침은 그 맑고 밝은 곳에서 더 오래 살고 싶다는 소망을 혼자만의 것으로 간직하려 했을 때 나도 모르게 만들어진 반어였다.


 산사의 새벽은 그렇게 위대했다. 하늘과 땅과 뭇 중생들이 다시 태어나는 크나큰 일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첫날밤의 혼돈과 고통은 이 천지만물의 소생과 부활을 위한 몸부림이었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참선 수행을 방해하는 번뇌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