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관적인 게 아니라 회의적인겁니다.
공부를 하러 스터디카페 가던 중 죽은 참새를 봤다. 건물 1층 편의점 바로 앞에서 깨끗하게 누워있는 참새를 발견하고는 너무 놀라서 순간 "억" 하고 소리를 질렀다. 왜 건물 안쪽에 이렇게 죽어있나,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이내 스터디카페가 있는 3층으로 올라갔다. 한 3시간 정도 공부하고 나왔는데, 여전히 참새는 그대로 있었다. 지하 1층에는 PC방도 있고, 3층에는 스터디 카페가 있어서 꽤 많은 사람들이 봤을 텐데 누구 하나 사후 처리를 해주지 않았다.
안타까웠다.
편의점 바로 앞에 화단이 있어서 묻어주기로 결심했다. 흙을 팔 수 있는 도구가 없어서 신발이랑 돌로 약간 구덩이를 파고, 가지고 있던 A4 용지로 감싼 뒤 조심히 들고와 구덩이에 넣었다. 혹시라도 다시 많은 비로 쓸려 내려 갈까봐 돌로 무덤을 만들어 줬는데 잘한 건진 모르겠다. 휴지통에 곱게 버려서 그냥 그대로 온전히 소각되는 게 나을까, 땅에 묻히는 게 나을까. 집에 가는 길 내내 잡념이 들었다.
참새의 삶은 어쩌다가 죽어도 누구 하나 신경쓰지 않고, 버려지게 됐을까. 어떤 운명의 장난으로 누군 참새로 태어나고, 나는 인간으로 태어났을까.
난 늘 삶에 회의적이었다. (비관적인 것과는 다르다.) 오래 살고 싶지 않고, 이 정도면 됐다, 싶을 때 죽고 싶다. 그렇다고 우울증도 아니고, 비관적인 것도 아니다. 세상만물에 궁금증을 가지고 있으면서 희한하게 내 삶에 대한 궁금증은 0인 이상한 사람. 실제로 '이제 더는 궁금한 감정이 없다'는 생각을 자주 했던 것 같은데, 어쩌면 내 삶에 대한 궁금증이 없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깨달음이 들었다.
매 순간 현실에 충실하면 궁금증이 없다. 어디로 가야할 지만 나올 뿐. 그리고 내가 가는 그 길이 옳은 길인지도 그 끝에 서야만 안다. 그러니 나 자신만 믿고 걸어가면 된다.
물론 그 믿음은 늘 흔들리고, 유약하다. 언제 깨져도 이상하지 않다. 그렇지만 또 얼기설기 잘 엮어서 다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누구도 믿을 수 없지만, 나 자신만큼은 믿어야 하는 이유. 아이러니하게도 그 믿음이 자꾸만 흔들리기 때문이다.
요즘엔 지금 당장 죽더라도 후회가 남을 것 같지 않다. 물론 매일 100% 최선을 다했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평균 90퍼센트 이상은 충만하게 살고 있다. 하루하루 플러스마이너스 10퍼센트 정도? 남들 눈에는 의아해 보일지라도 남들이 뭔 상관이야. 내 삶인데. 내가 잘 살고 있다는데 왜요. 뭐요. 내 인생 서바이벌 프로그램 나간 거 아니잖아요. 남들 점수가 뭔 상관이야.
무튼 내 인생을 돌아본 끝에 마지막 깨달음. 오늘 만난 참새의 다음 생은 건물 바닥에 죽어 있어도 누구 하나 거들떠 보지 않는 삶이 아닌 누군가가 슬퍼해주고, 명복을 빌어주는 삶이길 바란다.