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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베개 Nov 21. 2019

'이 뭐꼬?' 하는게 참선 방법이라고?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사자루 안 내 자리는 뒤쪽 창가였다. 시냇물 소리가 대단했다. 간간이 내린 비는 시냇물 소리를 더 우렁차게 만들었다. 물소리는 엄청난 소음으로 들리다가도 위대한 메시지를 전하는 법음으로도 들렸다. 물소리가 스님들의 말씀과 경쟁하는 듯하다가 어느덧 그 말씀에 동화되어 말씀의 속뜻을 더 오묘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기도 했다.


 방장이신 보성 스님이 개당법문(開堂法門)을 내려 주시고, 회주 법흥 스님이 『법구경』을, 유나 현묵 스님이 참선법을, 주지 현봉 스님이 『반야심경』을, 성철 스님 상좌였던 원순 스님이 『진심직설』을, 강주 지운 스님이 부처님의 생애와 사상을 강의했다.


 앞자리에 앉은 도반들이 참 부러웠다. 나는 스님들 말씀의 뜻을 깊이 이해하려는 데보다는 물소리에 섞인 그 말씀을 골라서 해독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보성 스님은 송광사의 가장 큰 어른으로서 위엄을 보이셨다.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논리 정연하게 이야기를 이끌었다. 중간 중간 조는 수련생이 눈에 띄면 지도 법사가 그를 흔들어 깨울때까지 손가락으로 정확하게 겨누었다.


 보성 스님은 불교의 수행이 ‘믿음으로 시작해서 믿음으로 끝난다’며 신심(信心)을 강조했다. 믿음이란, 우리의 마음에 불성(佛性)이 갖추어져 있다는 믿음이고, 진실한 수행 정진을 통해서 우리도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이며, 수행 정진하여 부처가 되면 아무리 사용해도 다함이 없는 공덕이 갖추어진다는 것에 대한 믿음이다. 신에 대한 일방적 믿음과 의존을 강조하는 다른 종교의 믿음 개념과는 달랐다.


 유나 현묵 스님은 그윽하고 청아한 목소리로 참선의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참선은 우리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를 알기 위한 것이라 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존재하다가 보이는 세계로 모습을 나타냈지만 그 인연이 다하면 또다시 보이지 않는 세계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무명(無明) 업력에 의해 우리는 거듭 태어나지만, 그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영적 진화를 돕는 일 혹은 수행 정진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잘 사는 삶이며 윤회의 굴레를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이라 요약해 주었다.


 그리고 참선의 방법을 자상하게 가르쳐 주었다. 먼저 마음을 편하게 하고 허리를 곧게 편 뒤, 숨을 길게 마시고 잠깐 멈추었다가 내쉬며 ‘이 뭐꼬?’ 하라는 것이다. ‘이 뭐꼬?’를 비롯한 화두는 분별이나 망념으로 드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분법적 분별심을 내려 두고 생각과 말의 길을 완전히 끊어서 나와 화두가 하나가 되고 마침내 나와 화두까지 사라지게 해야 하는 것이다.


 참선 수행 동안 내내 인생의 본질과 천지만물의 운행 원리에 대한 나의 잡다한 지식과 스님들로부터 들은 법문의 내용이 뒤엉켜 내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나는 그것이 화두 참선의 참 방법이 아닌 줄 알면서도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서 차라리 수를 헤아리는 수식관(數息觀)이나 뜻을 알 수 없는 음운의 연속인 염불관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했다.


 스님은 어떤 칭찬이나 험담에도 개의치 않고 연꽃 같은 참나를 찾는다는 한 가지 마음으로 용맹정진하라고 수련생들을 따뜻하게 격려했다. 그윽한 목소리로 게송(偈頌)을 읊어 주었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널리 알려진 이 구절이 스님의 목소리에 실리며 오묘한 힘을 주었다. 스님은 이어서 참선으로 득도한 고승들의 일화와 깨달음의 시인 오도송(悟道頌)을 소개해 주었다. ‘이 뭐꼬?’를 8년 동안 참구(參究)하다 홀연 깨달은 회양 스님, 20년 동안 수행했지만 별 진전이 없다가 어느 날 밭에서 일을 하던 중 문득 깨달은 남전 스님, 56세 때 실수로 찻잔을 떨어뜨려 깨고는 크게 깨달은 허운 스님, 길 가다가 낮닭이 우는 소리를 듣고 깨달은 서산대사, 새벽 예불 종을 치다가 깨달은 만공 스님, 움막 토굴에서 1년 6개월 용맹정진 끝에 깨닫고는 벽을 부수고 나온 효봉 스님,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다가 홀연 의심이 사라지는 경지를 얻은 송담 스님 등의 일화였다.


 출가 직전 하혈을 시작하여 해우소를 들를 때마다 잔뜩 긴장하던 나는 화장실에서 득도했다는 송담 스님의 이야기에 귀가 쫑긋해졌다.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것이라 버려지는 똥을 받아주는 화장실에서 득도했다는 송담 스님의 이야기는 더러운 진흙탕에서 맑디맑은 연꽃이 피어난다는 불가적 상징보다 더 충격적인 감동을 주었다. 송담 스님의 오도송을 잊을 수 없다.


 누런 매화 핀 산정에 봄눈이 날리니

 찬 기러기 북쪽 하늘로 날아가누나

 어찌하여 10년 세월을 허비했던가

 달빛 아래 섬진강만이 유유히 흘러가도다


 그날 저녁 송광사 해우소에서 나도 놀라운 일을 겪었다. 볼 일을 끝내고 뒤를 닦았는데 화장지에는 황금빛 잔변만 묻었다. 참선을 시작하면서부터 오랜 시간 동안 앉은 자세로만 있어서 항문에 계속 큰 부담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하혈이 완전히 멈춘 것이다. 아! 나도 해우소에서 환희심을 경험했다. 화장실에서 누런 매화를 노래하신 송담 스님과 그 송담 스님을 소개해 주신 현묵 스님의 은혜가 이렇게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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