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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나야 Mar 11. 2022

토종 한국인의 낯선 한국 적응기.

혼돈의 대한민국  1 부.

 “중국 신화 중에서 천지개벽 때에 살았었다고 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 개의 모습으로 긴 털이 나 있고 발톱이 없는 발은 곰과 닮았다. 눈이 있지만 보이지 않고 귀도 있지만 들리지 않는다. 언제나 자기 꼬리를 물고 빙빙 돌고 있을 뿐, 앞으로 나아가는 일은 없고 하늘을 보고서 웃는다. 덕망 있는 사람을 미워하며, 흉악한 사람에게 들러붙는 좋지 않은 성격도 있다. ‘혼돈(渾沌)’은 ‘혼돈(混沌)’과 상통하며 ‘영문을 모르는 상태’라는 의미인 것 같다.”

- 출처. 환상 동물 사전.


 2018년 마지막으로 한국에 들렀다 호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는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려 한국을 다시 찾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듬해 다시 되돌아올 거라는 생각에 큰 아쉬움도 없이 공항을 찾았더랬다. 하지만 그 이후 예상치 않았던 이직과 전 세계로 퍼져나간 전염병으로 호주 국경 폐쇄가 3년 가까운 시간 동안 이어지는 바람에 무기한 연기될 수밖에 없었던 모국 재 방문의 기회. 오랜 간절함으로 기다린 끝에 국경이 열리고 개인적인 일들이 겹치면서 계획했던 것보다 일정이 당겨지고 2 주가 채 안 되는 시간에 모든 준비를 끝마치고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게 되었다.

  4년 전 마지막 구입했던 비행기 왕복표 값에 비교하면 훨씬 비싼 가격이지만 그래도 최근  Covid-19 사태 이후에 안정을 되찾고 있는 시기인 덕에 예상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왕복 비행권을 구입했다. Singapore를 경유하는 비행으로 오후 7시 출발이라 그나마 빠듯하게 당일까지 준비를  끝마칠  수 있었다. 회사에서도 자리를 비워야 하는 일정이 Head Chef의 휴가 일정과 겹치는 바람에 곤란한 상황이었지만 워낙 급박한 사안인지라 흔쾌히 휴가를 허락해 주었다. 그래도 도의상 비행 출발시기를 토요일로 정하고 목요일까지 한 주 근무시간을 빼곡히 채워두고 금요일 하루, 고국 방문에 필요한 PCR test를 비롯해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고 갖가지 필요한 업무를 보았다. 10년 만에 처음으로 아내와 나 둘 다 집을 비워야 하는 경우라 최대한 모든 비용 절감을 위해 미리 연락을 해두어야 할 곳이 많았다.

 공항으로 출발해야 하는 시간 바로 직전까지 짐을 싸고 간신히 목욕재계를 한 뒤 필요한 서류들까지 챙기고 몇 번을 확인한 집을 나섰다. 이전까지는 아내와 내가 서로 교대로 한국에 다녀왔던 터라 서로가 공항까지 편의를 봐주었는데 이미 한국으로 떠난 아내 덕에 홀로 수하물 가방을 둘이나 달고 대중교통으로 공항까지 이동했다. 단 돈 $30을 아끼자고 공항 Pick up service를 포기하고 전철로 이동했는데 잦은 비로 기온이 예전 같지는 않아도 아직 Sydney는 여름인지라 곧장 땀이 흥건해졌다.

 넉넉히 두 시간 반 전쯤 무사히 공항에 도착하여 줄을 섰다. 국경을 열렸다고는 하지만 아직 해외여행에 국가별 제약이 풀리지 않은 곳이 많다 보니 여전히 업무 재개를 하지 않는 듯한 비어있는 창구들이 많이 보였다. 발권을 위한 직원들도 서너 명 밖에 되지 않는 데다 확인해야 할 서류들이 늘어나다 보니 소요되는 시간이 배로 늘어난 듯했다. 줄을 선지 한 시간 반이 지나는 동안 바로 내 앞에선 네 명의 승객이 직원에게 발권을 거절당하는 모습을 보자 필요한 서류 준비를 다 해두었음에도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대부분이 PCR test를 너무 일찍 받아서 유효기간이 넘어선 모양인 듯 싶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내 차례가 되어 직원의 안내를 받았는데 다행히 나는 위탁 수하물도 기내 수하물도 무사통과되어 항공권이 발급되었다.

얼마 되지 않은 승객 이었는데 1시간 넘게 걸린 발권…

 간단한 검사  공항 내부로 들어섰다. 영업을 재개한 면세점은 역시나 한산했고 세금 환급이나 면세점에 별다른 용무가 없는 나로서는 곧장 탑승 gate 이동했다. 오랜만에 탑승하는 비행기여서 그런지 새삼 처음인  마냥 가슴이 콩닥콩닥했다. 막상 비행기에 타고 보니 탑승객이 적어 그런지 일행이 없는  같은 사람들은 좌석 3개가 붙은  열에  명씩 자리가 배정되었다. Singapore Airline 비행기도 국제적인 명성답게 쾌적한 비행환경을 제공해 주어 내심 만족스러웠다.


Sydney 상공. 멀리 보이는 시내 모습.


이내 주어진 기내식을 먹고 나니 드디어 온몸에 긴장이 풀리고 그간 피로가 몰려와 기억을 잃고 곯아떨어졌고 중간 경우지 도착  시간  주어지는 야식 배급 소리에 잠이 깨어  주는 대로 꾸역꾸역 간식을 먹고 나니 어느새 Singapore. 환승 시간이 1시간으로 빠듯했기에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한국행 비행기 출발 구역을 확인하고 넓디넓은 Changi 공항을 잰걸음으로 달려 환승 비행기를 탑승하는 곳에 도착했다. 자정이 넘은 시간이라 어차피 영업 중인 면세점도  없었지만 유일한 관심사였던 TWG매장이 문을 닫아 아무 미련 없이 걸음을 옮겼다. 이전에는 없던 비행기 탑승  X-ray 검사를      드디어 대망의 한국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상대적으로 한국행 비행기에는 승객들이 많이 있었다. 아마도 양국   격리 조치 협약 덕분인 건지 여행객으로 짐작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현지 시간으로는 두시, 생체리듬 시간으로는 새벽 4시였던 터라 이미 몸은 노곤 노곤했고 비행기에 탑승하고 이륙하자마자 또다시 곯아떨어지고 말았다. 역시나 잠을 깨우는 건 식사를 건 항공 승무원들의 분주한 움직임이었고 허기를 느낄 새도 없이 제공되는 식사 덕에 지난 넉 달 동안 본의 아니게 1일 1식을 해오던 신체에 변화가 주어졌다.

 아득해지는 정신을 부여잡고 여명이 차오르는 기내에서 그리웠던 모국을 상공에서 내려다보았다. 비행기 날개 쪽 바로 위 좌석이 배정되는 바람에 지상이 확연하게 눈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안간힘을 써 분간해 보려 애를 쓰는 동안 어느새 비행기는 활주로에 안착했다. 기억나는 건 오직 호주 하늘과 달리 누렇게 희뿌옇게 보이던 하늘뿐이었다. 이전과는 또 다른 떨림이 온몸에 전해졌고 알지 못하는 온갖 감정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어리바리하게 수하물을 챙기고 기내를 나서 드디어 모국의 대기에 안기었다. 안면 Mask를 쓴 덕에 익숙한 내 입냄새 외에 달리 느껴지는 건 없었지만 기다란 통로를 지나 화살표를 따라 출국장으로 옮겨갔다.

 모퉁이를 돌아서니 앞서 내린 탑승객들이 입국절차에 필요한 검사를 받고 있는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그 순간 드디어 K-방역이라 일컬어지던 모국의 방역정책의 민낯을 확연하게 알 수 있었다. 대기 행렬에 합류하여 순번을 기다리던 그 순간까지가 마지막으로 여유롭던 순간이었다. 그 이후로는 감히 “혼돈”이라 할 수 있을법한 험난한 길이 예정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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