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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미루이 Feb 05. 2024

나는 날개를 펼쳐 도약했다, 자유를 향해..

디샤 필리야_<교회 여자들의 은밀한 삶>을 읽고..







미국 흑인 여성들에게 '교회'란 어떤 의미일까?

대서양 건너 아프리카에서 끌려와 갖은 중노동과 학대, 차별을 겪은 그들에게 교회는 탈출구이자 안식처로 기능했을 것이다. 그들이 건설한 교회는 집단으로 모여 신께 구원을 갈구하는 곳이자, 흑인 특유의 리듬과 바이브로 목청껏 함께 노래 부르며 광란에 가까운 영적 체험을 겪는 공간이었으리라.




미국 플로리다 잭슨빌 태생의 흑인 여성 '디샤 필리야'는 어릴 적부터 삶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 교회라는 공간과 그 안에서 다채로운 인물들이 부딪는 대소사들을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할머니, 어머니, 형제자매들, 친구들과 지인들을 지면으로 불러내 그들의 적나라한 욕망과 속내를 드러낸다. 타인뿐만 아니라 자신의 숨기고 싶은 치부까지 대담하게 까발리며 첫 소설집을 대중과 문단에 깊이 각인시켰다.



디샤 필리야의 <교회 여자들의 은밀한 삶>. 표지에 그려진 목조 교회당의 솟을지붕이 회빛 하늘을 비죽 찌를 듯하다. 교회 안에서 성령 충만하고 정숙해 보이는 신도들이지만, 일상에서 비치는 그들은 여느 인간들처럼 세속적 욕망에 충실하고 현실 밑바닥에서 각자 몸부림치며 삶을 살아내고 있다. 2000년 밀레니엄 전야를 맞이하여 동성인 소꿉친구들이 서로의 육체를 탐하고 밀회를 즐기는 첫 단편은 종교적 믿음과 성적 욕구가 충돌하는 혼란스러운 순간을 그린다. 관계를 맺기 전 기도를 올리며 신께 자비와 용서를 구하는 '율라'의 모습. 이후 신성한 제단에 69 자세로 바친 제물들처럼.. 뒤엉켜 서로를 혀로 탐하는 장면이 도전적이면서 에로틱하다.



9편의 단편들 중, <복숭아 코블러>에 눈길이 머무르고 손이 간다. 올리비아는 매력적인 외모의 어머니와 단둘이 빈민가에 살고 있다. 어머니는 매주 월요일이면 찾아오는 '하느님', 유부남 목사를 위해 '복숭아 코블러'를 정성껏 준비한다. 스위트한 디저트를 매개로 삼아 펼쳐지는 은밀한 불륜과 종교적 타락의 현장이 노골적이면서 생생하다. 올리비아와 함께 흐느적대는 외창 커튼 사이로 다가가 그들의 정사를 엿보는 듯하다. 실로 잔인하게 어머니는 상간남에게는 디저트를 맛보게 하지만, 딸 올리비아에게는 조각 하나 주지 않으려 한다. 어려서부터 달콤함을 경험하면 갈증을 달래려 할 테고, 자라서는 누군가 흘린 그 부스러기나 탐하리라는 명분을 들먹이면서 말이다. 어머니 그 자신을 닮지 말라는 말도 덧붙인다. 올리비아는 어머니의 말에 굴하지 않고 쓰레기통에 버려진, 뭉개진 코블러를 한 주먹 움켜쥐어 맛을 본다. 이브가 경고를 뿌리치고 금지된 악과를 따먹는 것처럼, 바닥까지 내려가 터부시되는 금기를 깨부순 그녀는 천상의 맛에 취한다. 허나 올리비아는 달큼한 복숭아를 탐했지만, 그것에 도취되어 중독되고 싶지는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니 불운하게도 목사의 집에 과외 선생으로 초빙되어 그 집 아들과 관계를 맺지만, 그녀는 달콤하고 끈적한 코블러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지는 않았다. 속된 욕망에 빠져 집착하는 어머니와 달리, 아름다움과 달콤함의 본질을 추구하고 곁의 이들과 나누며 살겠다고 항변한다. 부조리하고 타락한 이들이 손가락질하고 따귀를 날리고, 온갖 핍박을 가해도 그녀는 끝내 다른 삶을 살아낼 것이다. 다른 이들이 남긴 부스러기를 탐하는 삶을 살지 않기 위해, 탐욕스럽고 위선적인 어머니를 닮지 않으려 그녀는 분전하고 노력하리라.



디샤 필리야, 배경이 변변치 않은 흑인 여성이기에 혹자는 그녀를 미국 문단의 '신데렐라'라고 일컫기도 한다. 혜성처럼 등장한 천재 작가.. 소설 장르만큼은 이 말이 통용되지 않는다. 작가 자신의 내밀한 삶이 투영되는 장르이기에 빈약하고 일천한 내적 경험과 사상으로는 이토록 파격적이면서 독자의 심정에 깊이 다가서는 소설을 써낼 수 없다는 의미다. 한마디로 그녀는 문학적 재능을 겸비한, 산전수전 겪은 자수성가형 작가라 할 수 있겠다.


그녀의 첫 작품은 교회 의자에 나란히 앉아, 십자상을 바라보는 흑인 여성들의 은밀한 삶과 이면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책 서두에서 인용한 앤설 엘킨스_<이브의 자서전>의 문장대로.. 은총을 잃고 타락하는 것이 아닌, 자유를 향해 두 날개를 펼친 천사처럼.. 저 하늘 멀리 도약하는 거물 작가의 데뷔작으로 남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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