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대한민국 2부
“중국 신화 중에서 천지개벽 때에 살았었다고 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 개의 모습으로 긴 털이 나 있고 발톱이 없는 발은 곰과 닮았다. 눈이 있지만 보이지 않고 귀도 있지만 들리지 않는다. 언제나 자기 꼬리를 물고 빙빙 돌고 있을 뿐, 앞으로 나아가는 일은 없고 하늘을 보고서 웃는다. 덕망 있는 사람을 미워하며, 흉악한 사람에게 들러붙는 좋지 않은 성격도 있다. ‘혼돈(渾沌)’은 ‘혼돈(混沌)’과 상통하며 ‘영문을 모르는 상태’라는 의미인 것 같다.”
- 출처. 환상 동물사전.
Singapore를 출발한 여객기가 드디어 대한민국 영공에 들어선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인천 국제공항에 무사히 착륙했다. 한국의 하늘엔 누런색의 두꺼운 미세먼지인지 황사인지 모를 무언가가 가득했다. 누군가는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느껴지는 탁한 공기가 인상적이었다고 했지만 나는 사실 공기가 좋고 안 좋고의 느낌을 정확히 모르겠다. 한국의 공기나 호주의 그것이나 크게 다르게 느껴지지 않았다.
무사히 도착했다는 안내방송이 끝이 나고 탑승객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기내 수하물을 챙기고 비행기를 나설 준비를 하느라 분주했다. 비교적 앞자리에 자리하고 있었던 덕에 나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고 금세 비행기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공항 내부로 이어진 통로를 거쳐 모퉁이를 돌아서니 벌써 늘어서기 시작한 긴 줄이 한눈에 들어왔다. 입국 심사 이전 단계에서 거쳐야 하는 PCR test 결과 및 필요한 서류심사 대기행렬이었다. 불과 몇 주전에 입국한 사람들의 후기를 미리 보았을 땐 두세 시간이 걸려 겨우 빠져나왔다느니, 공항 내에서 PCR test를 다시 하느라 8시간 넘게 대기를 했다느니 하는 소식들이 있었어서 한 숨이 절로 나왔다. 심지어 내 뒤에 줄을 선 일행이 본인은 지난번 출장길에 6시간 걸려 공항 밖을 나갈 수 있었다는 사담을 우연히 듣게 되니 더욱 막막해졌다.
해외 입국자 자가격리 조치가 해제될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했고 이미 위치추적 app은 더 이상 의무사항이 아니었고 점차 규제가 완화되어가고 있는 시점이었기 때문이었을까? 걱정했던 것처럼 몇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단 30분도 걸리지 않았던 것 같다. 사전에 미리 준비해 두었던 서류들을 보여주자 아무런 제제 없이 곧장 다음 단계로 이동할 수 있었고 그 과정도 매끄럽게 진행되는 듯 보였다.
시설 격리와 자가격리로 나뉘어 있는 국내 규제에 따라 나는 자가격리를 신청하였고 이 과정에서 격리지 확인 및 동거인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나는 확인 연락처에 아내 번호를 적어두었다. 하지만 전화연결이 되지 않았고 이어 제시한 어머니 번호와도 연결이 되지 않았다.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다고 느껴지는 순간 나와 마주하고 있던 담당자는 격리 장소와 보증인이 확인되지 않았음에도 확인되었다고 해주겠다며 관련 서류에 서명을 해 주었다. 불과 하루 전 Sydney에서 출국할 때만 해도 깐깐한 규정 확인 절차를 거치며 애먹던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이건 뭐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제야 이 모든 심사를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의 눈에 극심한 권태와 피로감이 가득한 것이 보였다. 심사를 거쳐가며 뒤돌아 보니 몇몇 직원들은 대민지원을 나온 의무복무 중인 군인들이었고 다른 사람들의 정보를 확인하는 것보다 손에 쥐어진 휴대전화 속 무언가에 몰두하기에도 바빴다. 그다음 기억도 나지 않는 몇몇 단계를 거치면서도 과연 이런 불필요한 과정들을 왜 거쳐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이 들었고 최근 느슨해진 입국자 관리가 이렇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게 여차저차 해서 입국 심사대를 통과하고 위탁 수하물을 바로 찾아 입국장을 나왔다. 이후에도 지역별로, 이동 수단 별로 구역이 나눠진 곳으로 인도되어 아내가 도착할 때까지 꽤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입국절차에 몇 시간이 걸렸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비행 도착시간보다 훨씬 늦게 시간 계산을 하고 출발한 아내와 시간이 맞지 않아서 두 시간을 기다려 겨우 공항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 시간동안 지켜본 관리 직원들의 모습도 맥이 빠지는 행태 들이 많았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외국인들을 무성의하게 바깥으로 내보내는 모습이 심심치 않게 보였기 때문이다. 무언가 대처가 있거나 변화가 시급하다고 느껴지는 공항 내 입국 절차였다.
4년 만에 찾은 고국은 너무도 많이 바뀌어 있었다. 속도를 중요시하는 특성 덕분인지 낯 선 모습에 적잖이 당황하며 집으로 향하는 길에 해외 입국자는 당시만 해도 입국 후 만 24시간 안에 PCR test를 또 해야 한다는 조항이 생각나 바로 검사장으로 이동했다. 바뀐 정책 덕분에 입국 당일이었던 일요일에 검사를 하는 곳이 많지 않았고 겨우 집 근처 동작구 관할 검사장이 오후 1시부터 영업을 시작하는 정보를 알게 되어 20분 전이면 충분할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검사장에 도착했다. 예상과는 달리 이미 차량들은 길게 줄을 서 있었고 중간중간 끼어들기를 시도하는 차량들과의 신경전이 상당했다. 우리도 차분히 이어 줄을 서고 차례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한 40분쯤 지났을 까? 슬슬 한 두 명씩 뒤에 선 차량에서 사람들이 내리더니 지하도를 통과하는 과정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인도 위에 길게 늘어선 또 다른 줄에 합류하는 모습이 보였다. 당연히 Drive Through 검사장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뒤늦게 정보를 찾아보니 우리가 한 시간을 가까이 기다렸던 줄은 단지 주차장에 들어가려는 차량들이었던 것이다. 어이가 없고 황당하여 일단 다음 날 다시 혼자 검사장을 찾아가기로 하고 그 대열에서 이탈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4년 만에 만난 어머니는 그새 많이 늙어 있었다. 반가운 마음 반 안쓰러운 마음 반으로 어머니와 상봉을 하고 아내는 부랴부랴 전주로 길을 떠났다. 드디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해외 입국자 자가격리가 그렇게 시작되었다. 자가격리라지만 하루 한두 시간 내외로 외출이 가능하고 그 시간을 이용해 개인 용무를 볼 수 있었다. 이게 무슨 자가격리라는 건지…
어영부영 첫날이 그렇게 지나가고 다음 날 PCR test를 위해 관할 보건소를 찾았다. 어제의 경험을 되새기며 9시에 영업 시작이기에 서둘렀지만 아직은 이동이 서툴러 고작 2분 늦은 9시 2분에 도착한 순간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미 늘어선 줄은 건물을 돌고 돌아 긴 꼬리를 이루고 있었고 서둘러 그 대열에 합류하고 보니 이 줄은 겨우 번호표를 받는 줄이었다. 그리고 그 번호에 따라 예상 시간대에 맞춰 다시 검사장으로 돌아오거나 마냥 그곳에서 모든 대기인원들과 뒤엉켜 대기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번호표를 받기까지 한 시간을 기다렸고 10시가 넘어 겨우 600번대의 번호표를 건네받았다. 안내직원이 이 정도면 한시 이후에 와야 할 것 같다는 안내에 어이가 없어하며 당황하며 돌아섰던 기억이 난다.
호주에 살면서 그곳이 선진국이라고 느꼈던 적이 거의 없었다. 오히려 한국보다 낙후된 시설들이 태반이었고 사회 구조나 행정 절차들이 비효율적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이 훨씬 많았다. 하지만 단 하루하고 몇 시간 만에 혼돈의 대한민국을 경험하면서 내 생각보다 그곳의 구조도 나름 최선의 방법이었다는 사실을 여실히 느낄 수가 있었다.
어마어마한 인구밀도 및 규모의 대한민국에서 절정을 향해 달려가며 급속도로 번져가고 있는 Omicron의 위협 속에 대처하고 있는 이런 행정적인 절차들이 불합리하다고 생각되었다. 이미 익숙해진 이곳의 사람들과 달리 몇 년 만에 한국을 찾은 토종 한국인의 눈에도 낯설게만 느껴지는 이런 모습에 고개를 저으며 앞으로의 적응해가야 할 현실이 험난한 길이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4 년 만에 찾은 그리운 고국 대한민국의 첫인상은 ‘혼돈’ 그 자체인 것처럼 여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