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며칠간 감기를 앓았다.
아이러니하게도 Covid사태로 인해 출근을 못하게 되면서 오랜만에 이렇게 아무 걱정 없이 아플 수 있었던 것 같다.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렇게 앓을 만큼 앓을 수 있었던 건 아마 몇 해전 대상포진을 앓았던 적 이후로 처음이었다.
행여나 Covid -19에 감염이 된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있었지만 증세가 전혀 다른 단지 코감기에 몸살이 겹쳐서 나타난 증상이었다. 출근도 하지 않고 집에서 머물면서 동네 Gym에서 운동 두어 시간 하는 게 전부인데 뜬금없이 앓아눕게까지 된 건지 스스로도 의아했다.
힘없이 하루를 잔뜩 앓고 나니 조금 힘이 생겨 다음 날 정신을 차리고 문득 달력을 보니 어느새 7월이다. 남반구에 위치한 이곳은 지금 한창 겨울을 지나고 있는 중이었다. 시기적으로도 그렇고 개인적으로도 차디찬 겨울을 지나고 있는 중이랄까.
Sydney는 현재 진정세에 접어들어 7월 부로 대다수의 규제가 완화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안심할 수 없는 게 이 도시에 비해 훨씬 보수적으로 움직이고 있던 Melbourne에서 우려하던 Second wave가 시작되었다. 어제부터 그 도시는 다시 Lock down 조치로 지역 봉쇄가 되었으며 앞으로 6주간 꼭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외부 출입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이에 발맞춰 NSW 주 총리는 이웃하고 있는 지역에서 발생한 현 사태가 이곳으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주 경계를 폐쇄하고 그 근처에 사는 지역 주민들에게도 지역 이동을 금지할 것을 요구하는 등 사력을 다하고 있는 모습이다. 호주 총리는 나라 경제회복을 위해 하루빨리 국경을 다시 개방하려고 노력해 왔는데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국경 개방의 계획은 또다시 무기한 연기된 셈이다.
지난밤 170여 명에 가까운 확진자 수를 보이며 사태가 심각해져 가는 Melbourne과는 다르게 이곳 Sydney는 여전히 진정된 모습이다. 해외에서 귀국한 사람들이 대다수인 확진자는 열명 남짓한 상황이고 모두들 귀국하자마자 각자 배정된 Hotel에서 2주간의 격리생활을 해야 하므로 나름 관리가 잘 이루어지고 있는 모양이다.
전부 문을 닫았던 유명 식당들도 다시금 영업을 재개한다고 광고가 나기 시작하고 내가 일하는 직장도 다음 달부터 다시 영업을 시작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직 4주가량 남았는데 그 사이 별다른 이상이 없는 한 나도 드디어 기다리던 일상으로 복귀하는 셈이다. 참으로 길었던 기다림이 드디어 끝이 보이고 있다.
한참 자신의 경력에 최선을 다하고 있어야 하는 시기의 나이에 자의가 아닌 타의로 그 일선에서 물러나 업무와 관련된 기술과 감각이 무뎌지는 순간을 스스로 느끼고 있는 와중에 여전히 최선을 다해 그 길을 걷고 있는 타인을 보며 추슬러야 하는 감정은 쉽지가 않았다. 이번 사태 초반에 겪었던 무기력감을 알아채고 극복하려 지금껏 애쓰고 있었는데 이제 보니 알게 모르게 스스로가 아무 쓸모없어졌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다. 나 자신의 심리를 돌아보며 명상을 하던 중 알게 된 건 내가 나 자신을 빈 의자에 스스로를 투영시키고 있다는 점이었다. 아닌 것 같았지만 이렇게 심리적으로 꽤나 많이 무너져 있었던 점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다 보니 글을 쓰는 것도 손에 잡히지가 않고 책을 집어 들어도 도무지 눈에 들어오지가 않았다. 이래서 사람은 스스로가 빛이 날 수 있는 자리에서 원하는 일을 해야 하는 게 중요하다고 어르신들이 누누이 강조했던 것 같다. 오히려 바쁜 일상 속에서 짬을 내어 낚시를 다니고 시간을 쪼개서 글을 쓰고, 이리저리 여행을 다녔던 시간이 더 값진 시간들이었다고 이제야 깨닫게 된다. 제한 없이 마냥 주어진 휴식은 그저 사람을 끌어내기 기만 하다는 사실도.
그래도 다행히 더 깊은 시궁창으로 빠져들어가기 전에 복귀 일정이 발표 났다는 점이다. 이 상황에서 하나 잘했던 선택이라면 언제든 업무에 복귀하더라도 이상이 없도록 체력적으로 준비를 꾸준히 해왔던 점이다. 다시금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 앞에서 고기를 굽고 비지땀을 흘려도 쓰러지지 않을 수 있도록 준비한다고 몇 달을 그렇게 내달렸는데 이렇게 쉽게 앓아눕게 될 줄이야...
며칠간 앓다 보니 도통 산만한 게 글도 쉽게 씌여지지 않는다. 내용은 이리저리 중심을 못 잡고 튀어 오르기만 하고... 그래도 언제부터 글을 쓰고 싶었는데 억지로라도 자리를 잡고 앉아서 되도 않는 글을 한 편이라도 완성시키려 애쓰고 있다.
정서적인 부분들도 이전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그동안 너무 육체적인 것에만 집중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몸은 저만치 달려가고 있는데 영혼이 속도를 맞추지 못하고 저만치 뒤처져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다. 내면의 질서를 다시금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하나 둘 이렇게 차근차근 일상은 돌아오고 있는 중이다.
다만 그것을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남은 과제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