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미루이 Feb 08. 2024

우리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벵하민 라바투트_<매니악>을 읽고..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펜하이머>를 보면서 뭔가 허전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맨해튼 프로젝트에서 누군가 중요한 인물이 극 중 제외된 것이 아닌가 하는 궁금증에 빠졌다. 당대 최고의 물리학자, 수학자들 가운데 누가 얼굴을 비추지 않은 걸까? 단팥빵에 팥앙금이 빠진 것만 같은, 휑하고 허전한 느낌.. 벵하민 라바투트의 <매니악 Maniac>을 읽으면서 그 물음이 자연스레 풀렸다.




알버트 아인슈타인, 리처드 파인만, 닐스 보어,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유진 위그너, 쿠르트 괴델, 에드워드 텔러 등 내로라하는 천재들이 신에 가장 근접한 천재라며 존경하고 칭송한 그 이름.. '존 폰 노이만'이 그 주인공이다.


네덜란드 태생 작가, 벵하민 라바투트는 그를 유리 거울이 사면을 감싼 방에 가두고는 주변 인물을 통해 다각적으로 관찰한다. 어릴 적부터 괴력의 지능을 발휘한 노이만의 발자취를 따르면서 그의 부모, 가족들, 스승, 배우자, 친구, 이웃 등을 화자로 내세워 편집증적이고 광적인 천재의 방대한 업적과 주요 에피소드, 심리 상태 등 거의 모든 면을 서술했다.  


책은 3부작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심한 우울감과 고뇌에 빠진 천재 물리학자 '파울 에렌페스트'의 생애를 다룬다. 그는 개인사와 학문적 고뇌를 견디다 못해 다운증후군을 앓던 막내아들과 함께 총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는 고전 물리학의 확실성이 무너지면서 대두하는 냉혹한 비이성에 대해 경고했다. 과학의 순수한 영혼을 따라다니는 유령, 정신 나간 미치광이 이성이 우리 곁에 어른거린다. 그가 남긴 말이다. 어둡고 음울한 오스트리아 태생 천재의 비극적인 삶을 통과하면 '노이만'이 전면에 등장한다.




20세기를 통틀어 가장 똑똑한 사람, 외계인, 천재 중의 천재, 신에 가장 근접한 자.. 노이만은 100년 이후의 세계를 예견하고, 광대한 영역의 학문적 토대를 닦은 선지자였다. 인류의 발명 가운데 가장 창조적인 컴퓨터와 인공지능의 초기 이론과 모델을 창안했다. 가장 파괴적인 발명이라 할 만한 핵폭탄과 수소 폭탄의 연구 개발에 자신의 모든 재능을 쏟았다. 두 분야는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닌,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고 폭발적으로 진화하여 전 인류의 밤낮과 세계정세를 급변혁시켰다. 또한 세계 판도를 양강 냉전 시대를 거쳐 다극화/네트워크/디지털 AI 시대로 나아가는 동력을 제공했다.



2부 노이만의 일생을 짚어가다 보면.. 놀란 감독이 <오펜하이머>에서 그를 배제한 이유를 어렴풋 깨달을 수 있다. 폰 노이만이 스크린에 등장하는 순간,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한 모든 학자들은 그 빛이 바래고 조연으로 물러날 위험이 있다. 놀란 감독은 그 점을 우려했을지 모른다. 후에 그를 주연으로 다룬 영화를 따로 만들자, 고심 끝에 이를 결정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역사에 길이 남을 아인슈타인, 오펜하이머 그를 불세출의 압도적인 천재라 칭했고 경외했다. 그는 유수의 천재들마저 쩔쩔매는 미지의 불확실성을 빠르게 제거했고, 누구도 예상치 못한 불모의 영역을 개척하여 학문의 신영토를 확장시켰다. 저자는 노이만의 개인/가정사를 세밀하게 그리고, 발음 상 특이한 버릇까지 세부 관찰하여 그가 환생하여 곁에 현존하는 것처럼 사실성을 부여했다. 덕분에 이 책은 픽션도 논픽션도 아닌, 소설과 다큐 경계에서 아슬한 줄을 타며 마지막 페이지까지 긴장감과 몰입감을 선사한다.   



폰 노이만은 신을 닮은 천재였지만 냉혹하면서 잔인한 면이 있었다. 반공주의자인 그는 냉전을 종식시키고 세계 평화를 앞당기기 위해 소련에 선제 핵공격을 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지지하고 개발에 기여한 실험용 수소 폭탄 '아이비 마이크'는 전 인류의 말살과 지구의 파멸을 앞당길 만한 대재앙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 피하지 못한 것이 있었으니, 무릇 인간의 고통과 죽음이었다. 대다수의 범인과 달리 한 천재의 죽음은 지극히 고통스럽고 비극적이었다. 책을 통해 평범한 인간으로 회귀한, 노이만의 말년을 돌아보길 바란다.




대망의 3부는 천재 기사 '이세돌'의 바둑 인생과 딥마인드가 개발한 알파고의 탄생/각성을 다룬다. 인간 대 AI, 세기의 바둑 대전에 얽힌 숨은 이야기, 쌍방의 결정적인 승부수를 느린 호흡으로 복기한다. 이후에 이세돌의 이른 은퇴 선언, 알파고의 폭발적인 진화를 다룰 때면 한 인간으로서 당혹스럽고 분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인간 이세돌은 전 인류에게 고개 숙여 사과할 필요가 없었다. 인류가 아닌 그의 패배이자 과오라고 원죄를 뒤집어쓰는 건, 한 개인으로서 너무나 잔인한 고백이자 부당한 형벌이었다. 현시점에서 인간은 AI의 번개보다 빠른 수 계산과 승부 예측 그리고 냉혹함을 절대 따라갈 수 없다. 커제 등 AI와 맞붙은 일류 바둑 기사의 연이은 패배로 인간과 AI의 격차는 증폭되고 있음이 여실히 증명되고 있지 않은가. 개인적으로 AI는 인간의 활동에 도움을 주는 선을 지키고, 임계점을 넘을 경우 브레이크를 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바둑과 체스 등 예와 즐거움, 공정한 승부를 중시하는 게임은 인간이 AI와 맞붙지 않도록 규칙을 정하고 선을 그어야 한다. 어느 분야와 영역이든, 인간이 AI와 대결하여 허무하게 패배하는 것은 초기 몇 번이면 족하다. 만약 이러한 패배가 도처에서 벌어지고 가중된다면 AI 로봇 혐오 현상, 즉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 현상이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SF 영화에서나 볼법했던, 인간과 AI 간의 대립과 마찰이 그리 멀지 않았다는 공포와 두려움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책의 말미 알파고와 대적하여 연승했다는, 업그레이드된 차세대 AI '알파제로'의 출현과 백돌 한 수를 신중히 내려놓는 이세돌의 사진을 바라보며 착잡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광적인 천재들이 이룩한, 매니악한 디지털 AI 세계의 끝은 희망 가득한 유토피아일지, 아니면 벼랑 끝 아포칼립스일지.. 우리는 과연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안갯속을 헤매는 것처럼 정신이 아득해졌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날개를 펼쳐 도약했다, 자유를 향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